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유연한 피드백 필요’ 이제부터 임도헌 감독의 역할도 중요하다 [아시아선수권]

김희수 / 기사승인 : 2023-08-22 06: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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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지만, 감독의 역량도 분명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제는 임도헌 감독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됐다.

한국이 21일 이란 우르미아에서 열린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남자선수권 F조 조별예선 경기에서 파키스탄을 세트스코어 3-1(26-28, 25-20, 32-30, 25-22)로 꺾고 조 1위를 차지했다. 허수봉이 경기 최다인 26점을 터뜨렸고, 정지석이 23점으로 뒤를 이었다. 미들블로커로 나선 임동혁도 11점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완벽하지 않았다. 우선 범실 관리 능력이 부족했다. 33개의 범실을 저지르며 파키스탄(31개)보다도 많은 범실을 저질렀다. 특히 점수 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흐름을 끊는 서브 범실이 나온 것이 뼈아팠다. 3세트 듀스 접전에서는 서브 범실로만 상대에 4점을 헌납했을 정도였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도 완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군 복무 도중 대표팀에 합류한 황택의와 나경복의 경기력이 아쉬웠다. 황택의는 3세트 중반부터 제 실력을 발휘하며 경기를 잘 마무리했지만 그 전까지의 패스와 경기 운영은 안정성이 떨어졌다. 특히 양 날개로 뿌려주는 패스가 공격수들의 스텝과 미묘하게 어긋나며 허수봉과 정지석이 허리를 꺾어가며 때려야 하는 패스가 자주 나왔다.

그런가하면 나경복은 1세트에 찾아온 세 번의 서브 차례를 모두 범실로 마무리했고, 리시브에서도 파키스탄의 목적타 대상이 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강점인 공격이나 사이드 블록에서도 아직 정상 궤도에는 오르지 못한 모습이었다. 요약하자면 약점은 부각되고, 강점은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 대목에서 아쉬웠던 것은 임도헌 감독의 빠르고 유연한 판단이었다. 나경복의 컨디션이 아직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시간은 지난 방글라데시전부터 충분했던 데다, 1세트를 파키스탄에 내줬기 때문에 2세트는 나경복 대신 다른 아웃사이드 히터를 선발로 낼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임 감독은 2세트 선발 명단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이후 2세트가 시작하자마자 나경복이 또 한 번 제대로 된 리시브에 실패하며 무사웨르 칸에게 다이렉트 공격 득점을 헌납했고, 이에 임 감독은 나경복을 빼고 정한용을 투입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 타이밍 늦은 교체로 굳이 주지 않아도 될 1점을 내준 셈이었다.

황택의의 교체 시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1세트에 이어 2세트에도 황택의의 패스는 다소 불안정했다. 4-3에서는 김규민과 속공 호흡을 맞추지 못했고, 10-7에서는 정지석에게 내주는 파이프 패스가 너무 낮게 깔리면서 범실에 그쳤다. 그러나 임 감독은 두 번 모두 교체 타이밍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이후 허수봉의 퀵오픈이 우스만 파르야드 알리의 블로킹에 잡히며 10-9 1점 차가 된 뒤에야 황택의를 빼고 황승빈을 투입했다. 조금 더 빠른 교체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선수 교체뿐만 아니라 임 감독의 전술 수정 속도에 대해서도 보완할 부분은 존재했다. 무사웨르 칸의 속공은 경기 초반 파키스탄의 매서운 무기였지만, 파키스탄의 세터 하미드 야즈만은 초반 이후 이를 역이용해 우스만을 중심으로 파이프를 적극 활용했다. 우스만은 한국의 미들블로커들이 페이크 속공에 속아 자신을 막지 않는 사이 무인지경에 대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경기가 중반에 접어들 때까지 한국의 미들블로커들은 파이프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페이크 속공에 투 블록이 떴다가 파이프에는 블록을 떠보지도 못하는 상황이 나왔다. 우스만이 피지컬적으로 뛰어난 선수가 아니고(189cm), 중앙에서의 블록이 좋은 베테랑 김규민과 이날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던 임동혁이 버티고 있었기에 임 감독이 블로커들에게 파이프를 견제하도록 빠르게 지시했다면 충분히 통제가 가능한 공격 옵션이었다. 

 

다가오는 12강 플레이오프부터는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보다 더 까다로운 팀들을 상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임 감독의 피드백이 더 빠르고 유연해진다면, 이는 선수들의 경기 내용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경기에서도 임 감독이 4세트 23-21에서 파키스탄의 네트터치를 예리하게 잡아낸 뒤 비디오 판독으로 매치포인트를 만드는 장면은 경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더 강한 팀들을 꺾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대표팀의 모든 구성원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 임 감독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과연 남은 대회 기간 동안 임 감독이 기존에 갖고 있던 베테랑의 노련함에 빠른 전술 변화 능력까지 더하며 선수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_더스파이크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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