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제천/최원영 기자] ‘아시아 거포’로 불렸던 강만수(62) 전 우리카드 감독이 배구 꿈나무 선수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2017 KOVO 유소년 원포인트 배구 클리닉이 1~3일 제천 청풍리조트에서 열린다. 전국 20개교 유소년 세터 선수 45명, 지도자 19명 등 총 64명이 클리닉 현장을 찾았다. 첫 번째 날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론 교육이 주를 이뤘다. 강만수 감독도 강연자 중 한 명이었다.
“이런 수업을 해보는 건 처음”이라며 멋쩍게 등장한 강 감독. 자신의 배구 인생을 주제로 삼았다. 이윽고 타임머신을 타고 하동초등학교로 날아갔다. 5학년 때 핸드볼로 운동을 시작한 그는 하동중 진학 후 축구와 배구로 종목을 바꿨다. 중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배구에 입문했다. “우리 때는 정말 열악했다. 먹을 게 없어서 라면을 한 솥 끓여서 불린 다음 다같이 나눠먹곤 했다. 진짜 못 먹고 살았는데 다행히 키는 195cm까지 잘 자랐다”라며 옛 생각에 잠겼다.
운동시설도 변변치 않았다. “운동하다 몸이 아프면 선수들이 수건에 물을 묻혀서 그걸로 찜질하곤 했다. 지금처럼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이 따로 없었다. 모래사장에서 하루 종일 뛰었다. 체육관도 없어서 운동장에서 배구를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너무 추웠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다”라던 강 감독.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게 악착같이 운동에 매진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그 해 1972 뮌헨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이 있었는데, 강 감독이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것이다. “선배들이 다 나보다 10살은 많았다. 눈만 쳐다봐도 무서웠다. 막내니까 매일 주전자 들고 다니고, 여름에 수박 파서 얼음 동동 띄워서 간식 나눠주고 다녔다. 그때 나는 키는 큰데 못 먹어서 굉장히 말랐다. 다른 종목 선수들이 ‘대체 저 양반은 몇 살인데 막내 일을 하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그는 뮌헨올림픽에 출전하며 비행기를 처음 타봤다. 국제무대는 낯설지만 설레는 경험이었다. “비행기 멀미가 심해서 아무 것도 못 먹었다. 빈 좌석에 10시간 넘게 누워만 있었다. 뮌헨에 갔는데 쿠바 선수들이 눈에 띄었다. 점프가 너무 높아서 한 1미터씩은 뛰는 것 같았다. 근데 점프만 좋고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겼다. 아, 물론 나는 물 주전자만 들고 다녔다”라며 크게 웃었다.
이후 1984 LA올림픽을 끝낸 강 감독은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며 학비를 벌기 위해 도레이 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운동만 하고 살았다. 그래서 공부도 해보고 싶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은 지금부터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배구도 중요하지만 학업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라고 말을 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1991년에 귀국 후 이듬해인 1992년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지도자로 변신했다. 현대자동차써비스, KEPCO45를 거쳐 우리카드를 맡은 그는 2014~2015시즌 중반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나며 지도자 꿈을 잠시 접었다.
여전히 강 감독 마음 속에는 배구를 향한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그는 선배로서 쓴소리도 더했다. “과거에는 모든 선수가 멀티 플레이어였다. 미들블로커도 후위 공격하고 리시브 받고 그랬다. 리베로 제도가 없었기에 다들 기본기를 열심히 갈고 닦아 전천후로 거듭나곤 했다. 요즘은 포지션 별로 너무 분업화돼 있다. 코트 안에 있는 모두가 공수 양면에서 어떤 플레이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노력 없인 절대 큰 선수가 될 수 없다”라고 힘줘 말했다.
시간이 끝나가자 강 감독은 자유 질문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생다운 호기심 넘치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시력이 안 좋은 선수들은 경기 어떻게 했어요?”라는 물음에 강 감독은 “그냥 안경 끼고 했지. 공 잘못 맞으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정신 차리고 했어. 우리 때는 렌즈가 없었거든”이라고 답했다.
“뭐 드시고 키가 이만큼 컸어요?”라고 묻자 “아까 말했잖아~ 라면! 난 라면 먹고 이만큼 컸어. 너희도 조금은 먹어도 돼. 괜찮아”라고 답해 웃음바다가 됐다. “당시 라이벌은 누구였어요?”라는 목소리에는 “없었어. 진짜(웃음). 김호철(62, 전 남자국가대표팀 감독) 세터랑 호흡을 맞췄으니 라이벌은 그냥 김호철이라고 해야겠다. 맨날 나한테만 공격하라고 공을 엄청 올리는 거야. 내가 걔 때문에 아프기 시작했어. 지금도 아주 아파 죽겠어. 너희 세터들도 공격수들 공 골고루 잘 나눠서 올려줘”라며 솔직 담백한 답변을 이어갔다.
한 아이는 “어? 수염은 어디 갔어요?”라며 손을 번쩍 들었다. 강 감독은 “수염 원래 안 났어”라며 응대했다. 이날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질문은 “여자들한테 인기 많았어요?”였다. 강 감독은 “내가 이야기 했지. 나 인기 장난 아니었어. 체육관 지나가면 경찰들이 날 지켜줘야 했어. 대표팀, 실업팀 가면서 난리 났지. 장충체육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들어갈 정도였다니까”라며 능청스러운 웃음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입담마저도 거포인 강만수 감독. 덕분에 아이들도 지도자들도 다같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진/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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