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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회복무요원 근무중 류윤식
공격본능 죽이고 산 세월, 나는 수비형 공격수. 2년 간의 공백, 그 속에서 찬란한 내일을 준비하다.
서영욱(seoyw92@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8-06-18 09:49

스포트라이트, 누구나 받고싶은 빛이다. 튀고 싶은 욕망, 주연으로 살고싶은 희망, 꿈틀대는 본능을 제어하기 어렵다.  

 

삼성화재 윙스파이커 류윤식(29)은 코트에 나서면 스파이크 본능을 죽여야했다. 공격수로 빛나고 싶었지만 그는 수비형 선수로 뛸 때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래서 살림꾼이란 칭찬이 따랐다. 류윤식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수식어가 있을까.  

 

박철우-타이스로 구성된 삼성화재의 쌍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이른바 수비형 공격수였다. 햇빛이 쨍쨍하던 어느 날,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서 류윤식을 만났다.  

 

 

후련하게 마무리한 배구인생 전반전


류윤식은 2018년 5월 31일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 중이다. 2017~2018시즌을 모두 마친 그는 “홀가분하다”라며 자리를 비우는 소감을 표현했다.

 

“지난 시즌은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이라 그런지 홀가분하게 경기를 할 수 있었어요. 후회 없이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편하게 경기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2016~2017시즌,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삼성화재는 2017~2018시즌을 시작하기 전 ‘명가재건’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시즌 초반 11연승을 내달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던 삼성화재는 정규리그를 2위로 마감하며 옛 명성을 되찾았다. 

 

류윤식은 “우리가 목표로 했던 것에 70~80% 정도는 달성했다고 생각해요”라며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치렀던 다른 시즌보다 굴곡도 적었고 꾸준하게 제 플레이를 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나름 만족스런 한 시즌을 보낸 류윤식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2년간 자리를 비우게 됐다. 정든 코트를 떠난다는 점에서 아쉬울 법도 한데, 그의 얼굴에서는 기대감이 묻어났다.

 

“2년이라는 시간을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을 거예요. 사회복무로 대신하는 만큼 제 시간이 많아지니까 몸 관리를 더 열심히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늘 부족하다고 느꼈던 체력이랑 웨이트 훈련을 위주로 하려고요. 몸 관리 열심히 하면서 그동안 배구만 하느라 제대로 못해봤던 사회생활도 해보고 싶어요.” 

 

삼성화재의 주장이자 토종 거포로 V-리그 최고의 공격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철우 역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바 있다. 박철우는 복귀전이었던 2016년 12월 2일 대한항공과 경기에서 22득점, 공격성공률 55.88%로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이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류윤식은 자연스레 ‘박철우처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박)철우 형을 보면서 ‘자기관리는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라고 배웠어요. 그전부터 잘했지만 공백기를 가진 후에 훨씬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배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철우 형도 그렇고 (지)태환이 형도 그렇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지내는 동안은 배구선수가 아닌 평범한 남자로 살기 때문에 느끼는 게 많을 거라고 얘기해주셨어요. 아무래도 2년 동안 경기를 못 하니까 아마 배구가 더 하고 싶겠죠(웃음)? 앞으로 2년이 제 배구인생에 정말 중요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군복무를 마치고 코트로 복귀했을 때 제 전성기가 시작될 수도 있을 거고, 정반대로 끝없는 슬럼프에 빠질지도 모르죠. 저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2년 동안 몸 관리 잘할 자신 있어요. 다녀와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거예요.”

 

삼성화재에서 류윤식이 맡은 역할은 줄곧 ‘수비’였다. 엄연한 주전 날개공격수임에도 지난 시즌 그의 공격점유율은 7.4%에 그쳤다(정규리그 기준). 삼성화재에서 뛴 지난 네 시즌 정규리그 평균 공격점유율은 7.65%였다. 그에게도 공격 본능이 없을리가 없다.

