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편견, 깨부수겠다!' 최연소 국가대표 제천산업고 임동혁

권민현 / 기사승인 : 2016-02-05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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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권민현 기자] 10월 19일, 대한배구협회 보도자료가 도착했다. 제목은 ‘사상 최초 고교·대학 14명 국가대표 확정’. 내용을 열어보니 ‘임동혁’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최연소 국가대표’라는 설명이 그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12월 8일 제천산업고 체육관을 찾아갔다.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체육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자를 맞이한 건 임동혁이었다. 때마침 기말고사 시험기간이었다. 시험 잘 봤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무난하게 봤어요”라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머릿속에 온통 ‘배구’만 있는 것 같았다. 제천산업고 김광태 감독은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다. 인성도 좋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진행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긴장한 낯빛이 역력했다. 옆에 있었던 기자가 재미있게 풀어주려 했으나,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체육관 안이 추워 그런지 더 어색해했다. 그래도 요구하는 포즈는 척척 해냈다. 한 시간 정도 촬영한 뒤에, 본격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득, “인터뷰, 잘할 거에요”라는 김 감독 말이 스쳐 지나갔다. ‘최연소 국가대표’ 수식어를 단 뒤, 많은 매체에서 그를 주목했기에,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을 법 했다.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많이 없어졌다.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단어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최연소 국가대표’ 임동혁 이야기, 이제 시작이다.



천상 배구선수
제천 의림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전까지 테니스를 배우고 있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하게 큰 키가 눈에 띄었다. 배구부 코치는 배구해볼 것을 제의했다. 어린 나이에 ‘배구’라는 스포츠에 호기심이 생겼다.

테니스 라켓을 놓고 배구공을 만졌다. 친구들끼리 모여 볼을 주고받기를 해보니 테니스와 다른 매력을 느꼈다. 자연스레 흥미를 느꼈다. “부모님은 공부하기를 바라셨는데, 어머니가 ‘이왕 하는 거 네가 좋아하는 거 해라’고 말씀하셔서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게 시작한 배구. 초등학교 6학년인 2011년 3월 한산대첩기차지 초등배구대회 예선을 치르던 중 다치기도 했다. 제천중 1학년 때는 배구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 두려고까지 했다. 그때 그를 붙잡아 세운 것은 어머니였다.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운동하면서 힘들지 않은 것이 어디 있냐’라며 설득했다. 그때부터 웬만한 것은 참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어느덧 “프로경기 보면 관중들이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해준다. 내가 저 자리에 있을 때, 누군가 내 응원가를 불러주길 원한다. 프로무대에 꼭 서고 싶다”는 꿈도 가지게 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키는 점점 커졌다. 중학교 3학년 때 195㎝에 달했다. 김 감독은 “성장판이 닫히지 않아서 키가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199㎝. 본인은 “더 커지기 싫은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큰 키 덕에 역할은 주공격수며 마무리는 언제나 그 몫이었다. 초, 중학교 때도 그랬고, 고교생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랠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때리는 스파이크로 점수를 내면 짜릿하다. 수비수가 공을 받아내지 못했을 때면 더욱 희열을 느낀다”고 배구에 대한 매력을 밝혔다.

역시 자신 있어 하는 것은 공격. “또래들 보다 키도 크고, 점프도 좋은 편이라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진다”며 자랑스러워 하지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새기며 더 노력하려 한다”고 겸손해했다.



전국체전 결승전, 가장 기억에 남아
지난 10월,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결승전.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물으니 망설임 없이 이 경기를 꼽았다. “나뿐만 아니라 팀, 나아가 학교 전체에 의미가 있었다”며 이유를 밝혔다.

결승 상대는 속초고. 앞서 8월에 열린 제26회 CBS배 전국 남녀 중고 배구대회 결승전에서도 만났었다. 결과는 1-3(32-30, 21-25, 20-25, 26-28)으로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속초고 선수들과 상당히 친하다는 것. “선수들끼리도, 감독, 코치 역시 서로 친하다. 이기든 지든, 화기애애하다. 같이 놀기도 해서 서로 좋아한다”며 우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고, 명예회복을 노렸다. 승부는 냉정한 법. 더구나 전국체전 결승전이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1세트부터 치열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분위기를 점하기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팀 기둥인 3학년 센터 박용준이 발목부상으로 코트에 서지 못하는 위기를 맞았다.

스스로도 “(박)용준이 형이 다쳐서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희망은 잃지 않았다. 당시 “팀원들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열심히 해서 점수를 냈고, 승리할 수 있어 좋았다”고 떠올렸다. 제천산업고는 그를 중심으로 김웅비, 김영대, 김상윤 등이 활약한 덕에 3-0(35-33, 25-22, 26-24)으로 꺾고 29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이기는 순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해냈구나 생각했다. 2015년을 마무리하는 대회에서 우승하니 축제분위기였다. 모든 게 형들 덕분이다”며 우승 당시의 기쁨을 표현했다.

유난히 큰 키에 탁월한 실력으로 여학생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결승전 경기가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공교롭게도 남녀공학인 학교였다. 코트로 다 몰려 나왔다”며 멋쩍어했다. “같이 사진 찍자고 말하는데, 아직까진 어색하다”고 수줍어 했지만, ‘임동혁’이라는 이름을 알아주는 데 고마워했다.



나는 국가대표다!
10월 16일, 대한배구협회는 강원도 고성에서 제9차 상임이사회를 개최, 임동혁을 포함해 고·대학에 재학 중인 선수 14명을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했다.

주목할 부분은 장윤창(현 경기대 체육학과 교수)이 보유하고 있던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경신했다는 것이다(장 교수는 당시 인창고 2학년 재학 중에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임동혁은 전국체전에 참가 중이었다. 팀 선배가 인터넷 서핑으로 관련기사를 보았고 ‘임동혁’ 이름을 발견하고서는 곧바로 알렸다. 믿기지 않았다. 쉽사리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밤중에 컴퓨터를 켰고, 본인 이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 순간, “좋으면서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 사실을 제일 먼저 부모님께 전해 드려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만두려고 했던 배구를 참고 견딘 데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기쁨은 잠깐.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국가대표가 됐는데,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제가 제일 막내니까 처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형들보다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고 다짐했다.

‘왜 국가대표인가’라는 말보다는 열심히 노력해서 ‘많이 늘었구나, 그래서 국가대표로 뽑힌 것’을 증명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16살에 불과한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라는 영광을 손에 쥐었다. 김 감독은 “어렸을 때 테니스를 해서 그런지 스윙할 때 팔이 펴지지 않았다. 좀처럼 고쳐지지 않던 부분이었는데, 이게 고쳐지더라(웃음).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다. 국가대표 경험은 한 단계 성장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과제는 ‘편견’을 깨는 것이다. “키가 크면 둔하고, 탄력도 없고,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런 편견을 깨고 싶다. 임동혁 하면 키가 크면서 점프도 좋고 기본기가 괜찮은 선수다. 뭐든 다 잘할 수 있고, 노력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만약, 배구를 하지 않았다면? 부모님 속만 썩이는 아들이었고, 꿈도 없을 것이라 했다. 그에게 있어 배구는 모든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편견을 깨버리겠다는 당찬 각오를 다진 임동혁. 한국 배구가 그 이름을 자랑스러워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 사진 : 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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