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3차전 승리한 페루자
[더스파이크=조훈희 기자] 페루자와 트렌티노가 2차전 패배를 설욕했다.
23일 열린 2018-19시즌 이탈리아 프로 배구리그(Lega Pallavolo Serie A) 플레이오프 4강 3차전. 홈 팀인 서 시코마 코루시 페루자와 이타스 트렌티노가 아지무트 레오 슈즈 모데나와 쿠치네 루베 치비타노바에 각각 3-1, 3-2 승리하며 지난 경기 빚을 갚았다. 지금까지 치러졌던 PO 4강 6경기 중 5승이 홈 팀들의 몫이었을 만큼, 이번 시리즈는 홈 강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3차전에서는 홈팀들의 극적인 역전극까지 연출됐다.
◎ 페루자(2승 1패) 3-1 모데나(1승 2패) (21-25, 25-17, 27-25, 25-22)
페루자에는 기적으로, 모데나에는 악몽으로 기억될 3세트였다. 9점차가 뒤집혔고 이 경기의 향방도 거기서 판가름 났다.
페루자는 티네 우르나우트(WS, 30세, 200cm)와 미카 크리스텐슨(S, 25세, 198cm)의 수비집중력에 밀려 막바지(20-20)까지 이어지던 1세트 공방전에서 패했다. 20-17 상황부터 터진 알렉산다르 아타나시예비치(OPP, 27세, 200cm)의 5연속 서브와 폭발력에 힘입어 2세트를 가져왔으나, 12-6까지 앞서던 상황에서도 금세 모데나의 추격(18-16)을 허용하며 접전을 벌이는 등 수비 조직력의 불안정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3세트 시작과 동시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윌프레드 레온 베네로(WS, 25세, 202cm), 필리포 란자(WS, 28세, 198cm)가 거듭해서 범실을 양산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결과정에서의 집중력 부재마저 겹쳤다.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던 점수 차는 어느덧 9점차(5-14)에 이르렀고, 맥스웰 홀트(MB, 32세, 205cm)의 속공 득점으로 전광판에 ‘10-19’이라는 숫자가 찍혔을 때 3세트의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7점차(13-20)로 뒤진 상황에서 맞은 란자의 서브로 반격에 나섰다. 이 지점부터가 이 경기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 란자의 2연속 서브 득점으로 격차를 5점차(15-20)까지 좁힌 페루자는 마르코 포드라스카닌(MB, 31세, 203cm)의 서브 로테이션을 맞아 두 점을 더 따라붙었다.
이 시점에서 감독 훌리오 벨라스코(67세)가 내린 판단에 씁쓸한 뒷맛을 남길 수밖에 없는 모데나였다. 리시브 안정을 위해 케빈 틸리(OS, 28세, 200cm)를 긴급 투입했지만 타이밍이 늦었고, 더욱이 교체대상이 수비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야기하던 바르토스 베드노즈(WS, 24세, 201cm)가 아니라 우르나우트였기 때문이다.
레온의 서브 득점과 베드노즈의 공격범실을 묶어 한 점 차(23-24)까지 따라붙은 페루자의 마지막 서버는 파비오 리치(MB, 24세, 205cm)였다. 평범한 플로트 서브였지만 베드노즈의 불안정한 리시브가 크리스텐슨의 세트 정확도 및 선택의 다양성을 크게 제약했고, 결국 이반 자이체프(OP, 30세, 204cm)의 어이없는 범실로 귀결됐다. 이어지는 듀스 상황에서 자이체프와 베드노즈를 신뢰하기 어려운 크리스텐슨 입장에서 이제 활용할 수 있는 공격옵션은 우르나우트의 레프트 전위와 홀트의 중앙 속공의 둘로 줄어있었다. 여기서 우르나우트마저 결정을 짓지 못한 채 도리어 행운이 따른 란자의 푸시 공격에 실점하며 전세가 뒤집혔고(24-25), 결국 베드노즈가 루치아노 데 체코(S, 30세, 191cm)의 서브에 실점하며 그렇게 ‘Pala Barton의 기적’은 마무리됐다.
승기를 잡은 페루자는 레온의 서브를 필두로 지난 세트 역전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데나를 밀어붙여 7-2까지 앞서갔다. 그러나 방심과 집중력 부족이 재발하며 순식간에 동점을 내주고(8-8) 다시금 쉽지 않은 4세트 행보를 이어갔다. 이후 1~2점 차 내에서 지속되던 접전은 결국 21-23에서 포드라스카닌의 블로킹에 자이체프가 차단되며 끝을 맺는다. 경기 MVP는 19득점(공격 성공률 53.33%(16/30)), 서브 3점을 기록한 아타나시예비치였다.
페루자의 로렌조 베르나르디(50세)는 수비 시에 베드노즈에 대한 견제를 늦추고 블로커들과 디거들을 자이체프(공격 성공률 48%(12/25))와 우르나우트(36.84%(7/19))에게 집중시키는 한편 서브 시에는 베드노즈를 주요 목표로 공략하는 전술을 택했다. 리시브에 약점을 지닌 베드노즈를 코트에 오래 남기기 위한 노림수로, 벨라스코의 선수 활용에 적잖은 혼선을 가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모데나의 주요 패인은 역시 베드노즈를 중심으로 한 리시브 라인의 불안이었다(서브 실점 9). 상대가 전체 공격 가운데 67.01%(65/97)를 레온과 아타나시예비치에게 의존한 공격 전개방식을 택했음에도 그들에게 56.92%(37/65)의 공격 성공률을 허용했던 점 또한, 4차전을 앞두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사진: 시리즈 첫 승을 챙긴 트렌티노
◎ 트렌티노(1승 2패) 3-2 치비타노바(2승 1패) (23-25, 25-22, 24-26, 25-23, 16-14)
자칫 홈 팬들 앞에서 결승행 좌절의 쓰라림을 맛볼 위기에 놓였던 트렌티노. 146분간 두 번의 듀스 포함 네 번의 한 점 차 승부를 벌인 끝에 기사회생, PO 4강 시리즈에서의 첫 승을 신고했다.