 

“(황)동일이 형이나 다른 형들한테 공격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형들도 제가 공격 부분에서도 팀에 보탬이 돼주길 바랐죠. 그런데 저희 팀에는 저보다 훨씬 더 좋은 공격수들이 많거든요. 철우 형이나 타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박)상하 형, (김)규민(현 대한항공)이도 정말 잘해줬어요. 이런 공격수들을 잘 활용하려면 일단 리시브나 수비가 돼야 하잖아요. 사실 처음에는 공격 기회가 없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제가 열심히 수비를 해서 우리 팀이 이기는 경기를 하게 되면 다음 경기 때 더 열심히 수비를 하게 되더라고요. 공격은 제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우리는 팀으로 경기를 하잖아요. 삼성화재에서 배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배웠던 점이 ‘헌신’인 것 같아요.”

 

신진식 감독 역시 류윤식에게 ‘헌신’을 주문했다. “감독님께서는 ‘네가 잘하려면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해야 하지만 우리 팀이 이기려면 네가 수비와 서브, 블로킹에서 보탬이 되어줘야 한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공격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딱 아쉬움까지인 것 같아요. 팀에서 제가 맡은 역할이 있으니까요.” 

 

 

대한항공→삼성화재, 그를 바꾼 4년


류윤식이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2014년 처음 그가 대한항공에서 삼성화재로 이적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주변은 온통 걱정과 의심뿐이었다. ‘과연 류윤식이 삼성화재에서 버틸 수 있을까?’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응원보단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사실 처음 트레이드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망연자실한 기분이었어요. 물론 그 당시에 삼성화재에서 저를 필요로 했다고는 해도 시즌 도중에 팀을 옮긴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제 의지도 아니었고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류윤식’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고 난 후였다. 그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의 트레이드가 제 배구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라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얘기했다. “이왕 팀을 옮기게 된 거, 무조건 삼성화재에서 우승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운동을 했어요. 아버지께서도 제가 삼성화재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잘 버티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웃음).”


시간을 거슬러 삼성화재에 첫 발을 들였던 때를 떠올렸다. “정말 무서웠어요”라는 말로 회상을 시작한 그는 “처음 미팅을 하러 들어갔는데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주전으로 뛰던 형들이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났었고 분위기도 딱딱했어요. 삼성화재만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었죠.” 시즌 중반 새로운 환경에 놓인 류윤식을 위해 당시 삼성화재 감독이었던 신치용 삼성화재 고문이 신경을 많이 써줬다고 한다.



류윤식은 한양대 1년 선배였던 지태환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삼성화재 문화에 녹아들었다. 


그는 배구인생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고 처음 뛴 날’을 꼽았다. 2014년 1월 22일, 삼성화재는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한 원정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뒀다. 이날 류윤식은 공격성공률 41.67%(5득점), 세트 당 리시브 성공률 46.43%, 리시브 점유율 39.44%를 기록했다. “그 때 배구선수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때가 제 배구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아쉬운 순간 역시 삼성화재에서 뛰던 순간이었다. “2014~2015시즌 챔피언결정전 때가 아직도 너무 아쉬워요. 그 때 제가 느끼기에도 제 플레이가 정말 부진했었거든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흔들렸어요. 그 때 통합우승을 놓쳤던 게 가장 아쉬워요.”


류윤식은 직전 시즌(2013~2014시즌) 통합우승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반쪽짜리 통합우승이었다. 


“시즌 중반 트레이드 돼서 온 거라 제 역할이 크지 않았어요. 그리고 새로 합류한 지 한 달 만에 또 무릎 수술을 하느라 한동안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요. 다행히 큰 수술은 아니라 챔피언결정전 때 몇 차례 뛰긴 했지만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거잖아요. 꾸준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죠. 그래서 그때 이후로 제 목표가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온전히 치른 후 통합 우승을 하는 것’이 됐어요.”


류윤식이 사회복무요원으로 보낼 2년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처음 프로에 와서 운동을 할 때 웨이트에 대한 중요성을 모른 채 경기를 뛰어서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갔었어요. 처음 왼쪽 무릎에 부상을 당하고 나서 6개월 동안 재활하면서 공을 제대로 만지지도 못한 상태에서 삼성화재로 트레이드 된 거였어요. 6개월 동안 쉬면서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게 체력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그래서 삼성화재에 와서는 정말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요. 앞으로 더 체력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 제 몸을 끌어올리고 싶어요.”


