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세터는 중심을 잡고, 장신의 유망주는 전위에 벽을 세웠다. 평범한 백업 세터였던 선수는 소방수로 변모했다. 깔끔한 ‘세터 3중주’였다.
정관장의 도드람 2023-2024 V-리그 로스터에는 세 명의 세터가 있다. 염혜선, 안예림, 김채나가 그들이다. 이들 중 정관장의 주전 세터는 단연 염혜선이다. 커리어부터 개인기까지 다른 두 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그러나 시즌 내내 염혜선 혼자 코트를 지킬 수는 없다. 안예림과 김채나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줘야 긴 시즌을 무사히 치를 수 있다. 그리고 17일 치러진 IBK기업은행과의 1라운드 맞대결에서 세 선수는 깔끔하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의 선발 세터는 예상대로 염혜선이었다. 염혜선의 초반 경기 운영은 깔끔했다. 지오바나 밀라나(등록명 지아)와 메가왓티 퍼티위(등록명 메가)가 쾌조의 컨디션을 보인 가운데 정호영-박은진의 중앙 옵션과 박혜민의 퀵오픈까지 활용하면서 고른 득점 분배(지아 6점, 정호영 5점, 박은진 4점, 메가-박혜민 각 3점)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경기가 잘 풀리고 있던 16-10에서 고희진 감독이 염혜선을 빼고 안예림을 투입했다. 그것도 원 포인트 블로커가 아닌 전위 세 자리에서의 운영을 오롯이 맡기는 교체였다. 들어오자마자 정호영과 속공 호흡을 맞춘 안예림은 한국도로공사에서 보여준 모습보다 자신감 있고 차분한 모습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18-11에서는 박은진과 함께 견고한 사이드 블록을 세우며 브리트니 아베크롬비(등록명 아베크롬비)의 퀵오픈을 함께 막기도 했다.
안예림은 22-14에서 박은진과 이동공격 호흡까지 맞추며 점수 차를 9점 차까지 벌린 뒤 다시 염혜선에게 바톤을 넘겼고, 염혜선은 깔끔하게 1세트를 마무리했다. 두 세터 간의 교체는 1세트에 고 감독이 선택한 유일한 선수 교체였다. 두 선수는 2세트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염혜선은 10-5에서 지아의 파이프가 수비에 걸린 뒤 깔끔하게 메가 쪽으로 방향을 트는 패스를 성공시켰고, 안예림은 19-11에서 메가에게 깔끔한 백패스를 띄워줬다.
그런가하면 김채나는 3세트에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다. 2세트까지 압도적인 경기력을 자랑하며 셧아웃 승리를 노린 정관장은 3세트에 위기를 맞았다. 세트가 시작하자마자 5연속으로 실점하며 급격히 흔들렸다. 그러자 고 감독은 염혜선을 빼고 김채나를 코트에 투입했다.
김채나는 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3-7에서 메가에게 깔끔한 중앙 백어택 패스를 올리며 흐름을 탄 김채나는 5-8에서 지오바나 밀라나(등록명 지아)의 높이와 타이밍에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퀵오픈 패스를 쏘며 각성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수비 후 반격 과정에서도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가며 동점과 역전에 기여한 김채나는 15-14에서 지아를 향한 장거리 퀵오픈 패스를 완벽하게 띄우며 3세트의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고 감독은 “염혜선은 주전 세터다. 다만 염혜선이 흔들릴 때 어떻게 그 상황을 헤쳐 나갈 것인지에 대해 비시즌 동안 코칭스태프들과 많은 준비를 했다. 지금의 시스템을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다. 안예림은 높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전위에서 주로 뛸 것이고, 김채나는 염혜선이 흔들릴 때 과감하게 투입할 것”이라며 3세터 체제를 앞으로도 유기적으로 운용할 것임을 밝혔다. 시즌 내내 세 세터가 서로를 도와가며 활약한다면, 정관장이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털어낼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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