트위터공유 페이스북공유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인쇄하기
  • 스크랩하기
[심층 기획] 팀 운명의 중심, 세터 탐구
서영욱(seoyw92@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9-03-22 00:11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스포츠계 격언이 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의 배구 버전이다. 이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 경기 후 팬들의 반응을 본다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농구나 축구와 달리, 배구는 아무리 압도적인 에이스가 있더라도 세터의 손을 거쳐서 볼이 올라오지 않으면 득점을 만들 수 없다. 공격수에게 올라가는 볼의 직전 연결을 담당하는 포지션이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더스파이크>는 2월호에 특수 포지션인 리베로를 다룬 데 이어 이번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포지션인 세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배구, 정말 세터 놀음인가?

 

전문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표현은 배구계 격언 중 가장 많이 입에 오른다. 보통 한 팀이 부진에 빠지거나, 평소보다 못한 경기력을 보이는 날이면 과반수 ‘범인 찾기’는 세터를 향한다. 그만큼 적어도 배구 팬에게는 세터가 그 정도로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이 표현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 이유와 설명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동의하는 편이었다. 이종경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경기 내적인 내용을 들면서 설명했다.  

 

“세터가 볼을 어떻게 올리느냐에 따라 공격수가 블로커를 한 명을 마주할 수도 있고, 혹은 노 마크로 공격할 수도 있다.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게 세터의 볼 배분이다. 그리고 보통 공격수가 마주하는 투 블로커 상황 공격성공률이 50% 정도다. 앞서 언급한 원 블로커, 혹은 노 마크는 90% 이상이다. 이 블로커 한 명 차이로 공격 성공률이 크게 좌지우지되는 만큼 세터가 중요하다고 보는 게 맞다.”

 




김상우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좀 더 직관적인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김상우 위원은 “배구는 우리 코트로 볼이 넘어왔을 때 세 번 만에 볼을 넘겨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번도 볼을 만지지 않는 선수도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세터는 웬만하면 그 3번의 과정 중 한 번은 관여한다. 세 번 중 한 번을 거의 필수로 참여하니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상우 위원은 다른 종목의 예를 들면서 “족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앞에서 볼을 잘 올려줘야 마지막에 넘기는 사람이 힘있게 공격할 수 있다. 세터도 같다고 보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는 게 맞다”라고 설명했다.

 

두 해설위원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세터의 중요성은 결국 포지션 특수성에 기인한다. ‘세터(Setter)’라는 명칭답게 한 팀의 공격을 세팅하고, 지휘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공격이 이루어지기 직전 마지막 과정을 책임지는 선수인 만큼, 포지션 비중이 높다고 인식될 수밖에 없다.


우리 팀 세터 잘한 걸까, 못한 걸까?


경기가 끝나면 한 번씩은 꼭 확인하는 게 기록지다. 하지만 이 기록지만 봤을 때 잘했는지, 못했는지 가장 알기 힘든 포지션이 세터다. ‘세트’가 측정되기는 하지만 이것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세터가 올린 볼을 공격수가 득점으로 연결할 경우 세트 성공으로 기록되는데, 기록만 봐서는 이게 세터가 정말 잘 올려서 득점이 된 건지, 세터가 올린 볼은 불안했지만 공격수가 잘 처리해서 득점이 된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상우 위원과 이종경 위원은 기록지에 측정되는 ‘세트’ 수치가 세터 능력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팀 세터가 잘했는지, 못 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걸 보면 될까? 자세한 설명에 앞서 단서를 먼저 달자면 세터의 활약은 경기를 직접 봐야 알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었다.

 

김상우 위원은 우선 세터가 올리는 볼의 질과 경기 운영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볼의 질은 블로커를 몇 명 빼주느냐보다도 얼마나 공격수가 편하게 때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블로커를 적게 빼주는 것보다도 얼마나 힘있게 볼을 올려서 공격수가 편하게 볼을 때릴 수 있게 해주느냐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이게 안정돼야 그날 세터 경기력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경기 운영은 이런 면을 들 수 있다. 이번 공격에서 상대 블로킹이 어디가 낮은지, 그리고 어느 쪽으로 공격했을 때 확률이 좋은지를 생각해 그쪽으로 볼을 올리는 것이다.”

