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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통역으로 새 배구인생, 안요한 한국전력 코치 & 통역
서영욱(seoyw92@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9-11-01 00:06

올해 한국전력 배구단 통역을 맡게 된 안요한 코치(29)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프로선수로 뛰다가 은퇴 후 외국어를 습득해 프로팀 통역으로 돌아왔다. 그는 코치 역할까지 수행한다. 프로배구에 흔치않은 코치 겸 통역이다. 주 역할은 외국인 선수의 생활을 돕고 코칭스태프와 원활한 소통을 돕는 일이다. 이 재미난 스토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온 9월, 경기도 의왕시 한국전력 연습체육관을 찾아 안요한 코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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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_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5년 한국전력에서 은퇴하고 올해 5월부터 한국전력 코치 겸 통역으로 일하게 된 안요한입니다.

 

Q__팀에서 맡고 계신 일이 많습니다.
네, 물론이죠. 일단 가장 큰 역할은 통역입니다. 외국인 선수 옆에서 생활하는 역할이 우선이죠. 그 뿐만 아니라 코치로도 등록돼 훈련할 땐 코치 역할도 합니다. 공도 때리고요. 그 두 가지가 제 역할입니다.

 

Q__트레이너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은퇴 후 2년 정도 배웠습니다.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고요. 전문 트레이너가 있으니 그 일은은 하지 않습니다.

 

Q__선수 출신이 통역을 맡는다는 게 흔하진 않죠.
아무래도 영어 장벽 때문이겠죠? 저도 제가 지금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제겐 너무나도 과분한 자리예요.


“짧았던 선수생활, 돌아보면 가슴 아프죠”

Q__선수생활에 대해 잠깐 설명 부탁드릴게요.
2년 정도 짧게 했습니다. 두 시즌을 보내고 세 번째 시즌을 앞둔 채로 은퇴했죠. ‘왜 그만뒀어’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결론은 늘 하나였어요.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죠. 실력이 있었다면 어디서든 잡으려고 했겠죠. 그때 생각하면 마음 아파요. 그래도 나름 고등학교서 대학으로 진학할 땐 랭킹 1, 2위 선수라는 이야기도 듣고 했거든요.

 

Q__은퇴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군대에 갔죠. 키가 커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갔죠(신장 197cm인 안 코치는 현역 때 윙스파이커였다). 오후 6시에 퇴근을 하면 시간이 남는 거예요. 그래서 뭘 할까 고민을 많이 했죠.  형이 ‘그 시간 버리지 말고 영어를 배워보는 게 어떠냐’라고 해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Q__그렇다면 3~4년 정도 외국어를 배워 통역이 된 셈이네요.
네, 사실 그 전에는 영어를 전혀 몰랐어요. 처음 시작할 때 개인과외로 외국어를 배웠는데, 정말 A, B, C 알파벳부터 배웠어요(웃음). 쉽진 않았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새로운 것이니까요.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관점이 넓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영어로 된 칼럼도 읽을 수 있고, 그러면서 한국어로 된 것과 비교도 하고요. 언어 외에 다른 지식들도 접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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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_전역 후엔 어떻게 보냈나요.
계속 영어 공부는 했고요. 피트니스 센터에서 일하게 됐어요. 운동을 했으니 한 번 해보라고 권유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2년 정도 들어가 배웠어요. 공교롭게도 그곳이 경기도 평택이었고요. 미군기지가 앞에 있었는데, 영어를 하는 미국 분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배운 영어를 자주 써먹을 수 있었죠.

 

Q__코치와 통역이 되기 위해 준비한 건 아니었네요.
네, 운이 좋았어요. 꼭 이걸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되는 대로 이것저것 최선을 다했더니 길이 열린 거죠.

 

Q__배구 코트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요.
정말 돌아오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했어요. 프로는 되는 사람만 남는 곳이에요. 필요해야 부르는 곳이죠. 선수 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죠.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우면서도, 먼 곳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권영민 코치께서 연락을 주셨을 때 정말 기뻤어요.

 

Q__그게 고향팀이어서 더욱 기뻤을 것 같아요.
맞아요. 한국전력에서 은퇴식도 해줬어요. 제가 뭐라고 말이죠. 은퇴를 결정하고 회사에 부탁하니 흔쾌히 해주셨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별 볼일 없는 선수를 챙겨주겠다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런 따뜻함 때문에 지금도 한국전력은 가족같은 느낌이에요.


투철한 도전정신이 만든 ‘코치 안요한’

Q__권영민 코치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요.
선수 시절에는 서로 알고 지내지 않았어요. 현대캐피탈 선수였으니까요. 우리 형과 친한 사이였어요. 

 

Q__형님께서 이어준 거네요.
(형 안재웅 씨는 2006년 현대캐피탈에 선수로 입단, 이후 1년 만에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외국인 선수 전담코치로 지냈다. 현재는 여자국가대표팀 통역 및 KOVO 심판으로 활약 중이다.)
형도 저랑 비슷한 케이스예요. 정확히는 형이 저보다 먼저 길을 걸어간 거죠. 형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 잘 한 덕분에 저도 이 일을 하게 됐어요. 권 코치님이 형을 보고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 선수 출신이 훨씬 더 외국인 선수 케어를 잘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래서 저를 추천해주셨죠. 그래서 도전하게 됐고 면접 결과 제가 됐어요.