삼성화재는 2013~2014시즌 이후 아직 유니폼에 새로운 별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월드클래스’ 시몬(전 OK저축은행)의 등장으로 두 시즌 연속 OK저축은행이 최정상에 올랐고, 삼성화재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16~2017시즌에는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6~2017시즌이 끝나고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은 류윤식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잔류를 택했다. 


“신치용 감독님은 저에게 은인과도 같은 존재에요. 배구선수로서 저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셨어요.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FA 자격을 얻었을 때 단 한 번도 다른 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앞으로 남은 선수생활을 모두 삼성화재에서 보내고 싶어요. 삼성화재에 있으면서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거든요. 프로 선수로서 시장에 나와 자신의 가치를 평가 받고 좋은 대우를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저는 계속 삼성화재에 있으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물론 우승도 하고 싶고요!”



류중탁 아들 류윤식이 말하는 아버지


배구선수 류윤식을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의 아버지, 류중탁 명지대 감독이다. 고려증권에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그의 아버지는 1998년 남자배구국가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20년 동안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류윤식은 아버지에게 배구를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한다.


'류중탁의 아들'에서 이제는 오롯이 '배구선수 류윤식'으로 성장했다.


“오히려 처음 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머니 때문이었어요. 어머니가 학창시절 배구를 하셔서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 배구단에서 종종 배구를 하셨거든요.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놀다가 자연스럽게 배구를 접하게 됐죠.”


여느 운동선수처럼, 그의 어린 시절도 발랄함 그 자체였다. “가만히 있질 못했어요. 그래서 태권도, 농구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농구선수를 해볼까 하다가 부모님 두 분 다 배구를 하셔서 자연스럽게 배구 쪽으로 방향이 잡힌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한 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어요. 저만 배구부가 있는 중학교로 가게 돼서 친구들이랑 떨어졌어야 했는데 막상 배구를 배워보니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게 된 것 같아요. 배구를 하기 전에는 키도 딱히 큰 편이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한 정도였는데 중학교 3년 동안 1년에 10cm씩 크더라고요.”


유명한 감독을 아버지로 둔 선수라면 특별한 무언가를 배울 거라는 세상의 시선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배구는 감독에게 배우는 것이 맞다”라며 아버지로서 역할에만 충실했다고 한다. “어렸을 땐 아버지가 왜 가르쳐주시지 않는지 궁금했어요. 그냥 ‘다치지 마라’, ‘아픈 곳이 있으면 바로 말해라’ 이 정도 말씀만 하셨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아버지의 행동이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버지가 배구에 대해서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셨으면 부담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어린 시절, ‘류중탁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꼬리표였다. 류윤식 역시 “정말 힘들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경기를 할 때마다 저를 보는 시선들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진지하게 배구를 포기해야할지 고민하기도 했어요. 아버지께서도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힘들면 여기서 그만 하라’라고도 하셨어요. 아버지 입장에서 본인 때문에 자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그런데 제가 배구를 시작한 이유도, 앞으로 배구를 계속 할 이유도 ‘주변의 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죠. 어렸을 때 힘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지만, 류윤식도, 류중탁 감독도 힘들게 버텨온 시간들이었다. “아버지가 저한테 굉장히 미안해하셨어요. 시간이 많이 흐르고 제가 프로에 오고 나서 아버지랑 대화를 하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어요. 제가 힘들었던 만큼 아버지도 힘드셨던 거겠죠. 그래서 만약 제가 아들을 낳는다면 제 아들은 배구를 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요.”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자리, 대전 아이돌



V-리그에서 아이돌이란 각 구단별로 매력 있는 외모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선수를 말한다. 류윤식은 삼성화재에 이적한 이후 4년 동안 꿋꿋하게 대전 아이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베테랑’ 아이돌이다. 