 



현역 시절 최고 세터로 활약한 김사니 SBS스포츠 해설위원도 비슷한 의견을 남겼다. 그는 “블로커를 적게 빼 줘봐야 우리 공격수가 때리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최대한 공격수에게 예쁘게 볼을 올리고 공격수가 해결하게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라며 “한 경기에서 상대 허를 찌르는 패스는 경기당 2~3개 정도다. 그 정도만 나와도 컨디션이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공격수와 호흡을 완벽하게 가다듬고 안정적으로 볼을 올리는 게 우선이다”라고 호흡과 안정적인 세트를 강조했다. 한편 두 위원은 중계 도중 해설위원들이 세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는 것도 좋은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남자배구대표팀 감독이자 현역 시절 명 세터였던 김호철 감독은 “세터가 볼을 올린 뒤에 공격수 표정을 보면 된다”라고 색다른 의견을 남겼다. 이어 김 감독은 “아무래도 만족스럽다면 세터에게 보내는 표정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공격수가 착지할 때 넘어지거나 불완전하지 않게, 편하게 착지하면 세터가 볼을 잘 올린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현역 시절 세터로 활약한 김사니 위원과 김 감독은 현역 당시 준비 과정과 중점을 둔 내용도 언급했다. 먼저 김사니 위원은 첫째도 둘째도 공격수와 호흡을 강조했다. “우선 공격수 스타일을 먼저 파악했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와 호흡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분석에서는 상대와 직전 라운드 맞대결을 참고했다. 상대 블로커가 내 세트에 어떻게 준비하고 반응했는지를 확인했다. 그걸 역이용해서 세트를 많이 했고 패턴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신경 쓴 건 공격수와 호흡이었다. 이전 경기에서 속공이 안 맞았으면 연습 내내 속공만 맞춘 적도 있다.”

 

이어 김사니 위원은 경기에서 밀리거나 20점 이후 중요한 상황에서 경기 운영은 정답이 없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전했다. “주 공격수에게 맡길 수도 있고, 역으로 보조 공격수에게 갈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순간적으로 판단했고 감독님이 주는 사인도 있기 때문에 그걸 참고한다. 그리고 경험이 많이 쌓인 이후에는 거기에 따라 판단하기도 했다. 사실 세터는 결과론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점수가 나면 잘한 것이지만 막히면 ‘반대로 갔어야지’라고 평가되는 게 세터다. 그만큼 본인 플레이에 책임도 컸다.”

 

김호철 감독은 호흡보다는 상대 블로커를 더 신경 썼다고 회고했다. “상대 블로킹이 어디가 약하고 낮은지를 파악해 거기에 맞춰 우리 플레이를 가져갔다. 상대 센터 블로커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게 세터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이 된 이후 어떤 걸 강조했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세터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많이 했다. 상황에 따른 시스템을 짜고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하는지도 말했는데, 지나서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걸 세터에게 주문했던 것 같다”라며 “다시 생각해보면 세터가 자기 머릿속에서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맞는 것 같다. 우선 자기 플레이를 마음껏 하게 해주고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는 건 다음 문제다. 세터가 스스로 역량을 발휘하게 결정권을 주고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라고 달라진 생각을 전했다.


전문가가 말하는 ‘명세터’의 조건 

 

전문가들이 지적한대로 좋은 세터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자주 언급되는 요소 중 하나는 정신적인 면과 관련된다. 이른바 ‘세터 기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상우 위원은 “세터로서 기질이 있다. 코트 위에 있는 여러 공격수를 아우르는 리더의 자질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 두뇌 회전도 빨라야 한다. 대범하고, 요즘 표현으로 ‘똘끼’도 있어야 한다. 무작정 착하고 성실하기보다는 그런 기질이 더 낫다”라고 설명했다.  

