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최원영 기자] 포근히 내려앉은 봄 햇살과 함께 또 하나의 리그가 찾아왔다. 한때는 프로였거나, 프로가 되고 싶었던 선수들이 남은 꿈을 펼치는 곳. 실업리그다. 탄탄한 조직력과 막강한 전력으로 실업 최강을 꿈꾸는 화성시청.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배구 꿈’ 놓지 못한 미생未生들의 보금자리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위치한 송산고등학교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체육복 입은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다. 그 사이로 수염이 거뭇한 청년들이 눈에 띈다. 화성시청 배구팀 선수들이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빠져나가자 본격적으로 훈련에 열을 올린다. 실업배구연맹전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3월 11일이었다.
화성시청 배구부는 2008년 1월 2일 창단된 직장 경기운동부다. 뿌리가 된 것은 송산중학교다. 화성 관내 배구팀간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송산중, 남양초에 이어 화성시청 배구부가 신설됐다. 송산고가 그 뒤를 이었다. 화성시는 체육관, 숙소, 운동 기구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갑제 감독, 임태복 코치 지휘 아래 강보식(現 송산고 배구부 감독), 김형찬(現 현대건설 코치) 등이 초대 멤버가 됐다. 화성시청은 2008년 5월, 창단 4달 만에 전국 종별배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이듬해 4월부터는 실업배구연맹전을 3연속 제패했다. 최근에는 제95회 전국체육대회(2014년) 금메달, 2015 실업배구연맹전 우승 등 매번 국군체육부대와 앞자리 다툼을 벌여왔다.
다시 내일을 꿈꾸다
창단 첫 해부터 팀을 맡았던 김 감독과 임 코치는 9년째 화성시청을 이끌고 있다. 수많은 선수가 팀을 거쳐갔다. 젊은 나이에 프로무대에서 밀려난 선수, 대학 졸업 후 프로 진출에 실패한 선수 등 꽃을 채 피우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소속된 선수 중 라이트 용동국은 2015~2016시즌 중 우리카드 유니폼을 벗었다. 187cm 단신 라이트임에도 빼어난 공격력을 갖췄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레프트 이광인은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2010) 남자 비치발리볼 국가대표로 활약 후 삼성화재에 입단했으나 한 시즌 만에 은퇴했다.
세터 최민국은 진주동명고 출신으로 2013~2014 드래프트에서 정지석(L, 대한항공)과 함께 첫 고교생 드래프트 선수로 삼성화재에 입단했으나 한 시즌 만에 방출됐다. 센터 이정준은 제7회 동아시아배구선수권대회(2010)에 전광인, 서재덕, 최민호, 부용찬 등과 함께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이후 2011년 LIG손해보험(現 KB손해보험)에 입단했으나 두 시즌 후 코트를 떠났다.
화성시청에서 프로 코트로 복귀한 선수들도 더러 있다. 삼성화재 리베로 곽동혁이 대표적인 경우다. 곽동혁은 2008년 은퇴 후 화성시청에서 3년간 활약하고 2011년 다시 프로 선수가 됐다. 화성시청 이동엽 코치도 곽동혁과 비슷한 경우다. 은퇴 후 화성시청 소속으로 뛰다 다시 프로 선수로 활약했다. 이 코치는 선수생활을 완전히 마치고 다시 화성시청으로 돌아와 지도자가 됐다.
김갑제 감독은 프로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면 아무 조건 없이 선수들을 보내준다. 온전히 선수들 장래를 위한 결정이다. 유망한 선수가 허무하게 꿈을 접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도태된 선수들이 배구를 이어갈 수 있게끔 배려해준 화성시에 감사하다”는 그는 선수단 정원도 12명에서 15명으로 늘렸다. 더 많은 선수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화성시청 배구부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한다. 대한배구협회에서 개최하는 심판·기술지도 강습회에 참여해 공인심판·기술지도 자격증을 준비한다. 실제 화성시청 출신 선심들이 프로에서 활약 중이기도 하다. 사회체육지도자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팀에서 단체로 공부할 수 있게 배려했다.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 현실적인 목표를 만들어주고 이에 도달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다.
에이스 없어도 우리는 하나
평소 송산고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화성시청. 김 감독과 임태복, 이동엽 코치는 매일 훈련 10분 전에 체육관에 나온다. 선수들보다 늦게 나오거나 사적인 일로 자리를 비우는 일은 거의 없다. 선수들을 지켜보고, 지도하며 ‘함께’ 한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덕분에 선수들도 잔꾀 부리는 일 없이 성실하게 훈련을 소화한다. 연습 때는 정해진 라인업 없이 모든 선수를 고루 기용해 조합을 맞춰본다.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수비’와 ‘연결’이다. 수비 후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면 강한 팀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화성시청의 에이스는 누구일까? 김 감독과 주장 김호준은 동시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모두가 중요한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승부처에서 확실하게 해결해줄 선수도 없다. 화성시청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팀이라고 한다. 김호준은 “실업리그는 프로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기장에 오셔서 어떤 선수들이 있는지, 어떻게 배구를 이어가고 있는지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맺었다.
배구로 성공했으니 후배들에게 이를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는 김 감독. 그는 실업리그에 대한 아쉬움을 밝혔다. “실업 팀 숫자는 많지만 제대로 된 팀은 거의 없다. 실업리그가 발전해야 후배들이 희망을 갖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성시청 배구부를 비롯해 실업 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길 바라본다.
화성시청 Roster
감독 김갑제 ┃ 수석코치 임태복 ┃ 코치 이동엽
배번 이름 포지션 신장 이전 소속팀
12 김호준(주장) 라이트 192㎝ 홍익대-국군체육부대
8 용동국 라이트 186㎝ 경남과학기술대-우리카드
11 이보규 라이트 192㎝ 인하대-대한항공
5 이광인 레프트 193㎝ 경희대-삼성화재
9 조민수 레프트 187㎝ 충남대-러시앤캐시
15 김홍찬 레프트 193㎝ 한양대
17 김현우 레프트 190㎝ 경희대
3 배홍희 리베로 183㎝ 경기대-OK저축은행
14 최돈선 리베로 180㎝ 경남과학기술대-LIG손해보험
4 최민국 세터 192㎝ 진주동명고-삼성화재
6 임진석 세터 187㎝ 경기대-현대캐피탈
7 신승준 세터, 리베로 177㎝ 중부대-LIG손해보험
1 김영문 센터 195㎝ 경남과학기술대
10 류기현 센터 193㎝ 중부대-러시앤캐시
18 이정준 센터 198㎝ 명지대-LIG손해보험
#사진_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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