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2015~2016시즌 V-리그도 반환점을 돌았다. 올스타 휴식기를 거쳐 4라운드 일정도 모두 소화했다. ‘봄 배구’를 향한 상위권 팀들의 순위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전력의 핵’인 산체스가 불의의 부상으로 퇴출되자, 서둘러 러시아 국가대표 출신 모로즈를 영입했다.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이 아득해 보이는 우리카드도 러시아 2부 리그 출신 알렉산더를 급히 수혈했다. 불가피한 교체였으나 두 팀에게는 희망적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시즌 도중 외국인선수 교체는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군다스 자리 메운 알렉산더
우리카드는 올 시즌을 군다스(라트비아)와 함께 시작했다. 그는 어깨 부상으로 우리카드 합류 전까지 운동량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군다스에 거는 기대는 컸다. 그는 V-리그 각 팀들이 앞다퉈 영입하려던 선수 중 하나였다. 까다롭게 올라온 볼에 대한 처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이유로 V-리그에 어울리는 외국인선수라는 얘기를 들었다.
김상우 우리카드 감독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군다스는 올 시즌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퇴출 당했다. 17경기 52세트에 출전해 311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경기당 평균 18.29점이다.
김 감독은 “외국인선수라면 경기당 평균 20~30점 사이는 기록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군다스는 이 기준에는 못 미쳤다.
급기야 우리카드는 외국인선수 교체 카드를 꺼냈다. 군다스에 이어 영입한 선수는 러시아 2부리그에서 뛰던 알렉산더(러시아)다. 앞서 알렉산더는 V-리그에 외국인선수 제도가 시행된 이후 ‘이름값’과 ‘경력’에서 가장 떨어지는 선수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군다스보다 나은 활약을 보였다. V-리그 데뷔 첫 경기던 지난 1월 7일 한국전력전에서 30점을 올리며 우리카드의 3-2 승리에 도움을 줬다. 선수 이름값만 좇을 일이 아니었다. 당시 우리카드에게는 한국전력전이 매우 중요했다. 패했다면 10연패를 당하는 상황이라 어떡하든 연패를 끊어야 했다. 알렉산더는 연패 스토퍼 노릇을 톡톡히 했다.
비록 우리카드는 이후 연승으로 내달리지 못했지만 알렉산더는 그동안 팀이 필요로 했던 주 공격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1월 21일 기준으로 4경기 7세트에 나와 112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28점으로, 수치상으로 군다스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대한항공, 2009~2010시즌 기억은 ‘NO’
우리카드에 앞서 먼저 외국인선수를 바꾼 팀이 있다. 대한항공이다. 2013~2014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3시즌을 함께 한 마이클 산체스(쿠바)를 모로즈(러시아)로 교체했다.
기량 문제는 아니었다. 예상치 않은 부상으로 산체스는 대한항공 유니폼을 벗었다. 그는 팀 훈련 도중 몸을 푸는 과정에서 오른쪽 손등이 골절됐다. 점프를 시도하다가 안테나 기둥 밑부분에 손을 부딪혔다.
8주 진단이 나왔다. 구단 입장에서도 교체카드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마냥 기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모로즈 합류 후 대한항공은 고공비행을 시작했다. 지난 1월 20일에는 OK저축은행을 끌어내리고 순위표 맨 앞자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외국인선수 교체와 관련해 아픈 기억이 있다. 지난 2009~2010시즌이 그랬다. 당시 시즌 시작은 밀류세프(불가리아)와 함께였다. 그런데 시즌 도중 교체카드를 썼다.
당시 팀을 이끌고 있던 신영철 감독(현 한국전력)은 밀류세프를 내보내고 2006~2007시즌 삼성화재에서 뛴 경험이 있는 레안드로(브라질)을 영입했다. 정규시즌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노리기 위한 ‘승부수’였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정규시즌에서 25승 11패를 기록, 3위에 그쳤다. 삼성화재, 현대캐피탈과 순위 경쟁에서 밀렸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현대캐피탈을 넘지 못했다. 후일 신 감독은 “정말 후회가 남는 결정이 돼버렸다”고 잘못을 얘기했다.
모로즈는 밀류세프와는 교체 이유와 성격이 다르다. 대한항공 합류 이후 팀 성적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봄 배구’에서 좋은 성적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외국인선수 교체의 딜레마
V-리그에 외국인선수가 뛰기 시작한 건 지난 2005 ~2006시즌부터다.(여자부는 2006~2007시즌) 도입 첫 해부터 교체 선수가 나왔다.
