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만 오면 힘드네요...”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이 인터뷰실에 들어오며 했던 첫 마디였다. 전술적 판단 오류가 있었던 탓에 많은 것을 느낀 모습이었다.
그래도 결국엔 승리했다, 대한항공은 우리카드와의 2023-2024 도드람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경기에서 3-2(26-28, 23-25, 25-19, 25-17, 15-12)로 승리했다.
틸리카이넨 감독도 역스윕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1, 2세트 당시 전술적 오류를 인정한다. 선수 교체 및 기용 과정에서 판단을 잘못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3세트에는 이를 돌릴 수 있었다. 로스터가 크고 좋은 선수들이라 결과가 잘 나왔다”며 안심했다.
틸리카이넨 감독이 말한 1, 2세트와 3세트 이후의 차이는 선수 기용이 가장 컸다. 3세트부터는 한선수 대신 유광우, 정지석 대신 정한용이 코트에 나섰다. 무라드 칸(등록명 무라드)도 임동혁과 교체돼 많은 득점을 올렸다.
유광우는 이날 53.52%의 세트 성공률로 팀을 지휘했다. 다양한 공격으로 상대 블로킹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지옥에 발을 담갔다가 나온 느낌”이라며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이후 “무라드, 정한용과 함께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했다. 팀 융화가 잘 돼서 좋은 결과로 이어져 다행”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2세트가 끝난 뒤, 대한항공 벤치에서는 많은 얘기가 오갔다. 유광우는 “상대 공격수와 블로킹 코스를 짚고 넘어갔다. 경기가 분석과 다르게 흘러가 어려웠다. 하지만 스포츠는 여러 상황이 언제 생길지 모르고, 그 부분에 대해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의 피드백을 받아들였다”며 코치진에 대한 믿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유광우와 무라드의 호흡도 좋았다. 그는 “비시즌부터 맞춰 온 게 아니다 보니 ‘눈빛만 보고 맞춘다’는 느낌은 부족하다. 그렇기에 제일 기본적인 토스 길이, 높이부터 조절하는 중이다. 서로 맞추고 맞춰주고 있다”고 밝혔다.
정한용도 이날 공격 15점과 더불어 블로킹과 서브도 각각 4개, 2개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공격 성공률도 53.57%로 평균치를 웃돌았다. 선발 출전이 아닌 교체 투입에도 본인의 몫 이상을 보여줬다.
이번 시즌 1라운드에는 선발 기회를 충분히 부여받았던 정한용이다. 한 경기에 29점을 올리며 에이스로 활약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는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에 대해 그는 “생각이 많아지며 부담이 커지고 위축됐다. 하지만 형들(정지석, 곽승석)을 보며 준비했고,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고 본인을 평가했다.
유광우가 바라보는 정한용도 비슷했다. 유광우는 정한용에게 “앞으로 에이스가 돼야 한다. 그러니 공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말고 묵묵히 에이스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대한항공이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웜업존에서 출발한 베테랑 세터 유광우, 신예 아웃사이드 히터 정한용은 기회가 오길 기다렸고, 그 기회를 잡았다. 더군다나 대한항공은 아포짓 2명의 힘 뿐만 아니라 베테랑 세터 2명의 시너지 효과까지 드러내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 시즌 우리카드 원정 경기에서 첫 승을 거두면서 상대전적은 2승3패를 기록했다. 선두 싸움에서 먼저 웃은 대한항공이다. 5라운드 마지막 상대는 삼성화재다.
사진_장충/원지호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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