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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서른넷 한선수의 마지막 올림픽
이정원(ljwon0523@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9-09-06 09:21
그 때 서울 시민의 아침은 태릉선수촌에서 깨웠다. 국가대표 수백명이 새벽 운동 때 함께 지른 함성이 워낙 우랑찼다. 서울 시민들은 매일 새벽 그 소리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태릉선수촌을 과대 포장한 이야기다. 선수촌은 스포츠 엘리트인 국가대표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국제대회를 준비하는 요람으로 존재해 왔다, 

대표선수들이 선수촌에서 남몰래 흘린 피와 땀은 오늘날 한국이 세계스포츠 10대 강국에 오른 원천이 되었다. ‘하면 된다’란 말은 선수촌에서도 통했다. 국가대표가 되면 흘린 땀의 양이 올림픽 성적으로 나타난다는 말을 믿는다. 올림픽 메달 숫자는 국력을 재는 한 척도가 되었다. 

그렇게 스포츠는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었고, 자긍심을 세워주기도 했다. 이제 태릉선수촌의 기능은 새로 지은 충북 진천선수촌으로 넘어갔다. 우리 국가대표 배구선수들도 올 여름 그곳에서 내년 도쿄올림픽을 그리고 있다. 

지금 한국배구는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잡을 듯 말듯하다. 여자배구는 도쿄로 가는 길이 살얼음판이고, 남자대표팀의 경우 가물가물한 상황이다. 올림픽에 나가기가 왜 이렇게 힘 들어졌나고? 그렇게 묻는다면 대한민국 배구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쪽에서 답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프로배구가 출범한 지 벌써 15년이다. 한국 선수들은 V-리그를 찾아온 외국인 선수들과 매해 6개월간 같이 뛰며 적응력을 길러왔다. 그 사이 배구선수 연봉도 많이 올랐다. 등따스고 배부른 세월이다. 그런데도 한국배구의 국제경쟁력은 후퇴하고 있다. 남자팀은 지난해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도전국 지위를 박탈당했다. 여자팀은 올해 겨우 3승(12패)을 챙겼다. 이런 실력으로 올림픽 본선에 나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는 이가 늘어만 간다. 

돌아보면 20세기에 한국 배구는 참 쉽게도 올림픽에 나갔다. 본선 티켓 쯤은 당연하게 따냈다. 올림픽에 남녀 동반 진출한 횟수만 여덟 번이나 된다. 남자대표팀은 오히려 올림픽 티켓을 얻고도 가지 못할 뻔한 사연도 갖고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일이다. 남녀배구팀은 둘다 올림픽 예선을 통과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남자배구의 경우 메달획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파견 대상에서 뻬겠다고 했다. 남북한이 체제경쟁을 한창 벌이고 있던 때다. 한국은 4년전 뮌헨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에 그쳐 사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북한보다 못한 성적을 얻었다. 체육당국은 정권상 층부의 질책을 받았다. 체육회는 몬트리올 올림픽을 앞두고 메달 가능성이 있는 종목 위주로 선수단을 구성하려 했다. 예산도 줄여야 했다. 여자배구는 포함, 남자배구는 제외가 초안이었다. 그 시절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남자배구 선수들은 그냥 포기하지 않았다. 단체로 머리를 깎고 항전했다. 간절함이 통했다. 그들은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 해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여자배구는 한국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남자배구는 6위를 차지했다. 

그런 사연을 갖고 출전하기도 했던 곳이 올림픽이다. 한국 남자배구의 마지막 올림픽은 2000년 시드니 대회다. 지난 20년간 올림픽은 금지 영역이 되어버렸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하는 올림픽 무대다. 지금 쉽게 갈 수 없는 대회가 되었지만 말이다. 얼마전 진천선수촌 미디어데이에서 남자대표팀 최고참 한선수가 말했다. “마지막 올림픽이 되었으면 한다. 꼭 나가고 싶다.” 

만 34세 한선수는 무릎 재활중인데도 대표팀 선발에 응했다. 노장의 간절함이 전해온다. 동갑인 박철우도 훈련에 앞장서고, 한 살 아래 문성민 역시 좋지않은 무릎을 끌고 나섰다. 이런 저런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 승선을 외면하던 때와 다른 기운을 느낀다. 집념과 염원이 서로 통하면 꿈은 이뤄진다. 그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글 / 권부원 편집국장
사진 / 더스파이크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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