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도전 중
“지난해 우승했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처지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첫 마디부터 의미심장했다.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그 때 흐름이 상승세를 타서 그런 거였죠. 그게 우리 팀 평균 실력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래서 지금도 도전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듣고 싶은 말은 그제야 나왔다. “올해 또 챔프전을 가고, 우승을 한다면 그때는 좀 건방지지만 ‘이게 우리 팀 색깔이자 전력입니다’라고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을까. 김 감독은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기술적 부분이나 체력적 부분에 앞서 분위기를 우선시 하는 게 훈련 때도 감지됐다. 준비 과정만 보면 쉽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또래들로 팀을 꾸리다 보니 하나를 신경 쓰면 다른 하나가 삐걱댔다.
우승경험은 큰 힘이 됐다. 김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하나 기대하는 거죠. 경기에 들어가면 선수들 몰입도가 달라져요. 지기 싫어하는 모습도 보입니다”라며 미소를 머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우승 원인을 되짚었다. 바로 블로킹 얘기가 나왔다. “기술적으로는 블로킹 능력 향상이라고 봅니다. 3라운드까지 팀 블로킹 4위였지만 점점 좋아져서 블로킹 1위로 시즌을 마감했죠. 또 리베로 정성현 선수가 완벽하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도 원인이라 봅니다. 송명근과 송희채는 어린데다 업다운이 심해 걱정이었으나 자꾸 책임감을 부여했더니 빨리 올라오더라고요,”
선수단에 책임감을 주려고 애를 썼다. 어차피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당장도 할 수 있다는 자극이었다.
그 역시 책임감 속에서 살아왔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공무원인 아버지가 충북 옥천으로 전근 배치되면서 삼양초등학교를 다녔고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다. 출발은 세터였다. 이후 센터로 포지션을 바꿨고, 고 3으로 진학할 무렵부터 라이트에 고정됐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레프트 경험도 했다. 리베로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던 것. 이는 지도자 생활에도 큰 자산이 됐다.
“감독 입장에서 ‘그걸 왜 해야 하고, 그걸 했을 때 나오는 결과가 뭐다’라는 걸 알고 있으니 선수들에게 설명하기가 좋죠. 작전 타임도 짧고 쉽게 갑니다. 포인트만 정리해줘야지 길게 설명해봐야 선수들이 알아듣기 어렵거든요. 잔소리보단 팩트만 전달하려 합니다.”
모든 선수들이 뛰고 싶어하는 팀
해설위원으로도 오랫동안 일했다. 이 역시 감독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제 포지션에서 제 임무만 하다가 해설을 해보니 ‘이 상황에서 내가 감독이라면 어떤 지시를 했을까’라는 상상을 많이 하게 됐죠. 그 상상에 더하여 양쪽 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점, 두 가지가 큰 도움입니다”라고 말한다.
코치 생활을 전혀 하지 않았던 그가 선수에서 해설위원으로, 해설위원에서 감독으로 직행했지만 지도자 변신에 빠른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준비과정 때문이다.
인터뷰가 무르익을 무렵 대뜸 ‘김세진식 배구’는 뭐냐고 물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찾아가는 과정이죠. 기술적인 얘기는 도저히 찾을 수 있는 답이 없고, 디테일함이랄까. 선수들의 심리를 반영해줄 수 있는 디테일함이 제 스타일이 아닐까 싶어요”라며 한 손을 눈가에 붙여 생각에 잠긴다.
그가 원하는 배구는 심리적인 소통에 의한 융화를 바탕으로 한다. 기술적인 건 한계가 있다는 뜻. “위계질서 때문에 감독 위치에서 해야 하는 건 물론 있겠지만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누면서 하고 싶습니다”라며 더욱 진지해졌다.
7명뿐인 대한민국 남자프로배구팀 감독으로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배구인생 목표에 대해 물었더니 “배구 행정가로 남고 싶습니다. 감독도 오래 하고 싶지만 배구인생 최고 목표는 행정가입니다”라며 눈을 번뜩였다.
“선수들이 진짜로 대접받는 팀을 만들고 싶어요. 뛰고 싶어 안달 나는 팀을 꼭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지금 이 원대한 목표를 향하는 과정 속에 있다. 감독으로 걸음마를 뗄 무렵 우승감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아직도 도전하며 오르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시즌은 스승과 대결을 펼쳤지만 이제는 또래들과 만난다. 그의 성공으로 또래대결은 성큼 앞당겨진 것이다. “싸움닭처럼 악착같이 이겨야지 하는 마음을 못 가질까 하는 걱정은 있습니다. 그냥 아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아는 사람들끼리 감독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제는 뭘 해도 웃으면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며 여유도 보였다.
안산 상록수 체육관 앞 대형 캐노피 속 김세진 감독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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