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블로킹 한 방으로 팀 승리를 견인한 이상현이 신영철 감독에게 소박한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었다.
이상현은 최근 우리카드의 치열한 미들블로커 경쟁에서 아주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베테랑 박진우가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가운데 남은 한 자리의 주인공으로 꾸준히 기회를 얻으며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1999년생의 젊은 나이에 201cm의 다부진 피지컬까지 갖춘 이상현의 성장은 우리카드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2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 현대캐피탈의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자부 3라운드 경기에서 이상현은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렸다. 5세트 13-13에서 아흐메드 이크바이리(등록명 아흐메드)의 공격을 깔끔한 손 모양으로 가로막으며 포효했다. 이상현은 이 장면을 포함해 6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좋은 활약을 펼쳤고, 그의 활약에 힘입은 우리카드는 현대캐피탈을 세트스코어 3-2(19-25, 25-18, 25-22, 23-25, 15-13)로 꺾고 값진 승점 2점을 챙겼다.
경기 종료 후 인터뷰실을 찾은 이상현에게 가장 먼저 5세트 13-13에서의 블로킹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머쓱한 웃음을 지은 이상현은 “아흐메드의 공격이 계속 대각 쪽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아서, 5세트에 아흐메드를 상대할 기회가 온다면 왼손은 사이드에 붙이고 오른손은 대각으로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13-13에서 블록을 뜰 때는 생각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다”고 그 순간을 회상했다.
신영철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상현이한테 ‘따라다니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그러면 공이 온다’고 경기 내내 이야기했는데 그걸 못 하더라. 대각 공격을 계속 못 막다가 마지막에만 잘했다”며 애정을 담은 핀잔을 던지기도 했다. 감독님의 피드백을 들은 이상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아흐메드가 3세트부터 대각 공격을 많이 섞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대각을 막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그 전까지는 사이 공간을 메우는 게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하나를 잘 해내서 다행이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날 이상현의 존재감이 빛났던 장면은 5세트 13-13 뿐만이 아니었다. 3세트 9-8에서는 최민호의 속공을 깔끔한 타이밍의 블로킹으로 가로막기도 했다. 이상현은 “(김)명관이 형의 패스 폼이 뭔가 속공을 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속공이 올 길목만 잘 막아보자는 생각으로 블록을 빨리 떴는데 잘 통했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비록 지금은 미들블로커 주전 경쟁에서 한 발짝 앞서 있는 이상현이지만, 부상 중인 김재휘가 돌아오고 비시즌 때 포지션을 바꾼 잇세이 오타케(등록명 잇세이)의 적응력이 올라오면 언제든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 정도로 우리카드의 미들블로커 뎁스는 매우 탄탄하고, 이상현 스스로도 그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기회가 올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영상도 많이 보면서 나의 배구를 완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계속 열심히 할 것”이라며 씩씩하게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상현은 서울의 명소 중 하나를 이름으로 사용하는 크리스마스 유니폼에 부착할 자신의 이름으로 ‘청계천’을 선택했다. 청계천을 선택한 사연은 꽤나 흥미로웠다. 그는 “어릴 때 부모님이랑 청계천을 놀러가서 물에 들어가려고 발을 딛었는데 돌이 미끄러워서 넘어졌다. 그 바람에 물살을 타고 쭉 미끄러져 가다가 폭포 같은 곳으로 떨어질 뻔 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아서 꺼내주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골랐다”라며 조금은 엉뚱한 선택 이유를 소개했다.
이상현에게 던진 이날의 마지막 질문은 신 감독에게 빌고 싶은 크리스마스 소원을 묻는 질문이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신 감독이 “크리스마스-연말을 맞아 젊은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었기 때문. 이상현은 “KB손해보험과의 원정 경기가 끝난 뒤에 저녁에 나가서 다음 날 점심에 복귀하는 외박을 나갈 예정이다. 만약 우리가 KB손해보험전까지 승리를 거둔다면, 저녁 복귀로 복귀 시간을 좀 미뤄주셨으면 한다. 1박 추가는 바라지도 않는다(웃음)”는 이야기를 꺼냈다. 승리를 견인한 선수의 소원치고는 무척 소박한 소원이었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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