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조훈희 기자] 이탈리아가 러시아의 7년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고 유럽배구의 패권을 되찾았다.
19일 베를린의 막스 슈멜링 할르에서 치러진 2018-19 CEV 챔피언스리그 남자부 결승전에서, 쿠치네 루베 치비타노바(이하 치비타노바)가 제니트 카잔(이하 카잔)에 3-1로 역전승을 거두고 새로운 유럽배구 챔피언에 등극했다. 16일 끝난 이탈리아 수페르리가 챔프에 이은 ‘더블’ 달성. ‘더블’은 2016-17시즌 수페르리가와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며 이미 이룬 바 있지만, 올 시즌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했기에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 이번 우승은 이탈리아 팀으로서는 베트클리치 트렌티노가 2010-11시즌 우승한 이후 8년 만의 왕좌 탈환이고, 치비타노바로서는 2001-02시즌에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피레우스를 누르고 우승한 이래 17년 만의 쾌거다. 팀 통산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제패.
주장 드라간 스탄코비치(MB, 33세, 205cm)는 2009년 치비타노바에 입단한 이래 10년의 기다림 끝에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치켜들었고, 오스마니 후안토레나(WS, 33세, 200cm)는 작년 카잔을 상대로 했던 챔피언스리그 결승 패배의 쓰라림(5세트 11-7로 4점 앞선 상황에서 본인의 잇따른 범실로 역전패)을 떨치고 리그 MVP에 이어 또 한 번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치비타노바 3-1 카잔 [16-25, 25-15, 25-12, 25-19]
불과 사흘 전(16일) 서 시코마 코루시 페루자와 풀세트 접전을 펼치고 베를린에 도착한 치비타노바와 지난 8일 쿠즈바스 케메로보(이하 쿠즈바스)와의 챔프전 일정을 마치고 열흘 넘게 휴식 기간을 가졌던 카잔. 치비타노바의 체력열세는 당연했던 상황. 그러나 극적인 역전 우승으로 트로피를 품에 안은 치비타노바에게는 쿠즈바스에 무기력하게 완패했던 카잔에게는 없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위닝 스피릿(Winning Spirit)과 팀 응집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바딤 리코쉘스토프(MB, 30세, 215cm)의 3연속 블로킹을 시작으로 매튜 앤더슨(WS, 32세, 208cm)의 연속 득점이 이어지며 1-7로 크게 뒤진 채 1세트를 시작한 치비타노바. 요안디 레알 히달구(WS, 30세, 202cm)의 공격범실로 10점차(5-15)까지 벌어졌지만, 쉽사리 세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곧바로 레알과 스탄코비치의 에이스와 알렉산더 부트코(S, 33세, 198cm)의 세트 범실을 묶어 4점차(12-16)까지 접근, 상대를 압박했다. 결정력을 발휘한 막심 미하일로프(OPP, 31세, 202cm)의 분전과 아르템 보르비치(MB, 33세, 208cm)의 결정적인 블록차단(22-15)으로 한숨을 돌린 카잔. 하지만 1세트 후반의 변화된 경기 흐름은 2세트 이후의 전개를 예고했다. 어빈 은가페(WS, 28세, 194cm)의 공·수 기복과 부트코의 부정확한 세트 및 저하된 경기 운영능력은 블라디미르 알레크노 감독의 불안감을 크게 부채질했는데, 특히 부트코의 부진은 쿠즈바스와의 리그 챔프전에서도 내내 팀의 발목을 잡았던 부분. 이고르 코브잘(28세, 196cm)과의 세터 싸움 완패는 카잔의 리그 6연패 좌절을 낳은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알레크노의 우려는 2세트부터 본격적으로 실체화된다.
2세트 치비타노바의 첫 리드는 부트코의 오버 넷(5-4) 범실로 이루어졌다. 뒤이어 은가페의 공격이 디그 후 후안토레나의 반격으로 연결돼 점수 차가 벌어졌고(7-5), 계속해서 은가페의 홀딩 파울이 지적되며 스코어는 8-5. 카잔은 이 시점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곧 로버랜디 시몬 아티스(31세, 208cm)의 속공과 보르비치의 공격범실이 뒤따르며 이제 양 팀의 점수는 5점차(10-5)로. 레알의 푸시 득점(16-10)으로 거리를 한발 더 벌린 치바타노바는, 스탄코비치가 은가페를 연거푸 가로막으며(19-11) 2세트 승부를 결정지었다.
