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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에 이룬 김해란의 챔피언 꿈, "잘 참고 버텼기에 이 자리 왔어요"
지민경(mink@thespike.co.kr)
기사작성일 : 2019-04-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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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리베로. 김해란은 V-리그 출범 전인 2002년 한국도로공사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리베로 활약하고 있다. V-리그 열다섯 시즌을 모두 소화했고, 그 중 열 시즌에서 디그 1위를 지켰다. 수비 부문 기준기록 1호는 늘 그의 차지였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그였지만 올 시즌 전까지 단 하나가 없었다. 바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커리어. '무관의 제왕'이라는 씁쓸한 타이틀로 열다섯 번째 시즌을 치렀던 그는 지난 3월 27일 세 번째 소속팀인 흥국생명에서 마지막 하나 갖지 못했던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쥐었다. 우승을 결정하고 이틀 뒤인 29일, 김해란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벅찬 감동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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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생생한 우승 그 순간

 

흥국생명이 2018~2019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에 올랐던 지난 27일 김천실내체육관. 김해란은 모두가 울고 웃었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그는 “경기의 끝을 알리는 주심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을 때 선수단 모두가 함께 많이 울었다. 코트 안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라며 “우승이 확정됐을 때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더 나왔던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4세트 24-22, 흥국생명이 챔피언 포인트에 한 점만을 남겨놓은 상황, 김해란은 3세트 듀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 남은 힘까지 모두 쏟아 부었다.

 

김해란은 “3세트에도 이기고 있다가 동점을 허용하면서 듀스 접전 끝에 겨우 이겼다. 4세트에 매치포인트에 다다랐을 때에도 계속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4세트에서도 잡히면 정말 힘들어질 것 같았다. 점수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경기에만 집중했었다”라고 설명했다.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김해란이기에 결코 흔들릴 수 없었다. 그는 “1세트를 쉽게 내주고 2세트에도 우리 플레이가 잘 안 됐다. 그래서 3세트에 들어가기 전에 동료들에게 ‘이기려고 하지 말고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자, 재밌게 하자’라고 이야기했다”라며 “사실 챔피언결정전은 재밌게, 편하게 할 수 있는 경기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정규리그를 치르면서 중요한 경기, 어려운 경기를 할 때마다 동료들에게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면 다들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해주면서 정말 열심히 해줬다. 4차전을 치를 때도 정규리그 때 생각이 나서 똑같이 이야기했었는데 다행히 동료들이 마지막까지 힘을 내줬다”라고 말했다.

 

배구는 상대팀보다 먼저 25점(5세트 15점)에 도달해야 이길 수 있는 경기다. 수비 전문 선수인 김해란은 오로지 수비에서만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매 순간 득점을 책임져준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이 컸다. 김해란이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이유다. 통합우승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해란이 “우승한 순간에는 가족 생각도 났지만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이)재영이가 크로스 공격으로 득점을 내면 발끝에서부터 짜릿함이 느껴진다.”라고 말한 이유다.

 

열다섯 번의 도전 만에 개인이 아닌 팀으로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김해란. 그동안 숱하게 많은 개인상을 받았던 김해란은 “개인상을 받았을 땐 나 혼자만의 영광이지만 팀으로 받았을 땐 다 함께 잘해서 받은 상이기 때문에 훨씬 남다르게 느껴진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생애 첫 챔피언 “아직은 실감이 안 나요”

 

지난 27일, 흥국생명의 통합우승을 끝으로 2018~2019시즌이 모두 마무리됐다. 김해란은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가족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가족들과는 말이 필요 없었다. 얼굴만 보고 손만 잡아도 마음으로 다 느껴졌다. 어머니께서는 늘 내가 다칠까봐 걱정이 많으신데 우승하던 날 경기장에서 참 많이 우셨다”라고 떠올렸다. 

 

김해란이 챔피언 메달을 목에 걸던 날, 그의 첫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옛 동료들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특히 그가 10년 이상 몸담았던 도로공사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동료들은 물론, 은퇴 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옛 동료들까지도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했다. 

 

특히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도로공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황민경(현대건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김해란은 “며칠 전부터 (황)민경이가 ‘언니, 우리 소고기 언제 먹어요?’라며 계속 연락을 해왔다. 우리끼리 ‘구(舊)도공’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만나는 선수들이 있는데, 민경이가 ‘애들 모아놓을게요’라며 자꾸 연락을 했다.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치를 때는 직접 체육관에 찾아오기도 했다”라며 “민경이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어서 다음 모임 때는 크게 한 턱 쏴야 할 것 같다(웃음)”라고 말했다.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던 27일이 지나고 28일이 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시즌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시즌 종료와 함께 그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줄 휴식기에 돌입했다.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뒤 처음으로 맞이한 비시즌, 김해란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한 시즌이 끝났구나’라는 생각만 든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4월 초에 태국에서 한·태 올스타전까지 마치고 본격적으로 휴가를 받으면 그 때부터 조금씩 실감이 날 것 같기도 하다.”