 

Q__운동선수 출신 통역은 어떤 장점이 있는 건가요.
당연히 통역은 말이 잘 통하는 게 중요하긴 해요. 하지만 스포츠 통역은 조금 특별해요. 배구 관련 용어를 잘 알아야 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해요. 예를 들면 감독님께서 ‘오늘은 1번이 안 된다. 좌우로 찢어라’라고 하셔요. 1번은 리시브를 뜻하고 찢으라는 건 좌우로 크게 때리라는 거죠. 이걸 일반 통역은 잘 몰라요. 같은 운동을 해서 바로 아는 거죠. 저는 이제 이걸 가빈에게 ‘리시브가 안 되니 높은 공 기다려라’라고 간단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거죠.

 

Q__같은 배구선수 출신이니 교감에도 도움 되겠어요.
맞아요. 저도 가빈과는 하루 80% 이상 배구 이야기를 해요. 그쪽으로는 정말 잘 통하죠.

 

Q__첫 통역 생활에 만난 외인이 가빈이네요.
가빈은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우상과 같던 선수예요. 저는 아직도 제가 가빈과 같은 사우나에 들어간다는 게 믿기질 않아요. 가빈은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스타거든요. 우리 팀에 와서 함께 배구를 하고, 팀에 잘 녹아들어줘서 정말 고마운 파트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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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_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예상치 못한 길이라고 했는데요. 이전에는 어떤 생각이었나요.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사실 다음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막막했죠. 중·고등학교 코치 혹은 체육교사 정도를 생각하기만 했죠. 그런데 전 배구를 떠나 좀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돈을 떠나 배우고 싶은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영어도 했고, 피트니스에도 도전했고요.

 

Q__도전정신이 투철한 편인가 봐요.
도전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정해진 걸 싫어하고요. 뭐든 일단 해보는 성격이에요.

 

Q__일을 시작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안 코치 아버지 안병만 씨는 1955년생으로 과거 금성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어머니 권인숙 씨는 1957년생이고 선경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죠. 사실 제가 그 전에 한 3개월 정도 백수였거든요. 부모님께서 늘 ‘뭐 할래. 뭐 될래’라고 하셨죠. 두 분 모두 배구 국가대표셨거든요. 티는 안 내셨지만 두 분 모두 아이들이 국가대표가 되길 기대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저나 형 모두 국가대표로 뛰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그것보다 더 뿌듯하신가 봐요. 본인들이 알아서 길을 찾아가니까요. 얼마 전에 형이 여자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면서 태극기를 달았거든요. 그걸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Q__두 자녀가 스스로 길을 찾았다는 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나 보네요.
딱 그거죠. 정말 뿌듯해 하셨어요. 특히 우리 형을 엄청 좋아하세요. 어머니가 요새 SNS에 푹 빠지셨는데요, 그 사진의 80%는 형이에요. 한 20%가 저고요(웃음). 

 

Q__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고요.
네, 올해 4월 27일에 했습니다. 한창 핫한 신혼이죠. 재밌는 게 하나 있는데요. 제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걸 결혼 딱 이틀 전에 알게 됐어요. 전 오히려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죠. 엄청난 겹경사였어요. 주변 친척들 모두가 결혼식에 오셔서는 결혼 축하보다 ‘너 한국전력 간다며’라고 그걸 더 축하해 주셨어요.


“배구 꿈나무들아, 좌절이 곧 시작이다.”

Q__하고 있는 일은 어떤가요.
자부심을 가지죠. 요즘 주변에서 저를 정말 높게 평가해주세요. 장병철 감독님, 권영민 코치님께서 늘 ‘네가 최고다’라고 응원해주시죠. 일도 온전히 제게 다 맡겨 주시고요. 힘을 받아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Q__통역에 코치 일까지, 정말 바쁘겠어요.
맞아요. 영어도 해야 하고요. 배구도 공부해야죠. 사실 은퇴한 이후로 배구를 좀처럼 안 챙겨봤어요. 아무래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안 봤던 것들을 지금 다시 챙겨보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 동안 배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선수들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공부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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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_배구선수 출신으로서 다양한 길이 있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데요.
그런 말을 들으니 좀 더 자부심이 생기네요. 배구를 하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Q__후배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요.
우선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꼭 영어가 아니더라도 모든 걸 도전하면 해낼 수 있어요. 일단 하고 있는 배구를 열심히 하면 돼요.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어요. 안되면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잘 되면 더 좋은 거고요. 다른 길이 분명 있어요.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가 그 마음을 잘 알아요. 제가 선수생활을 굉장히 일찍 포기했잖아요. 세상이 다 무너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저도 겪어봤으니까요. 그 어떤 경험보다 더 큰 슬픔이죠. 왜냐하면 ‘코트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라는 느낌이 정말 크거든요. 그런데 그 좌절이 전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좌절이 긍정으로 바뀌는 순간, 모든 게 새로 시작돼요.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길은 많아요. 배구라는 것을 전문적으로 배운 셈이니 그걸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해요.  

 

Q__이제 가빈이 인터뷰를 하면 카메라 앞에 같이 나서야 하네요.
흠….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가빈에게 간단한 한국어를 가르쳐서 인터뷰를 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이요. 네 농담이고요, 카메라 앞에 서면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TV에 자주 나오게 되니까요.

 

Q__끝으로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먼저 고마운 게 선수들이 저를 하나같이 ‘코치님’이라고 불러요. 나이가 많은 선수들도요. 이걸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여름에 정말 고생들 많이 했어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그 노력이 꼭 시즌 때 빛나길 바랍니다. 여러분, 다 같이 한 시즌 잘 지내봐요!


글/ 이광준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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