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의 토종 에이스였던 과거도, 출전에 목마른 후보 선수였던 지난 시즌도 지금의 이강원에게는 깨달음을 줬다. 그는 이제 과거를 뒤로 한 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시작을 준비한다.
이강원에게 도드람 2022-2023 V-리그는 뼈아픈 시즌이었다. 리그 개막 전 치러진 컵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리버맨 아가메즈와 김지한의 활약 속에 좀처럼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총 3경기·7세트에 나서 9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2012-2013 V-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화려하게 V-리그에 데뷔해 KB손해보험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초라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2023-2024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강원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2일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더스파이크>와 만난 이강원은 “비시즌 동안 많은 걸 쏟아냈다. 이제는 적은 나이가 아니기에 마지막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도, 선수로서 해야 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포지션은 아포짓 위주로 준비 중이고, 감독님이 강조하시는 기본기와 팀워크를 다지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고 비시즌 근황을 먼저 전했다.
이강원은 지난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덤덤한 듯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10경기 미만으로 출전했을 정도로 기회를 얻지 못한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이강원은 “사실 많이 힘들었다.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지난 시즌이 끝나고 스스로를 많이 돌아봤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다. 원래는 어려움은 스스로 이겨내자는 주의였는데,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내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며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 시즌의 부침은 이강원에게 깊은 깨달음을 줬다. 그는 “내가 이제 적지 않은 나이라는 걸 지난 시즌이 끝난 뒤에 느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걸 더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몸 관리도 더 열심히 하고, 세세한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내 안의 비어 있던 공간들을 채워가고 있는 느낌이다”라고 더욱 단단해진 최근의 마음가짐을 밝혔다.
이강원은 계속해서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릴 때는 몸 관리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체중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하고, 수면 시간도 잘 조절해야 한다. 심리적으로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낸 이강원은 “어릴 때부터 잘 할 걸 하는 후회도 든다. 그때로 돌아가면 이런 부분들에도 신경을 많이 쓸 것이다. 그래서 지금 후배들에게도 종종 몸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며 웃어보였다.
이제 이강원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느낄 것들은 챙겨둔 채, 나머지는 뒤로 하고 다가올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사실 지난 시즌에는 배구 선수로서의 내 신념이라는 걸 버릴 뻔 했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선수로서의 신념이 굳건하다. 조금이라도 기회가 온다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걸 보여주고 싶다. 어떻게든 내 몫을 해보고 싶다”며 간절함과 의지를 표출했다. “젊은 선수들에게도 체력과 힘, 정신력은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웃음). 내 경쟁자들이 아무리 배구를 잘하고 젊어도 내가 이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전한 자신감과 투쟁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배구 선수로서의 신념을 지키면서, 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시즌을 완주하고 싶다”고 다가오는 시즌의 목표를 밝힌 이강원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응원해주시는 팬 분들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좌절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강원은 화려했던 영광의 시절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흔들렸던 고난의 시간에 휘둘리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모든 과거들을 소중한 밑거름으로 삼으며 또 한 번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재정비한 이강원의 10번째 시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사진_인천/김희수 기자, 더스파이크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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