28일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 김해란은 한·태 올스타전 준비를 위해 30일 다시 숙소가 있는 용인으로 돌아왔다. 27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경기를 치르느라 지칠 대로 지친 김해란이지만, 시즌이 끝나자마자 부산으로 향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11월 3일, 김해란은 오랜 지병을 앓고 계시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아버지가 가시는 길을 지키느라 4일 한국도로공사전에 결장하기도 했다. 김해란은 “아버지께서 지병을 앓고 계셨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라며 장례식이 끝난 후 곧바로 팀에 합류해 곧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그는 “아버지께는 정말 죄송했지만 ‘우승하고 다시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배구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시즌이 끝나자마자 아버지가 계신 부산으로 내려왔다”라고 설명했다.

 

시즌 도중 아버지를 떠나보냈지만, 팀에 돌아온 김해란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동료들도 그의 노력을 알기에 곁에서 묵묵히 그를 응원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고 했기 때문에 동료들도 내가 돌아온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다들 메시지로나마 위로해주기도 했고, 마음으로 이미 다 전해졌다.”

 

김해란은 배구선수 출신이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배구공을 잡았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챔피언이 된 김해란의 모습을 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는 사람, 바로 그의 아버지다. 그래서 김해란은 “우승하고 나서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우승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더 슬펐다. 아마 아버지가 하늘에서 도와주신 것 같다”라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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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란이 말하는 통합우승 스토리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로 진정한 원팀(one-team)이 된 흥국생명, 올 시즌 단 한 번의 연패도 없이 정규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까지 모두 그들의 무대로 만들었다. 김해란은 “연패 없이 시즌을 마무리하고 나서 우리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힘든 걸 잘 이겨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평가했다.

 

김해란은 챔피언결정전에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이재영(23)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재영이가 지난 시즌보다 훨씬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다. 나를 비롯해서 다른 선수들이 재영이에게 공을 올려줬을 때 재영이가 득점을 내줬다. 우리가 통합우승을 하기까지 재영이가 정말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흥국생명이 12년 만에 통합우승을 달성하는 데 팀의 주장이자 최후저지선을 지켰던 김해란의 비중은 얼마나 됐을까. 이 질문에 김해란은 멋쩍은 듯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런 질문은 너무 어렵다”라면서도 “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주장을 맡고 있으니 주장 어드밴티지를 포함해서 절반 정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예상했다.

 

단체 종목에서 주장의 역할은 막중하다. 늘 솔선수범하며 동료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며, 앞에서 수많은 동료들을 이끌며 긴 시즌을 완주해야 한다. 김해란은 “경기에서 지고 나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면 감독님께서는 나한테 ‘절대 분위기가 처지면 안 돼’라고 강조하신다. 자칫하다간 다음 경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 시즌 내내 분위기가 처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베테랑 중 베테랑인 김해란은 “경기에서 졌다는 걸 곱씹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이런 점이 부족했던 것 같아’라고 되돌아보는 정도였다. 그리고나서는 평상시에 즐겁게 지내고, 운동할 때 열심히 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다”라고 설명했다.

 

시즌 초부터 줄곧 상위권을 지켰던 흥국생명이지만, 위기가 없던 건 아니었다.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외국인 선수 톰시아가 기복 있는 모습을 보이더니,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리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활약으로 모두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팀에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하던 톰시아를 향해 김해란은 ‘우리가 있으니 괜찮아’라며 톰시아가 짊어진 부담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아무래도 톰시아가 낮선 환경에서 오래 있다보니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톰시아에게 ‘걱정하지 말고 다함께 열심히 해보자’라고 했다. 톰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선수들도 옆에서 많이 응원해줬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경기에서는 힘을 내준 덕분에 우리가 통합우승을 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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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맡게 된 리베로, 정상 지키는 방법은 ‘노력’뿐


