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은 시간이 필요해요” 임명옥과 문정원은 온몸을 던져 시간을 벌고 있다

광주/김희수 / 기사승인 : 2023-12-23 1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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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적응과 발전의 시간이 필요한 동생들을 위해, 임명옥과 문정원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동생들의 잠재력과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디펜딩 챔피언’ 한국도로공사는 많은 것들이 바뀐 팀 구성 속에서 과도기를 통과하는 중이다. 3라운드가 마무리 돼가는 시점에서 6위에 자리해 있다. 아직은 경기력이 들쑥날쑥한 편이지만, 디펜딩 챔피언의 저력이 발휘되는 경기들도 있다. 22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페퍼저축은행과의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경기도 그런 경기였다. 전체적으로는 들쑥날쑥한 경기력이 또 한 번 나온 경기였지만, 중요한 승부처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임명옥과 문정원이 있었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주역인 임명옥과 문정원은 많은 것들이 변한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이 팀의 중심을 잡고 있고, 이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선수는 나란히 60%가 넘는 리시브 효율(임명옥 65.52%, 문정원 60.47%)과 20개가 넘는 디그(문정원 30회 시도-26회 성공, 임명옥 30회 시도-25회 성공)를 기록하며 팀 승리의 토대를 마련했다. 두 선수의 활약 속에 한국도로공사는 페퍼저축은행을 세트스코어 3-2(25-17, 20-25, 25-21, 20-25, 19-17)로 꺾고 시즌 5승째를 수확했다.

두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 함께 인터뷰실을 찾았다. 먼저 힘든 경기 속에서도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는지 묻는 질문에 문정원은 “내가 공격적인 부분에서 좀 더 잘 해줬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되면서 팀의 플레이가 좀 단조로워졌던 것 같다. 뭔가를 꼭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플레이가 더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곧이어 임명옥은 “승부처에서 리시브와 수비를 무조건 해내야만 한다는 마음이 컸다. 이걸 못 받으면 역적이 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야 했다”며 팽팽했던 경기 속에서 느꼈던 압박감을 털어놨다.

임명옥과 문정원은 경기 속의 세세한 내용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먼저 임명옥은 이번 시즌 들어 새롭게 바뀐 야스민 베다르트(등록명 야스민)의 서브에 대해 “워낙 신장이 좋으니까 높은 타점에서 찍어 때리는 서브를 구사해서 받기가 까다롭다. 선수들끼리는 차라리 현대건설 때의 스파이크 서브를 받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한다”며 솔직한 고평가를 내놨다.  


그런가하면 문정원은 5세트 5-4에서의 서브 득점에 대해 “때린 순간 ‘아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상대가 받아줬고 득점이 됐다. (오)지영 언니가 중앙에서 계속 (박)정아의 리시브를 커버해주기에 박은서가 있는 쪽으로 서브를 쳤는데 잘 통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임명옥은 문정원의 설명이 끝난 뒤 “(문)정원이가 이제 한 건 했으니까 다음 서브는 맞춰 때린다고 하더라”라는 익살스러운 한 마디를 보탰다.

임명옥과 문정원은 언제나처럼 한국도로공사의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지만, 자신들의 앞에 서는 선수들의 구성은 지난 시즌과 많은 차이가 있다. 루키 김세빈부터 외국인 선수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와 아시아쿼터 선수 타나차 쑥솟(등록명 타나차)까지 새로운 동생들이 두 선수와 함께 한다. 아무래도 기존의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손발을 맞추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선수 역시 이 부분을 인정했다. 임명옥은 “아직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에게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김)세빈이는 아직 어리고, 타나차도 노련미를 갖춘 단계는 아직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문정원 역시 “세빈이가 나이에 비해 잘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그 나이에 어떻게 배구했었는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와닿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의 스타일 상 정교함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고, 그럴 때 아직 어린 티가 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문정원은 “기다려 줄 수 있다”며 김세빈을 응원했다.

두 선수는 동생들을 돕기 위해 자신들의 주무기지만 분명한 부담도 따라오는 2인 리시브 시스템을 다시 꺼내들기도 했다. 임명옥은 “맨 처음에는 타나차가 리시브를 받는 방향으로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타나차가 부담을 많이 느꼈다. 공이 넘어오기도 전에 도와달라는 사인을 보낼 정도로 어려워했다. 그래서 강서브를 받을 때만 타나차가 한 자리를 맡아주고 정원이와 2인 리시브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라며 타나차를 돕기 위한 리시브 시스템의 변화를 소개했다.


임명옥과 문정원이 김세빈과 타나차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벌어주려는 이유는 지금 두 선수가 겪는 어려움을 3년 전에 먼저 겪었던 후배가 부쩍 성장해서 지금은 두 선수에게 보탬이 되고 있는 성공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예림이다. 임명옥은 “강서브가 올 때 (이)예림이와 함께 받으면 도움이 된다. 호흡을 맞춘 시간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좀 편한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문정원 역시 “지난 시즌보다 덜 덤벙거리는 것 같다(웃음). 지금은 역할을 맡기면 충실히 이행해주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며 성장한 후배를 칭찬했다.

두 선수는 당장의 성적에 대한 욕심을 크게 부리지는 않았다. 임명옥은 “그저 다가오는 다음 경기에 집중할 뿐이다. 연승을 이어가겠다든가 하는 욕심은 내지 않는다”고, 문정원 역시 “우리의 배구를 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특히 실수를 줄이는 데 집중한다”고 말하며 지금은 다른 팀과의 경쟁에 그리 몰두하고 있지 않음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의 다음 일정인 GS칼텍스와의 연전 이야기가 나오자 두 선수는 프로답게 전의를 불태웠다. 임명옥은 “지난 2라운드 경기가 끝나고 차상현 감독님이 우리를 만나는 게 힘들다고 하신 인터뷰를 봤다. 이번에도 그런 이야기가 또 나오게 해드리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문정원 역시 “수비에서만큼은 절대 지지 않겠다”며 투지를 드러냈다.

변화의 바람에 몸을 실은 한국도로공사지만, 그 속에서도 임명옥과 문정원의 실력과 존재감은 변함없이 대단하다. 두 선수는 자신들의 한결같음을 이기적으로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잠재력을 터뜨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동생들을 위해, 온몸을 던지며 시간을 벌고 있다. 모든 팀의 팬들과 감독들이 원할 법한, 타의 모범이 되는 베테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두 선수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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