 



김호철 감독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김 감독은 “세터는 보통 ‘아버지형’과 ‘어머니형’이 있다”라며 “‘아버지형’은 지시하고 선수들을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타입이다. ‘어머니형’은 좀 더 공격수들을 보듬고 화합하게 만들어가는 유형이다.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후자가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사니 위원 역시 세터는 ‘코트 위의 야전 사령관’보다는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정리했다. 

 

김호철 감독이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결국 호흡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세터는 공격수와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세터는 공격수를 잘 만나야 하고 공격수도 세터를 잘 만나야 한다. 그래서 팀을 옮기고 성적이 좋아지는 세터가 나오는 것이다”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아울러 김 감독은 “세터는 독특한 기질이 분명 있고 타고나야 한다. 세터는 공격수 입맛에 맞게 볼을 올리는 게 첫 번째 의무지만 자기만의 카리스마도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어떤 때에 보면 답답할 정도로 자기 고집대로 밀고 가는 세터가 있다. 그런 세터가 그냥 밋밋한 세터보다는 낫다”라며 “세터는 경기를 이끌어 가는 선수다. 공격 90% 이상이 세터를 거친다. 그걸 책임질 수 있는 대담함 같은 기질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김사니 위원은 세터와 공격수 호흡은 서로 노력해야 하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호흡은 서로 노력해야 한다.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를 편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뭔가 불편한 관계면 볼을 올려주기 어렵다. 허심탄회하게 말도 하고 볼의 높낮이나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와 맞춰나가기 위한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이종경 위원은 위기 상황이나 결정적일 때 속공을 과감하게 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배짱이 좋은 세터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종경 위원은 “속공은 네트 위로 40~50cm 정도로 올려주는, 정확한 볼 컨트롤을 요구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빠르게 쏴주면서 볼 높이도 일정해야 한다. 시간차 공격이나 오픈 공격은 공격수가 맞춰 때릴 수 있지만 속공은 정말 세터 역량이 중요하다. 리시브가 잘 됐을 때 속공 비율이 높은 세터는 높게 평가해야 한다”라며 속공을 ‘좋은 세터’의 조건으로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속공과 함께 언급한 배짱의 경우, 경기 상황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미들블로커 속공 비중은 많아 봐야 20% 정도다. 그래서 상대도 속공 견제는 다른 공격과 비교하면 덜한 편이다. 하지만 세터들은 중요할 때 속공 올리기를 부담스러워한다. 혹시라도 상대 블로킹에 걸리면 세터 책임으로 넘어오기 때문이다. 감독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기술적으로 더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기에 더 그렇다. 오픈 공격이나 퀵오픈은 걸려도 공격수 책임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그래서 웬만한 배짱이 없으면 속공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걸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사니 위원의 생각 “세터, 배구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는 포지션”

 

김사니 위원은 좀 더 다방면에 걸쳐 ‘좋은 세터’에 대해 설명했다. 김사니 위원은 포털 사이트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세터 포지션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김사니2.jpg

 

이 가운데 앞서 언급된 내용과 비슷한 내용도, 다른 내용도 있었다. 김사니 위원은 김호철 감독과 같이 ‘세터는 코트 위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집에서 어머니는 중심을 잡아준다. 선수들을 잘 이끌어야 하고 마음도 잘 이해하고 컨디션도 점검해야 한다. 그런 섬세한 면이 필요하다. 나도 선수 시절 그걸 많이 염두에 두고 경기했다.”

 

하지만 세터만의 독특한 기질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묘하게 다른 생각을 남겼다. 김사니 위원은 “프로 선수라면 다 특유의 기질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포지션에 따라 그 성격이 조금 다를 수 있다”라고 밝혔다. 

 

김사니 위원이 생각하는 세터에게 필요한 성격은 당돌함이었다. “세터는 약간 당돌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런 강한 멘탈이 필요하다. 다만 이건 세터라서 그래야 한다기보다는 중심을 잡아야 하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어 김사니 위원은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 중 좋은 건 잘 챙겨 듣고 아닌 건 빨리 잊어버리려 했다. 좋은 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중심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정신적인 측면을 잘 캐치해야 한다”라며 “나이가 어리다고 팀을 이끌지 못한다는 것도 예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팀을 끌고 갈 수 있다. 연차가 쌓인다고 팀을 잘 이끄는 것도 아니다. 내실만 잘 쌓는다면 얼마든지 어린 세터여도 가능하다”라고 과거 경험을 돌아보며 팀을 이끄는 자로서의 세터를 설명했다.