김해란은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공격수였다. 고교 3학년 때 발목뼈가 심하게 부러져 드래프트를 앞두고 큰 수술을 받았지만, 도로공사에 입단한 뒤 한 차례 재수술을 받았다. 당시 도로공사 감독이던 김명수 전 감독은 선수 생명이 위태롭던 김해란에게 리베로 포지션을 권유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리베로가 탄생하던 순간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김해란은 운동선수 출신인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몸을 물려받았다. 마침 배구도 적성에 맞아 지금까지 즐겁게 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운동선수라면 하기 싫을 때도 있었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다”라며 “지금 와서 그 긴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동안 내가 재밌게 잘 견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힘든 날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버텼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해란은 V-리그 최초로 디그 9,000개를 기록했던 지난 1월 27일, ‘리베로는 견뎌야 하는 자리’라며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놨다. 당시 김해란은 “리베로는 잘했을 때 ‘잘했네’하고 끝나지만, 못했을 땐 ‘저것도 못해’라는 비난을 듣는다. 이런 걸 견뎌내지 못하면 절대 정상에 설 수 없다. 힘든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견디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직접 겪었던 일이기에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26살 때가 가장 힘들었다. 국가대표팀에 갔을 때였는데, 정말 욕을 많이 들었다. 그 때는 정말 ‘내가 이렇게까지 이걸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라며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 때 어떻게 버텼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참았던 것 같다. 참고 참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라고 초연한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오랜 시간 코트 위를 지켰던 만큼 산전수전 다 겪어본 김해란. 그럼에도 여전히 패배는 힘들다고 한다. 그는 “팀 성적이 안 좋을 땐 힘들 수밖에 없다. 특히 팀이 꼴찌를 하고 있을 땐 더욱 심하다. 지난 시즌도 그렇고,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던 2015~2016시즌에도 그랬다. 딱히 슬럼프가 온 적은 없었지만 팀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부담감은 심했다”라고 털어놨다.

 

그가 베테랑인 이유는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코트 위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가 시작하면 패배나 부담감에 대한 생각은 안 한다.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열심히 하다보면 같이 하는 동생들도 옆에서 보고 배울 거고, 나를 따라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코트에서는 열심히 하자는 생각만 하고 있다”라는 말로 자신이 베테랑임을 증명했다.

 

김해란은 한국도로공사에서 몸담았던 열한 시즌 동안 정규리그 우승 2회를 비롯해 챔피언결정전을 세 번 치렀지만, 늘 승리의 여신은 그를 향해 미소 짓지 않았다. 팀을 옮긴 뒤에는 하위권을 맴돌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해란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우승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늘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배구를 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재밌게 해왔던 것 같다”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 김해란을 옆에서 지탱해준 것이 바로 그의 남편, 보은 상무 여자 축구팀 코치인 조성원(35) 씨다. 동갑내기인 김해란과 그의 남편은 2013년 결혼한 7년차 부부다. 김해란은 “힘들 땐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다. 남편도 선수 생활을 오래 했다. 둘 다 선수일 땐 고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선수와 지도자로 다른 길을 걷는 부부, 김해란은 “남편이 은퇴 후 지도자가 되고 나서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선수로서 불만을 얘기하면 남편은 ‘코칭스태프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다 선수들 잘 되라고 하는 거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처음엔 섭섭해서 울기도 한다(웃음). 그러다가 남편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다 보면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 덕분에 지금까지 멘탈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라며 남편의 역할을 강조했다.

 

늘 정상의 길을 걷는 김해란도 지치고 힘을 때가 있다. 때로는 멈추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의 남편은 김해란에게 ‘넌 김해란이다’라는 말로 그를 응원했다고 한다. 김해란은 “남편의 한 마디면 복잡했던 머리가 다 정리되는 느낌이다. 남편이 옆에서 ‘네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지?’라는 말을 들으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되돌아보면 다시 힘이 생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누구든지 그냥 왔던 건 결코 아니다. 물론 좋은 일도 있었지만 힘든 일, 어려운 일을 다 극복하고 올라왔다. 남편의 한 마디면 그동안의 노력이 떠오른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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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와 지도자의 갈림길에서’, 김해란이 그려나갈 미래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을 시간임에도 김해란의 이름 앞에는 늘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함께 선수생활을 시작한 동료들 중 대부분은 코트를 떠나기도 했다. ‘살아있는 전설’ 김해란이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비결, 바로 노력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 시즌에 챔피언결정전을 치를 때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공이 오는 곳이 보이는 데도 몸이 안 따라갔다. 이런 걸 극복하려면 당연히 훈련이 필요하다. 부족한 부분을 훈련으로 채우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남자부 최고의 리베로 현대캐피탈 여오현(41) 플레잉 코치는 마흔을 앞둔 지난 2016년 ‘45세 프로젝트(45세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하는 것)’를 선언한 바 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후배들에 밀리지 않는, 오히려 후배들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실력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인 김해란도 지금의 기량라면 ‘40세 프로젝트’, 더 나아가 ‘45세 프로젝트’를 실행하기에 충분한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김해란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사실 생각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나와 여오현 선수의 입장은 다르다. 나는 결혼한 지도 오래됐고, 출산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장기 프로젝트를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던 중 김해란에 대해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은퇴를 고려하는 것 같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전에도 김해란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종종 하기도 했다. 

