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6 시즌 여자부에서 처음 실시된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IBK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은 내심 리시브가 가능한 장신 레프트를 원했지만 후보들 면면을 본 결과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김희진을 라이트로 고정하고 센터를 뽑아 높이를 보강할 생각도 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던 헤일리가 예상대로 첫 번째 순위로 KGC인삼공사의 지명을 받았다. 2번째 순번을 쥔 GS칼텍스가 뜻밖에 캣벨을 지명했다. 라이트 공격보강을 위해 맥마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지만 베테랑 이선구 감독의 전략적 판단은 달랐다.
처음부터 수비가 되는 레프트를 탐냈던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이 테일러, 에밀리를 각각 지명했다. 트라이아웃 내내 “마지막 순번이니까 남들이 선택한 다음에 생각하겠다”며 여유를 부렸던 이 감독은 복이 있었다. 구슬 뽑기에서 도로공사를 제치고 5번째가 되는 행운을 잡았다. 198cm, 87kg의 체격으로 강타를 때리던 맥마혼이 다른 팀의 지명을 피해서 내려왔다. 이 감독은 그동안 생각해왔던 팀의 밑그림을 즉시 변경했다.
주저 없이 맥마혼을 선택했다. 김희진의 포지션 변경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맥마혼의 높이와 파워를 믿어보기로 했다. 남은 기간 훈련으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결국 이 감독의 선택은 성공했다. 맥마혼은 IBK기업은행 창단 5년 사이 3번째 시즌 MVP가 됐다.
트라이아웃 전체 5순위 맥마혼, 백조로 변신하다
지난 해 8월1일 처음 팀에 합류했던 맥마혼은 토종 선수들 기준에 보자면 한창 미달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IBK기업은행의 독한 훈련과 이 감독의 지적은 끝이 없었다. 그 동안 해왔던 배구와는 차이가 컸다. 마음이 여린 맥마혼은 많이 울었다. 첫 경기는 긴장이 지나쳤다. 얼굴이 하얗게 떠서 제대로 공격조차 못했다. 수비도 낙제점이었다.
IBK기업은행은 시즌 출발이 불안했다. 장점인 수비와 연결에서 무엇 하나 지난 시즌보다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위기였지만 이 감독은 서두르지 않았다.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했다. 우선 맥마혼 개조에 들어갔다. 매일 200~300개 공을 때리면서 어떻게 타점을 살리고 체중을 싣는지 요령을 알려줬다.
땀과 열정, 인내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씩 새로운 선수로 변해갔다. 세터 김사니가 없었더라면 맥마혼의 성공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사니의 힘 있는 볼 끝 덕분에 타점을 살려낼 수 있었다. 김희진의 공도 컸다. 김사니는 김희진을 미끼로 잘 이용했다. 중앙에서 공격능력이 좋은 김희진이 먼저 뜨면 상대 블로커가 따라서 움직였다. 맥마혼은 그 틈을 이용해 편하게 공을 때렸다. 블로커 위로 꽂는 강타는 무시무시했다.
한국형 배구에 가장 필요한 공격수로 차츰 변모해간 맥마혼의 공격 수치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향상됐다. 1라운드(129득점, 39.86% 공격성공률) 2라운드(107득점, 41.59% 공격성공률), 3라운드(132점, 43.80% 공격성공률)를 기록했다. 4라운드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상대 수비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격수로 꼽혔다. 구질의 특성이 더욱 수비를 어렵게 했다. 정타를 때려도 공 끝이 지저분한 구질은 축복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다이어트와 눈물이 만들어낸 MVP
시즌 내내 코트 뒤에서 선수들 플레이를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KOVIS 요원들에게 맥마혼의 성공이유를 물었다. 은퇴 배구선수 출신인 그들은 여자의 눈으로 맥마혼을 봤다. “시즌 초반과 비교해 시즌 막판 맥마혼의 몸이 정말 달라졌다. 처음 볼 때는 뚱뚱한 느낌이었고 둔해 보였지만 시즌 막판에는 날씬해졌다. 몸이 가벼워졌으니 점프도 높아졌고 스피드와 순발력이 좋아졌을 것이다. 지금은 얼굴에 V라인도 보인다”고 했다. 그들은 “만일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외국인선수가 있다면 V-리그 트라이아웃에 나오면 된다. 쉽게 살을 빼준다. 지난해 흥국생명의 루크도 처음에는 엄청났지만 마지막에는 날씬해져서 돌아갔다”고 입을 모았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청국장도 잘 먹었고 동료들과 친화력도 좋았던 맥마혼은 후반기부터 리그를 평정했다. 4라운드(143득점, 45.45% 공격성공률) 5라운드(149득점 38.66 공격성공률) 연속해서 라운드 MVP가 됐다. 그 활약 덕분에 IBK기업은행은 후반기 9연승 포함 12연승을 했다. 마지막에 김희진과 맥마혼의 부상으로 고전은 했지만 통산 3번째 정규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6라운드 막판 손가락 부상으로 3라운드 연속 라운드 MVP를 놓친 맥마혼에게는 시즌 MVP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즌 전체로 봤을 때 이 감독은 가장 고생하고 고마운 선수로 김사니를 꼽았다.
하지만 투표인단의 판단은 감독과 달랐다. 그만큼 맥마혼의 기록은 대단했다. 득점 3위(727점) 공격종합 1위(성공률 41.27%) 퀵오픈 1위(성공률 54.07%) 백어택 1위(성공률 40.47%) 오픈공격 2위(성공률 38.13%) 시간차공격 2위(성공률 51.69%) 서브 2위(세트평균 0.265개) 등의 놀라운 성적에 표가 움직였다.
이 감독은 “디테일에서 여러 가지 주문이 많았는데 심성이 착해서 시키는 대로 따랐다. 힘들었을 테지만 잘 따라와 준 덕분에 기량이 많이 늘었다. 고생을 많이 했다”고 MVP 수상을 축하해줬다. 맥마혼에 밀려 생애 첫 정규리그 MVP를 놓친 김사니는 “맥마혼이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다. 중앙에서 희진이가 뜨면 상대 블로커가 마크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맥마혼은 편하게 공격한다”고 했다.
현대건설과의 챔피언결정전에 결장했던 맥마혼은 21일 수원실내체육관 관중석에서 울고 있었다. 팀이 3연패로 패해, 봄 배구에서 좌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담겨 있는 눈물이었다. 그만큼 착했고 팀을 위한 충성심이 빼어났던 맥마혼이다.
글/ 김종건 스포츠동아 전문기자
사진 / 유용우, 신승규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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