2세트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 3세트. 2세트 대승으로 승기를 잡은 치비타노바는 강한 서브를 앞세워 카잔을 밀어붙였다. 이날 치비타노바의 서브 우위는 득점(10:5)뿐만 아니라 시도 횟수(90:72)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효율적인 서브가 많은 시도를 불러오기 때문.
초반 적절한 챌린지(판독) 신청으로 레알의 서브 에이스 한 점을 되찾은(6-3) 치비타노바는, 스탄코바치의 서브 차례에서 시몬의 다이렉트와 블록 등을 묶어 초반부터 6점차(10-4)로 치고나가며 경기를 주도했다. 레알이 은가페를 재차 가로막고(13-6) 공격득점을 추가(14-6)해 8점 차가 된 시점에서 이미 카잔은 추격 의지를 상실하고 있었다. 3세트 막바지에 터진 레알의 2연속 서브 에이스와 파이프 어택(22-10)은, 이제 카잔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레퀴엠’, 바로 그것이었다.
치비타노바는 2세트이후 앤더슨에게 서브를 집중시키는(리시브 점유율 48.68%(37/76))하는 전술로 전환했다. 이는 카잔의 공격을 은가페에게 집중시키려는 의도로, 부트코의 현재 상태로는 은가페의 기량을 제대로 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었다. 그리고 페르디난도 데 조르지 치비타노바 감독의 의도대로, 그는 이 경기에서 35.71%(10/28)의 저조한 공격 성공률과 35%의 포지티브 리시브 효율, 6개의 블록 차단에 2개의 공격 범실까지 범하며 팀 패배의 주범이 되고 만다.
이어진 4세트는 그저 치비타노바의 승리 그리고 카잔의 패배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시몬이 미하일로프(2-0)를, 츠베탄 소콜로프(OPP, 29세, 206cm)가 은가페(6-3)를 막아내며 4세트 또한 초반부터 리드를 잡아간 치비타노바. 블라디미르 알레크노는 알렉세이 사모일렌코(MB, 33세, 207cm)와 로란 알레크노(S, 22세, 196cm)를 투입해 반전을 노렸지만, 이미 기운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로란 알레크노는 더블컨택 범실(14-8)에 이어 이단 연결 상황에서 은가페에게 4연속 세트를 시도하다 소콜로프에 블록(19-11) 당하는 등, 감독인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세트 말미(23-14) 9점차에서 은가페의 에이스 3점과 파이프 어택, 보르비치의 블로킹 득점에 소콜로프의 범실을 묶어 4점차(23-19)까지 따라붙었으나, 카잔의 저항은 거기까지였다.

리그에 이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MVP는 후안토레나에게 돌아갔으나 실제로 치비타노바를 2관왕으로 이끈 핵심 멤버는 브루누 모싸 헤젠지(세터(S), 32세, 190cm)와 시몬이었다. 특히 페루자와의 5차전과 이번 카잔과의 결승전에 보인 브루누의 존재감과 안정감은 그야말로 압권. 다가오는 VNL에서 귀화 후 처음 대표팀에 합류하게 된 레알과 함께 빚어낼 한층 강해진 브라질 배구의 힘을 기대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2018-19시즌의 끝을 의미하지만, 이는 곧 새 시즌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미 마테우스 비에니엑(MB, 25세, 210cm)을 영입한 데 이어 바르토즈 쿠렉(OPP, 30세, 205cm)과 접촉하는 등, 디펜딩 챔프 치비타노바가 벌써부터 다음시즌 전력보강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패한 카잔은 치비타노바 보다 더욱 다사다난한 준비 기간을 보내야 할 듯하다.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절감한 노쇠화 된 선수진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 보르비치-리코쉘스토프의 미들블로커 진 조합으로는 더 이상 유럽은 물론 러시아 내에서도 최고자리에 설 수 없다는 점이 거듭 증명된 상태. 부트코를 대체할 세터의 확보도 시급한 문제로 대두된다.
한편 이미 앤더슨이 아지무트 레오슈즈 모데나로 이적한 상황에서 은가페 역시 모데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내용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카잔은 주전 윙 리시버 구성에도 새판짜기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사진/ CEV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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