 

한 시즌을 마무리한 시점에서 김해란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아직도 ‘반반’이라며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생각이 많다. 아무래도 출산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사실 지금 이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하리라고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그냥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은퇴를 할 나이인데 막상 은퇴하려니 아쉬운 마음도 들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김해란은 서른이 되던 해 33살까지 선수생활을 한 뒤 은퇴를 하리라고 결심했다. 그는 “33살이 2016 리우올림픽 때였다. 원래 내 계획은 올림픽을 마친 뒤 곧바로 은퇴하려고 했는데 바로 시즌이 다가와서 자연스럽게 한 시즌을 치렀다. 시즌을 마치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서 흥국생명으로 팀을 옮기게 됐고, 새로운 팀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어서 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은퇴에 대한 고민은 오롯이 김해란 혼자서만 생각했던 것이다. 감독님도, 구단과도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나누진 않았다. 그는 “아무래도 여러 인터뷰에서 은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감독님이나 구단에서도 인지하고 있던 것 같다. 아직은 나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시즌 중이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그러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직은 생각이 더 필요하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은퇴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은퇴 후 진로는 결정을 내린지 오래였다. 그의 꿈은 지도자였다. 그는 “언젠가 선수생활을 마치는 날이 오면 그 뒤로는 코치를 하고 싶다.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할 때도 동생들을 가르쳐주는 게 재밌었다. 내가 알려준 걸 동생들이 실천하는 걸 봤을 때 ‘아, 이런 게 뿌듯함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언제가는 꼭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KGC인삼공사에 있던 시절, 서남원 감독님이 김해란에게 플레잉 코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NO'였다. 그는 “플레잉 코치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선수라면 선수로, 코치라면 코치로 있고 싶었다‘라며 ”경기할 땐 선수로, 훈련할 땐 코치로 있으면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았다. 하나의 역할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에 당시 감독님의 제안을 거절했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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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를 꿈꾸는 김해란에게 박미희 감독은 ‘우상’이었다. 한국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우승을 일군 여성 감독이고, 최장시간 팀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김해란은 “감독님을 보면서 목표가 또 하나 생겼다. 감독님처럼 멋진 감독을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선수와 지도자의 갈림길을 눈앞에 둔 김해란, 그는 “한 번 우승을 해보니 두 번도 해보고 싶고 세 번도 해보고 싶다”라며 “우승 경험이 없었을 땐 딱히 우승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았다.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간 하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한 번 겪어보니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고백했다.

 

흥국생명에게 김해란은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동생들은 물론 박미희 감독까지 베테랑인 그에게 의지하곤 했다. 흥국생명이 통합우승을 이룬 뒤 다함께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던 27일 밤, 김해란의 남편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김해란의 은퇴를 미뤄달라’라는 요구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의 남편은 “결정은 본인이 내리는 것이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건넸다. 

 

김해란은 “남편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했다. 내가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면 그런 선택을 존중할 것이고, 은퇴를 한다 할지라도 그 또한 존중한다고 이야기했다”라고 전했다.

 

2019년은 한국여자배구의 오랜 숙원이던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세계대회가 열리는 해다. 오는 8월에 러시아에서 대륙간 예선전이 진행된다. 여전히 최고의 기량으로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김해란도 충분히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가능성이 있다. 

 

김해란은 “대표팀에서 불러만 준다면 가서 열심히 할 생각이다. 리우 올림픽 때처럼 어쩌다보니 또 다음 시즌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라며 “그래서인지 이제는 내가 은퇴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아무도 안 믿는다. 서른 살 때부터 은퇴한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그런 것 같다”라며 웃었다.

 

 

첫 우승, 함께해준 동료들에게


김해란은 개인기록을 달성했던 날들도, 우승하던 그 날도 늘 동료들을 향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는 “팀의 주장으로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한들 동료들이 따라오지 않으면 팀을 이끌어가기 힘들다. 동료들이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잘 따라와줘서 단합이 잘 됐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라고 말했다. 

 

김해란의 감사 인사는 담백했다. “나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감독님과 코치 선생님들께서 그런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주셨다.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우리를 정말 한 팀으로 만들어주셨다. 이런 점이 정말 감사하다. 별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는 것 같다. 톰시아도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늘 고생했을 텐데 끝까지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 톰시아가 성격도 활발하고 동료들과 잘 어울렸다.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담백한 고백을 이어간 김해란이 동료들에게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해보자”였다. 

 

 

글/ 이현지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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