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류한준 조이뉴스 기자] 올 시즌 V-리그 트렌드는 ‘스피드’다. 남녀 13개팀 사령탑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급 남녀배구대표팀을 관장하고 있는 대한배구협회도 예전과 달리 ‘스피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배구협회가 최근 고교와 대학선수 14명을 남자성인대표팀에 포함시키면서 강조한 부분도 ‘스피드’였다. 그런데 스피드 배구는 현재 국제무대에서 신선한 흐름이 아니다. 각국 대표팀과 리그에 정착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너도 나도 ‘속도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 본 기사는 배구전문잡지 더스파이크 11월호에 실린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스피드 배구란 무엇일까?
배구선수로 뛴 경험이 없는 이상 ‘스피드 배구’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스피드 배구라고 하면 세터가 공격수에게 전달하는 세트의 빠르기와 높이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단순히 세트 문제가 아니다. 스피드 배구를 이해하려면 배구 전술에서 그 시초를 알아봐야한다.
스피드 배구를 실전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이는 브루노 헤센데 현 브라질남자배구대표팀 감독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대배구에서는 완벽한 리시브에 의한 세트 플레이가 더 이상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대신 리시브가 어느 정도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세터가 양쪽 날개 공격수(윙 스파이커, 즉 레프트와 라이트를 가리킨다)에게 빠르게 볼을 보낼 수 있다고 봤다. 상대 센터나 사이드 블로킹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스피드 배구에서 핵심 공격 기술은 C퀵(퀵오픈)이 꼽힌다. 브라질남자배구대표팀이 처음 구사했던 ‘파이프(후위 시간차 공격 또는 중앙 후위 공격)’ 공격 전술도 여기에서 파생됐다고 보면 된다.
헤센데 감독이 강조한 ‘빠른 볼 배급’이 스피드 배구에 대한 정의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헤센데 감독 역시 “완벽한 리시브가 어렵다”고 했지만 배구의 기본을 잊지 않았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최한 월드리그를 위해 방한했던 헤센데 감독에게 “스피드 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직접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그는 “리시브와 수비가 기본”이라며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안 된다면 스피드 배구를 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헤센데 감독에게 그 대답을 처음 들었던 때가 지난 2007년 월드리그였다. 8년이 지난 지금, 그 배구가 V-리그의 ‘화두’가 된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모범답안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은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월드리그에 참가하지 않았다. 불참 이유를 여기서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국내 배구(범위를 남자배구로 좁힌다면)는 결과적으로 국제배구계 주요 흐름을 놓친 셈이 됐다. 대표팀은 2006년 다시 월드리그에 나섰다. 1999년은 FIVB가 현행 랠리포인트 제도를 도입한 시기와 맞물린다. 이때 헤센데 감독의 ‘스피드 배구’도 국제무대에 알려졌고 빠르게 각국 전력분석원과 감독들에게 소개가 됐다.
‘스피드 배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차이가 있다. 세터 출신과 윙 공격수 혹은 센터 출신 감독들 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터 출신 사령탑은 아무래도 세터 볼배급에 초점을 좀 더 맞춘다. 다른 포지션 출신 감독들은 세터가 아닌 다른 공격수들의 움직임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좋은 예가 있다. 문성민(현대캐피탈)이 지난 2008 ~2009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 뛸 때 사령탑을 지낸 스탈리안 모쿠레스쿠 감독은 “세터 스피드에 공격수가 맞춰야 한다”고 문성민에게 늘 강조했다.
문성민은 독일 진출 초기 세터 볼 배급에 어려움을 느꼈다. 속도와 타이밍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모쿠레스쿠 감독은 문성민에게 ‘반 박자’를 강조했다. 세트에 맞춰 공격할 때 밟는 스탭에 신경을 쓰라는 의미였다. 문성민이 갖고 있는 장점인 스피드를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다.
독일과 터키리그를 거쳐 V-리그로 유턴한 문성민의 소속팀은 현대캐피탈이다. 그런데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흥미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김호철 감독 뒤를 이어 최태웅 감독이 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시도하고 있는 ‘스피드 배구’다.
최 감독은 오프시즌 동안 세터 외에 다른 선수들에게도 세트 훈련을 시켰다. 정규시즌이 막을 올린 뒤에도 거르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그는 “레프트, 라이트, 센터들이 세터처럼 볼을 보낼 순 없겠지만 전체적인 팀 움직임과 템포(tempo)를 빠르게 가져가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최 감독이 추구하는 ‘스피드 배구’ 핵심이 바로 이 부분에 있는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10월 2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라이벌 삼성화재와 2015~ 2016시즌 NH농협 V리그 1라운드 맞대결을 가졌다. 경기결과는 현대캐피탈 3-0 완승. 특히 22-24로 끌려가고 있던 3세트를 27-25로 뒤집으며 승리를 확정했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이날 네트 반대편 삼성화재 선수들과 견줘 확실히 움직임이 빨랐다. 최 감독은 경기 후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속공 뿐 아니라 중앙 후위공격에서도 효과를 봤다”고 했다. 세트 스피드에서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보다 반박자 정도 빨랐다.
최 감독이 구상하는 ‘스피드 배구’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아직까지는 최 감독 성에 차진 않는다. 그는 “잘될 때는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지만, 반대의 경우는 답이 없다”고 웃었다. 팀과 선수들에게 제대로 녹아들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코트에서 직접 뛰는 선수들의 부단한 노력이 따라줘야 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스피드 배구’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스피드 배구는 코트에서 뛰고 있는 선수 6명 전원이 각자 기술과 스피드로 상대 블로커를 따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문성민은 당시 경기가 끝난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던진 ‘스피드 배구’에 대한 질문에 “설명이 쉽지는 않지만 리베로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인플레이 상황에서 코트에 한꺼번에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에서 유래된 ‘토탈 사커’처럼 ‘스피드 배구=토털 배구’라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 사진 : 현대캐피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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