그는 “처음 대전 아이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감사했죠. 좋은 의미의 별명이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아이돌을 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아직까지 그렇게 생각해주시니까 기분은 좋더라고요(웃음).”


류윤식의 기억에 남는 별명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삼성화재 선수 중 가장 여린(?) 몸매를 가진 그를 응원하기 위해 ‘말벅지 류윤식’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체육관을 찾은 팬이 있었다. “형들이 그 플래카드를 보고 저를 엄청 놀렸어요. 팀에서 제일 비실비실한데 말벅지라고 하니까 재밌었나봐요. 물론 저도 엄청 재밌었어요. 그 분께서 열심히 응원해주셔서 힘도 났고요.”


대전 아이돌인 만큼, 대전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그를 응원하는 열성 팬들이 여럿 있다. 류윤식은 그 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팬이 있다며 그 팬을 소개했다. 


“제가 대학생 때부터 저를 응원해주는 팬이 있어요. 정말 오래됐죠. 저를 정말 잘 챙겨줘요. 직접 찍은 사진으로 제 프로필을 만들어서 주기도 하고 매년 제 생일도 꼭 챙겨줘요. 시즌이 끝나면 다른 팬들을 모아서 작은 팬미팅 같은 행사를 만들어주기도 해요. 제가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늘 챙겨줘서 정말 고맙죠.”



앞으로 2년, 나를 잊지 말아요


V-리그에 입성한 지 7년, 그에게 ‘배구선수’로서 자신에게 점수를 매겨달라는 질문에 그는 60점이라는 조금은 박한 점수를 줬다. “7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도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체력적으로 크게 좋아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지만요. 항상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시즌이 끝나고 나면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더라고요. 특히 공격 면에 있어서 힘 있는 플레이를 하지 못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지금 부족한 40점은 군복무를 마친 후에 돌아와서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코트를 떠나는 배구선수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대에 가득 찬 류윤식. 그의 말투 곳곳에서 강한 의지와 확신이 묻어났다. “2년 후엔 지금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인터뷰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아직 그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부탁했다. “매 시즌 항상 응원해주시고 배구선수 류윤식 뿐만 아니라 사람 류윤식도 많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더 발전한 모습으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보답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저 없는 동안에도 삼성화재 많이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세요. 2년 동안 저 잊지 말고 꼭 기다려주세요!”



* 류윤식이 말하는 류윤식은 어떤 사람? *


어떤  [ 아들 ]
나름 효자의 모습을 따라하는 아들. 효자라기보다는 효자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아들이다. 아들만 둘인 집이라 엄마랑 더 가까이 지내려고 한다. 밖에 돌아다니기보다는 가족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한다. 늘 가족을 1순위로 생각하고 생활하고 있다.

어떤  [ 동생 ]
겉멋 든 동생. 형과 두 살 차이라 어렸을 때 엄청 많이 싸웠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내가 배구를 시작하면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언제 한 번은 형이랑 대화를 하면서 ‘서로 가정을 꾸리고 나서도 가까이 지내자’라고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떤  [ 친구 ]
많이 부족한 친구.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 쉬는 시간이 생기면 편한 사람들만 주로 찾았다.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많이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먼저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어떤  [ 선배 ]
편한 선배. 좋은 선배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때로는 선배로서 기강을 잡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어떤  [ 후배 ]
고집 센 후배. 선배들이 시키는 게 있어도 내 생각에 ‘아니다’싶으면 절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선배들과 편하게 잘 어울린다. 특히 상하 형이 많이 도와줬다.

어떤  [ 남편 ]이 되고 싶은지
가정적인 남편. 빨리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다. 가정이 있는 형들의 자녀들이 체육관에 오는 거 보면 부럽다.

어떤  [ 아빠 ]가 되고 싶은지
우리 아버지 같은 아빠. 앞에서는 힘든 모습 보이지 않고 늘 든든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계신다. 대신 뒤에서 정말 많이 신경써주시고 챙겨주시고 궂은일을 다 하셨다.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거의 못 봤다. 그런 듬직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



글/ 이현지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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