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구미 KOVO컵 여자부에서 눈에 들어온 것들

김종건 / 기사승인 : 2023-08-07 07: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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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콘택트, 파이프 공격, VNL 효과, 미카사, 경기는 나가지 않고 개인 홍보를 원했던 그 선수

 

무더위 속에서 7월 29일 막을 올린 2023 구미 KOVO컵 여자부는 다양한 관전 포인트가 있었다. 일단 각 팀의 주전인 대표 선수가 출전했다. 이들은 2023 VNL 예선 리그를 마치고 소속 팀에 복귀해 약 4주 정도 손발을 맞췄다. 넉넉하진 않아도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외국인 선수와 새로운 전력이 될 아시아쿼터 선수가 ITC(국제이적동의서) 발급 문제로 출전하지 못해 아쉽지만 다가올 시즌 각 팀의 기본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동안 KOVO컵은 토종 유망주들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외국인 선수에 밀려 출전 기회가 없는 포지션의 선수들에게는 기회였다. KOVO컵의 활약을 계기로 감독의 눈 도장을 받고 주전으로 도약하는 사례는 많다. 지난해 순천 대회의 김다은(흥국생명), 권민지 문지윤(이상 GS칼텍스), 김세인(도로공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구미 KOVO컵 대회에서는 VNL에서 경험을 쌓고 온 세터 김지원(GS칼텍스)의 기량 발전이 가장 눈에 띄었다.
 

 


●완화된 더블 콘택트 반칙과 늘어난 중앙 후위 공격
더블 콘택트 반칙이 완화되면서 랠리가 길어졌다. 많은 선수가 이전보다 편하게 오버헤드로 패스했다. 덕분에 빠른 공수의 연결이 가능해졌다. 플레이 가운데 가장 눈에 두드러진 것은 중앙 후위 공격의 증가다. 전 대회보다 훨씬 자주, 다양한 선수가 파이프 공격을 시도했다. V-리그 12년간 백어택을 때린 경우가 드물었던 페퍼저축은행의 채선아마저도 했다. 평소 훈련 때 준비를 많이 했다는 뜻이다. 흥국생명의 기대주 정윤주도 랠리 상황에서 기회만 되면 파이프 공격을 노리고 점프했다. 공교롭게도 두 팀은 외국인 감독이 팀을 맡아 공격적인 유럽식 배구를 보여주려고 했다. 결과는 나빴다. 각각 3연패를 기록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아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토종 선수의 중앙 후위 공격이 많지 않았던 여자배구에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물론 이런 변화가 리그까지 계속 이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승패의 부담이 크지 않은 컵대회에서는 용감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공격효율이 떨어지는 파이프 공격을 리그에서도 지금처럼 구사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어느 감독은 “배구는 멋있는 모양을 보여주는 게 아니고 상대보다 점수를 더 내서 이기는 경기”라고 했다.



사실 우리와 가장 다른 화려한 공격을 구사했던 팀은 1승 2패로 주저앉은 태국의 촌부리였다.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속공과 상대 블로커가 뛰기도 전에 끝내는 B퀵이 자주 나왔다. 단신의 태국 선수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후위 공격을 쉽게 했다. 앞으로 V-리그 팬에게 새로운 배구를 보여주고 싶다면 해외 리그의 강팀을 초청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려줬다. 촌부리는 신장보다 운동 능력이 배구에서 더 중요한 요소라는 것도 확인해줬다.




●VNL효과? 국가대표 세터들의 각성
2023 VNL에서 여자 대표팀은 12연패를 당했다. 많은 선수가 대표팀의 경쟁력 하락을 반성했다. 자기 나름의 해결 방법도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가장 눈에 띄게 국제 대회 효과를 실감한 것은 세터였다. 현대건설의 김다인과 GS칼텍스의 김지원은 구미 KOVO에서 훨씬 공격적이고 안정적인 패스를 했다. VNL에서 상대했던 장신의 블로킹보다 훨씬 낮아진 토종 선수들을 상대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김다인은 “대표팀에 다녀온 뒤 여유가 생겼다. 급할수록 어려운 플레이를 시도한다. 이전까지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짧은 A퀵이나 앞 공격을 주로 시도했지만, 이제는 백 B퀵이나 뒤쪽의 C퀵 등 패스를 길게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지원도 “국제 대회에 상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내가 뛰지 않아도 눈으로 배우는 것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프로 4년 째를 앞둔 어린 선수로서는 좀처럼 가지기 힘든 침착함으로 공을 배분했다. 공교롭게도 국가 대표팀 세터는 준결승전에 맞대결했고 후배 김지원이 언니 김다인을 이겼다.