 

세터 본연의 임무인 세트만 잘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밝혔다. 김사니 위원은 세터란 배구를 전반적으로 잘 이해하는 선수여야 한다고 했다. 김사니 위원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생각부터 서브, 블로킹까지 다방면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세터는 공격을 하지 않으니까 약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공격수 못지않게 피지컬도 중요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팀 상황과 상대 플레이를 읽는 눈도 갖춰야 한다. 배구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세트 외에도 수비, 블로킹까지 전체적으로 배구를 다 잘해야 한다. 세터가 볼만 잘 올려주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세터로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블로킹, 수비, 서브 모두 잘해야 한다.”

 

특히 김사니 위원은 과거 포털 사이트 라디오를 통해 세터의 수비를 강조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한 추가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세터 수비력이 좋으면 코트 위에 리베로가 두 명 있는 셈이다. 왼쪽에 리베로가 있다면 오른쪽에는 세터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구에서 라이트 수비는 강력한 공격이 오는 만큼 수비하기 가장 어렵다. 그런데 라이트에서 오는 공격을 계속해서 받아낸다면 팀도 더 안정감과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갖출 수 있다. 세터가 아무리 세트 실력이 좋아도 일차적으로 받는 수비가 흔들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세터에게도 수비가 중요한 것이다. 세터와 리베로가 잘 갖춰진 팀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봄 배구 확률도 그만큼 높다.”

 

세트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잘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른 이유는 그래야 팀을 이끄는 데에 더 당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터가 단순 세트만 잘하는 것보다 다른 것도 잘하는 게 함께하는 선수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다. 세트는 기본이고 다른 부분에서도 솔선수범할 수 있어야 한다.”


차세대 세터, 누가 있을까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종합했을 때, 좋은 세터가 나오기는 정말 쉽지 않아 보인다. 기술적으로는 공격수 입맛에 딱 맞는 세트를 해줘야 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상대 블로커와 수 싸움에도 능해야 한다. 여기에 팀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과 어머니와 같은 화합력, 팀 전체적인 멘탈을 다잡을 수 있는 강인함까지 지녀야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현재 남녀국가대표팀 주전 세터 1순위 역시 프로 경력 10년 이상(혹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의 베테랑들이 여전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남자 대표팀의 경우, 2018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주전으로 나온 한선수(34)가 정예 멤버를 언급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여자 대표팀은 이보다 더하다. 올해로 만 39세, 한국 나이로 마흔에 이른 이효희가 여전히 여자 대표팀 주전 세터 1순위로 꼽힌다. 실제로 이효희는 지난해 VNL-아시안게임-2018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전으로 나왔다. 다른 세터가 안 뽑힌 건 아니지만 1순위는 언제나 이효희였다.

 

하지만 눈여겨볼 세터, 두 선수 뒤를 이어줄 세터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남자부는 20대 초중반 선수들보다는 아직 30대에 접어들지 않은 20대 중후반 선수들이 언급된다. 가장 먼저 언급할만한 선수는 노재욱(27)이다. 현대캐피탈에서는 ‘스피드 배구’ 지휘자로 나섰고, 우리카드 이적후 팀 상승세를 이끈 노재욱은 세터치고 신장(191cm)이 큰데다 빠른 세트에 강점이 있는 선수다. 

