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조훈희 기자] 페루자의 Pala Barton에서 펼쳐진 2018-19시즌 이탈리아 프로 배구리그(Lega Pallavolo Serie A) 준결승 시리즈 최종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서 시코마 코루시 페루자(이하 페루자)가 아지무트 레오 슈즈 모데나(이하 모데나)의 거센 저항을 뿌리치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페루자에 맞서 올 시즌 피날레를 장식하게 될 팀은 이타스 트렌티노를 누르고 결승에 선착해 있는 쿠치네 루베 치비타노바(이하 치비타노바).
◎페루자(3승 2패) 3-2 모데나(2승 3패) [19-25, 27-25, 23-25, 25-20, 15-8]
단체 종목에 있어서 특징 중 하나는 뛰어난 개인 능력을 지닌 선수들의 합이 반드시 뛰어난 팀 전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선수들의 조합과 활용방식에 따라 경기력의 차이가 천차만별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1+1이 2를 넘어 3이나 4 또는 그 이상의 답으로 나올 수도, 혹은 0이나 심지어 마이너스 값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성질은 특히 서브를 제외하고는 선수 개인 역량에 의한 득점 방법이 구조적으로 제한된 배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기존 알렉산다르 아타나시예비치(OPP, 27세, 200cm)에 새로이 세계 최고의 스파이커인 윌프레드 레온 베네로(WS, 25세, 202cm)와 공·수 밸런스가 뛰어난 이탈리아 국가대표 주전 윙 리시버인 필리포 란자(28세, 198cm)가 가세한 페루자. 가장 강력한 좌·우 윙 라인을 갖춘 ‘드림 팀’으로서, 시즌 전부터 리그(Serie A)는 물론 CEV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할 1순위 후보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이 선수 면면에 걸맞은 화려한 시즌을 보낸 듯 보이지는 않는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준결승에서 제니트 카잔에 2연패하며 일찌감치 베를린(결승전 개최지)행이 좌절됐고, 현재 진행 중인 포스트 시즌 역시 기대만큼의 강력함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8강전에서 정규리그 8위(39점)에 그친 베로 발리 몬자와 3차전까지 치고받는 난타전을 벌였던 페루자의 악전고투는 모데나(4위, 49점)와의 준결승 시리즈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올 시즌 페루자의 순탄치 않았던 행보를 압축·요약한 경기가 바로 28일 치러진 5차전이었다.
모데나의 1세트 완승은 페루자가 지닌 고정관념의 맹점을 치열하게 파고든 데서 비롯됐다. 페루자는 아타나시예비치와 레온 등 보유한 거포들의 개인 기량을 발휘하는 쪽에 우선순위를 둔 공격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훌리오 벨라스코 모데나 감독은 강한 날개 공격수를 가진 팀들에게 있어 당연하게 보이는 이 발상을 ‘팀’으로서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종의 약점으로 본 것이다. 모데나가 들고나온 수비 전술은 서브로 레온을 묶고 이후 아타나시예비치의 스파이크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미 4차전에서의 완승으로 효과를 입증했던 이 방식은 이번 경기 초반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 1세트 내내 레온은 단 두 차례밖에 얻지 못한 공격 기회에서 모두 득점에 실패했고, 수비의 집중견제에 시달린 아타나시예비치는 2번의 블록차단과 1번의 공격범실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흐름은 2세트에도 이어진다. 바르토스 베드노즈(WS, 24세, 201cm)의 서브 에이스로 페루자와의 점수 차가 6점(23-17)까지 벌어졌을 때, 2세트는 물론 5차전 전체의 분위기가 모데나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전술의 구상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난 방안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경기 내에서 선수에 의해 구현되지 못한다면 그 안(案)은 그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의 발생으로 인해 수립한 계획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베드노즈가 니콜라스 호그(WS, 26세, 200cm)의 평범한 플로트 서브에 연이어 4개의 리시브 범실을 범한 뒤(23-22) 부상을 당해 코트에서 이탈했던 경우가 바로 그러한 사례일 것이다. 이반 자이체프(OPP, 30세, 202cm)의 어이없는 공격범실이 이어지며 동점(23-23)이 됐을 때, 이미 경기는 모데나 벤치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자이체프가 마르코 포드라스카닌(MB, 31세, 203cm)에 또다시 가로막히며(25-26) 전세가 뒤집혔을 때, 두 팀 모두는 자연스레 3차전 3세트에서의 대역전극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당시 3세트 승부가 3차전을 결정지은 것처럼, 5차전 또한 2세트 결과에 의해 갈리게 된다.
베드노즈를 대신해 나온 티네 우르나우트(WS, 30세, 200cm)의 경기력 저하와 3세트 들어 자이체프의 기복이 겹치는 악재 속에서도, 미카 크리스텐슨(S, 25세, 198cm)은 케빈 틸리(WS, 28세, 200cm)를 축으로 다니엘레 마쪼네(MB, 26세, 208cm)의 속공 등 중앙 공격에 승부수를 던지는 경기운영으로 모데나의 3세트 승리를 견인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틸리의 공·수 부담이 누적되면서 조직력에 기반한 모데나의 공격 템포가 점차 떨어졌고, 이에 따라 4세트 중반 이후의 경기 주도권은 서브와 스파이커 진의 중량감 등 개인 능력에서 앞선 페루자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특히 레온의 서브 위력이 살아나면서 경기의 균형이 페루자 쪽으로 급격히 쏠렸다. 8-11부터 2개의 서브 에이스 포함 연속 4득점으로 4세트 전세를 뒤집은 데 이어, 19-17에서 상대의 범실을 끌어내는 서브 3개로 모데나의 추격의지를 꺾은 레온. 5세트에서도 강서브로 초반부터 틸리와 우르나우트 등 모데나의 리시버들을 무너뜨리며(5-2), 페루자의 여유있는 경기 마무리를 가능하게 했다. 한편, 아타나시예비치와 레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루치아노 데 체코(S, 30세, 191cm) 경기 운영이 3세트 이후부터 란자의 공격 점유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었던 점도 페루자의 승리 요인으로서 짚어져야 할 대목. 모데나 수비진의 발이 무뎌짐에 딸, 데 체코의 다양한 공격옵션 활용은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2세트 베드노즈 교체 시점 등 몇 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번 준결승 시리즈에서 확인된 벨라스코 감독의 분석력과 전술 활용 능력은 모데나로 하여금 올 시즌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했다. 제니트 카잔으로부터 이적·합류가 결정된 매튜 앤더슨(WS/OPP, 32세, 208cm)등을 비롯해 전력보강 작업이 충실히 지속된다면 경기력과 성적 양 측면 모두 큰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페루자는 란자의 공격 활용도 확대를 통한 3세트 이후의 흐름을 좀 더 주의 깊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타나시예비치와 레온에 대한 견제로 인해 상대 블로커들 및 수비진의 활동반경이 상당히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치비타노바와의 결승전에서 두 주포의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7-18시즌에서도 결승에서 만난 페루자와 치비타노바. 당시 대결에서는 페루자가 승리(3승 2패)하며 창단 후 첫 정상에 올랐다. 이제 양 팀은 1년 만에 다시 맞붙게 됐다. 디펜딩 챔프의 왕좌 수성일까, 치비타노바가 비원의 6전 7기(치비타노바는 지난 시즌부터 6대회 연속 준우승행진을 이어가는 중.)일까. 최종 결전의 첫 번째 막은 다음 달 2일에 올려진다.
사진/ 이탈리아 리그 홈페이지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