남자부 삼성화재는 아쉐(브라질)를 기량 미달을 이유로 퇴출하고 대신 프리디(미국)를 데려왔다. 프리디는 미국대표팀 주전 레프트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프리디가 제 역할을 못했다. 팀 적응에 어려워했다. 동료들과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숀 루니(미국)을 앞세운 현대캐피탈에게 막혀 챔피언결정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프리디 실패 사례는 이후 삼성화재의 외국인선수 영입에 많은 영향을 줬다. 신치용 당시 감독은 스카우트 과정에서 ‘이름값’이나 화려한 경력보다는 선수 인성을 가장 먼저 봤다.
여자부는 2006~2007시즌 KT&G(현 KGC인삼공사)가 가장 먼저 교체 카드를 썼다. KT&G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루시아나(브라질)가 부상으로 팀을 떠나야 했다. 그는 컵대회에서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여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시즌 초반 부상을 당하며 팀을 떠났다.
KT&G는 하켈리를 급하게 데려왔지만 떨어지는 팀 성적을 붙잡지 못했다. KT&G는 루시아나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고 3승 21패 최하위(6위)로 그 해 시즌을 마쳤다. 루시아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외국인선수 교체카드가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남자부도 2009~2010시즌 현대캐피탈이 맷 앤더슨(미국)을 에르난데스(쿠바)로 교체했지만 결국 목표로 삼았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는 실패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 아가메즈(콜롬비아)를 대신해 케빈(프랑스)을 데려왔지만 V-리그 참가 사상 처음으로 ‘봄 배구’에 참가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성공사례도 있다. 2009~2010시즌 GS칼텍스가 그랬다. V-리그 역사상 최고 외국인선수 교체로 꼽히는 데스티니(미국)가 100% 이상 실력을 코트에서 보여줬다.
GS칼텍스는 이브(도미니카공화국)의 기량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당시 대학 졸업반이던 데스티니를 데려왔다. 그가 합류하기 전 정규리그에서 최하위로 처져있던 GS칼텍스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팀은 14연승을 거두며 순위를 끌어올렸고 플레이오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데스티니 효과’를 제대로 본 셈이다. 그러나 GS칼텍스는 외국인선수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대표적인 팀으로도 꼽힌다. 이 부분은 올 시즌에도 진행형이다.
GS칼텍스는 자유선발 시기에 남녀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교체카드를 사용한 팀이기도 하다. 데스티니 이후 2010~2011시즌과 2011~2012시즌 연달아 외국인선수를 바꿨다. 제시카(브라질) 산야 포포비치(크로아티아, 이상 2010~2011시즌) 베키 페리(미국) 테레사 로시(체코, 이상 2011~2012시즌) 등이 연달아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었다. 팀은 지난 시즌에도 쎄라(캐나다)를 대신해 에커맨(미국)을 영입했다.
트라이아웃 제도 보완 절실
올 시즌 여자부 외국인선수 선발 규정은 큰 변화를 겪었다. 기존 자유선발에서 트라이아웃제도로 바뀐 것이다.
공교롭게도 GS칼텍스가 본의 아니게 트라이아웃의 ‘피해자’가 됐다. GS칼텍스는 캣 벨을 뽑았는데 무릎 상태가 좋지 않다. 지난 시즌 같았다면 벌써 교체카드를 쓰고도 남았다. 하지만 트라이아웃 제도가 갖고 있는 맹점 때문에 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바뀐 규정상 교체 선수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던 선수로만 한정됐다. 그러다 보니 대체 선수 풀이 좁다. 캣 벨을 바꾸려고 해도 마땅한 선수가 없는 게 현실적인 이유다.
GS칼텍스 뿐 아니라 다른 구단들도 교체선수와 관련된 부분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영입한 선수가 뛰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심한 경우 국내 선수로만 남은 시즌 일정을 치러야 하는 팀이 나올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올 시즌은 트라이아웃에서 뒷 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팀들이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며 “만약 선지명권을 행사했던 팀들이 상위권에 자리했다면 트라이아웃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더 강력하게 있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트라이아웃은 오는 2016~2017시즌 시행 두 번째 해를 맞는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첫 시즌 나왔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다르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트라이아웃에 대한 사전 준비나 정보 전달 등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남자부도 2016~2017시즌부터 트라아아웃제를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남자부 흥행 참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국적을 제한하지 않는다지만, 수준 높은 기량을 갖춘 외국인 선수들에 익숙해진 국내팬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 지가 성패의 관건이다. 여자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제도 보완과 점검은 반드시 필요하다.
# 사진 :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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