 

이종경 위원은 “노재욱은 잘할 때는 정말 잘한다. 고집은 좀 있는 편이지만 리시브가 조금만 받쳐준다면 노재욱과 함께하는 팀은 누구와 붙어도 할만하다. 속공 세트도 잘한다”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만 특유의 고집이 나와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볼 컨트롤도 가끔 흔들린다. 볼을 낮고 빠르게는 주는데 볼 끝이 죽어서 공격수가 타점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나온다”라고 개선해야 할 점도 덧붙였다. 김상우 위원 역시 노재욱을 언급하며 신장이 좋은 세터가 성장해 국가대표에 자리를 잡아야 우리나라 국제 경쟁력이 더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데뷔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찬 황택의(23)도 주목할 세터 중 한 명이다. 올 시즌은 위력이 떨어졌지만 본래 서브가 강점인 선수이고 189cm로 신장도 나쁘지 않다. VNL에서도 몇 차례 선발로 나와 자기 역량을 확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이종경 위원은 황택의 역시 속공 세트가 좋은 선수지만 경험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팀을 이끄는 카리스마와 강인함을 더 키우면 좋은 세터가 될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여자부에서는 역시 이다영(23)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179cm의 신장에 타고난 운동능력이 그냥 지나치기에는 매우 뛰어나다. 좋은 신장과 운동능력이 결합해 보여주는 높은 위치 볼 처리는 왜 그를 많은 지도자가 높게 보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김사니 위원은 “피지컬을 비롯해 가진 재목은 가장 좋은 선수”라고 이다영을 평가했다. 올 시즌 현대건설이 개막 11연패를 비롯해 힘든 시즌을 보낸 데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선수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다영이 부진한 모습을 자주 보였지만 고려할만한 부분도 있다는 게 김사니 위원의 생각이다. “이다영이 워낙 화려해서 경험이 많은 선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제 풀 타임 주전 세터로 두 번째 시즌을 보내는 선수다. 아직은 과도기이다. 경험이 더 필요하다.” 김사니 위원은 동시에 “타고난 건 좋은 선수지만 조금 더 배구에 욕심을 내야 한다”라며 조언도 덧붙였다. 

 

올 시즌 이고은이 개막을 앞두고 갑작스레 부상으로 이탈하며 시즌 초 GS칼텍스 주전 세터를 맡은 안혜진(21)도 눈여겨 볼만한 선수다. 신장은 이다영보다 작지만(175cm) 점프가 더해진 높이가 나쁘지 않고 공격수에게 보내는 볼에 힘이 있다. 서브도 좋은 선수로 올 시즌 서브 부문 4위(세트당 0.248개, 총 서브 득점 28개)에 올랐다. 

 

김사니 위원은 “높이가 있고 속공도 자신 있게 올라가는 선수”라고 안혜진을 칭찬하면서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기복도 크다. 그 기복은 연습으로밖에 채울 수 없다. 연습이 부족하면 실전에 부족한 부분이 드러난다. 많은 훈련과 경험으로 메워가야 한다”라고 조언을 건넸다.

 

남녀부에서 각각 언급된 두 선수 외에도 젊은 나이에 많은 출전 경험을 얻는 선수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 시즌 첫 풀타임 주전으로 나온 김형진(24)은 홍익대 4학년 시절 팀의 무패 우승을 이끌 정도로 활약이 대단했다. 당시 홍익대 박종찬 감독은 “김형진은 우리 전력의 50% 이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김형진의 위상은 대단했다. 올 시즌은 기복 있는 경기력으로 팬들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이제 첫 주전 시즌을 보낸 만큼 좀 더 지켜볼 여지는 있다. 

 

김형진처럼 올 시즌 2년차 시즌을 맞이한 한국도로공사 이원정(19)도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이원정은 팔꿈치 부상으로 비시즌 제대로 시즌 준비를 하지 못했고,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다. 이 여파로 시즌 중반까지 김종민 감독에게 고민을 안겼지만 5라운드부터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원정이 이효희를 대신해 코트에 나서는 시간도 시즌 후반 늘어났다. 한국도로공사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보일 수 있는데 기여한 것이다. 아직 미들블로커 활용이나 경기 운영에서는 부족하지만 측면으로 쏴주는 세트는 매우 힘있고 공격수가 때리기 좋게 올려준다는 평가다. 고교 시절부터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은 선수이기에 지금처럼 꾸준히 출전시간만 주어진다면 더 꽃피울 재능임은 분명하다.


글/ 서영욱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