침몰하는 팀을 패배의 늪으로부터 건져낸 구세주는 우로스 코바체비치(WS, 25세, 197cm)였다. 애런 러셀(WS, 25세, 205cm)이 1세트에서 치비타노바의 서버들을 견디지 못하고 교체되고 루카 베토리(OPP, 27세, 200cm)가 경기 내내 가브리엘레 넬리(OPP, 25세, 210cm)와 벤치를 오가던 등 동료들의 난조 속에서도 그는 공격 점유율 35.78%(39/109), 리시브 점유율 35.63%(31/87)을 기록하며 팀의 공·수 양 부문을 홀로 지탱했다. 26득점에 공격 성공률 53.85%(21/39), 서브 득점 2점, 블로킹 3점을 기록한 그가 경기 MVP로 선정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21-22에서 로버랜디 시몬 아티스(MB, 31세, 208cm)의 서브에 반 가데렌 마아텐(WS, 29세, 200cm)의 리시브가 흔들리며 벌어진 두 점 차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1세트를 내준 트렌티노. 줄곧 한두 점 차 리드(19-17)를 지켜가던 3세트마저 동점(22-22)을 허용했고 다시금 시몬의 서브에 역전당했다. 넬리가 엔리코 체스테르(MB, 31세, 202cm)에게 차단당하며 끝내 주저앉았을 때(24-26), 트렌티노 벤치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우고 있었다.
트렌티노는 4세트 요안디 레알 히달구(WS, 30세, 202cm)의 서브와 파이프 어택에 베토리의 공격 범실이 더해져, 17-14의 우세가 17-18으로 뒤집어졌다. 이 시점에서 이번 시리즈의 대세는 치비타노바 쪽으로 기운 듯 보였다. 그러나 트렌티노에는 코바체비치가 있었다. 트렌티노는 그의 서브 득점(19-18)으로 다시 리드를 가져오며 안정을 찾았다. 뒤이어 오스마니 후안토레나(OS, 33세, 200cm)를 겨냥한 다비데 칸델라로(MB 29세, 200cm)의 서브가 에이스로 연결되며 점수 차를 벌렸고(21-19), 반 가데렌의 세트 포인트에 힘입어 경기를 파이널 세트로 몰고 갔다.
하지만 트렌티노 입장에서 서브와 좌·우 윙 라인의 무게감에서 앞서는 치비타노바를 상대하는 5세트에서의 승부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시몬-소콜로프 등의 강력한 서브로 잡은 초반 리드(4-7)와 레알의 결정력을 바탕으로 10-12 상황까지 우위를 지키며 챔프전 진출을 눈앞에 둔 치비타노바. 그리고 이날 4개의 서브 득점을 기록 중인 시몬의 서브 차례가 다시 돌아왔다. 최대 위기를 직면한 트렌티노가 기댈 곳은 코바체비치뿐이었고, 그는 이번에도 소콜로프-체스테르의 2인 블록을 뚫고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어진 스렉코 리시나치(MB, 26세, 205cm)의 서브에서 블로킹에 참여해 소콜로프의 공격을 바운드로 막아낸 뒤 빠른 템포의 푸시를 통해 동점 포인트까지 가져온 원맨쇼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심지어 소콜로프의 서브에 흔들린 본인의 리시브에서 이어진 이단 연결을 기막힌 팁으로 마무리 짓는 장면까지, 5세트 후반부의 코바체비치는 말 그대로 트렌티노 공격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경기를 뒤집는 러셀의 블로킹 득점과 3차전을 매듭짓는 소콜로프의 공격범실을 이끈 서버 또한 코바체비치였다.
잔여 두 경기 중 한 경기만 승리해도 결승행이 확정되는 데다 4차전을 홈(Eurosuole Forum)에서 치르는 등 치비타노바는 아직 트렌티노에 비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손아귀에 다 들어왔던 챔프전 티켓을 놓친 아쉬움의 크기가 결코 작지는 않을 듯하다. 경기가 장기전으로 진행되면 될수록 빠르고 젊은 상대 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름이 바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며 한숨을 돌린 트렌티노 역시 근본적인 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러셀과 베토리 등 주전 윙 공격수들이 바라는 만큼의 경기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들이 팀 전력에 온전히 가세하지 못한다면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코바체비치 한 명에 계속 의존하는 방식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오프 4강 4차전은 이제 치바타노바(Eurosuole Forum)와 모데나(PalaSport G.Panin)로 장소를 옮겨 치러진다. 지난 시즌에 이어 페루자와 치비타노바가 결승에서 리턴매치를 벌일 것인가, 아니면 트렌티노와 모데나가 승부를 최종전까지 끌고 갈 것인지 26일 경기가 주목된다.
사진/ 이탈리아리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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