●새 경기구가 만든 다양한 변화들
새로운 경기구 미카사 V200W가 만든 변화도 눈에 띈다. 예상대로 모든 팀의 리시브 효율은 떨어졌다. 확실한 목적을 가진 정확한 서브 공략과 리시브 안정화가 새 시즌의 중요한 변수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켰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공격 때 공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고 많은 선수가 얘기한 대목이다. 공격 파워가 좋은 선수보다는 연타 등 기술로 공격하던 선수들의 성공률이 특히 떨어졌다. 어지간한 공격은 수비수들이 다 받아서 랠리가 길어졌다. 묵직한 느낌의 미카사 볼 고유의 특성으로 보인다. 감독들도 이 같은 현상에 주목했다.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미카사가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어서 강타를 때리는 선수의 공에 파워가 더 실린다”고 말했다. 서브는 많은 선수가 얘기했던 대로 끊어서 때리는 플로터 서브의 효과가 좋았다.


●감독들이 말한 각 팀의 키워드
구미 컵 대회는 각 팀이 비시즌 동안 가장 많이 훈련해온 주제의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페퍼저축은행은 ‘공격’을 강조했다. “스피드를 높이는 부분에 중점을 뒀다”면서 ‘빠른 시스템의 공격’을 언급했다. 주전 세터가 빠지고 부상자까지 나온 도로공사는 “세터 안예림의 성장과 리그 우승팀으로서 창피하지 않은 결과”를 원했다. KGC인삼공사는 ‘스피드와 안정감’이 키워드였다. 현대건설은 ‘좋은 수비’를 강조하면서 유일하게 “우승이 목표”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은 ‘스피드와 연결’을 강조했고 흥국생명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코칭스태프와 외국인 선수를 교체한 GS칼텍스는 ‘변화와 양보’를 얘기했다. 이들 가운데 KGC인삼공사와 IBK기업은행, GS칼텍스와 현대건설이 4강에 진출했다.


 

지난 시즌보다 패스의 높이를 낮추고 스피드를 살린 KGC인삼공사는 주전 세터 염혜선의 낮고 빠른 패스가 경기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타임아웃 때 선수를 뛰게 했던 고희진 감독의 신박한 작전타임은 역대 KOVO컵의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KOVO컵 출전을 앞둔 연습경기에서 너무나 부진해 걱정이 태산이었던 IBK기업은행은 2주 만에 놀라운 반전을 이뤄냈다. 2016년 이후 무려 7년 만에 결승전에 올랐다. 연습경기 때 패스가 들쭉날쭉했던 세터 김하경이 중심을 잡자 팀은 달라졌다. 첫 경기에서 FA선수 황민경 영입 효과를 확인한 것이, 결승까지 가는 도화선이 됐다.

 

감독 부임 이후 컵대회 결승전에만 6번 진출하고 V리그 최다인 통산 6번째 KOVO컵 우승을 차지한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땀과 많은 훈련만이 승리를 보증한다는 진실을 또 확인해줬다. 그는 “다들 알다시피 우리 훈련이 만만치 않은데, 선수들이 잘 따라와줬다”고 했다. IBK기업은행과의 결승전 1세트의 패배를 딛고 역전승을 거둔 것도, 결국은 체력전에서 상대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경기는 나가지 않으면서 개인 홍보는 하고 싶었던 선수
저마다 사정은 있겠지만 각 팀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선수들이 KOVO컵에 출전하지 않았다. 사실 기량이 검증된 선수가 굳이 KOVO컵에서 전력을 다할 이유는 없다. 또 팀 사정상 어린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을 주기 위해 주전들의 출전을 미루기도 한다. 그렇지만 구미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를 보러온 팬을 생각한다면 최소한의 서비스는 필요했다. 마음만 먹으면 선발은 아니더라도 교체 선수나 원포인트 서버 등 보여줄 것은 많다. 팬들에게는 유명한 스타가 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다.

그런 면에서 페퍼저축은행의 박정아는 이번 대회 가장 관심이 큰 선수였다. 새로 팀을 옮겨 간 그가 만들 변화를 많은 팬이 보고 싶었지만 2번의 공격과 블로킹 1 번으로 대회를 마쳤다. 그는 국가 대표팀에서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지금 궁금해한다.



또 다른 선수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서 느닷없이 배구와 관계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홍보하려고 기자 회견을 자청했다. 이는 KOVO컵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온 다른 팀과 선수에게는 굉장히 실례되는 행동이었다. KOVO컵은 한 선수의 들러리를 서기 위해 마련된  대회가 아니다. 스타라는 이유로 선수가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눈감아주면 제대로 된 리그도 아니다. 운동선수는 열심히 운동할 때만 대접을 받고 팬들이 사랑해준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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