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많은 일을 감당하는 직업이 있다면 무엇일까? 물론 가끔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요리사가 되었다가 선생님도 되어야 하고, 육아 전문가가 되었다가 또 엔지니어도 되어야 하는 직업. 그런 직업이 세상에 있을까? 물론 있다. 바로 ‘엄마’다.
배구에도 이런 엄청난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엄마처럼 많은 일을 감당하면서 세심하게 선수들 마음까지 신경 써야 하는 사람. 감독,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플레잉 코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때로는 코트 안에서 직접 뛰며 선수들을 이끌고, 또 코트를 나오면 선수들 마음을 어루만져야 하는 사람. 흔히 말하는 공기 반 소리 반이 아닌 ‘선수 반 코치 반’인 플레잉 코치.
이번 달은 배구 코트의 엄마면서, 실제로도 엄마인 그녀들. 40대 플레잉코치 장소연, 이수정 코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자랑스러운 엄마로 남고 싶어요”
한국도로공사 플레잉코치 장소연
36살 신인드래프트 참가자. 이미 실업에서 수많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국제무대에서도 맹활약했던 장소연. 그녀는 2009-2010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전체 1라운드 3순위로 프로무대를 밟았다.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입단하자마자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긴 장소연. 그녀는 3시즌 동안 2번 우승을 경험했다. 팀의 리빌딩으로 잠시 코트를 떠나긴 했지만, 2013~2014시즌 도로공사 플레잉코치로 계속 프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순탄하게 이어지는 듯했던 장소연의 배구 인생에 예상치 못한 아픔이 찾아왔다. 2014년 3월, 장소연은 인천 흥국생명 원정에서 심각한 발목 부상을 당했다. 발목이 완전히 꺾이며 끔찍한 부상을 당한 그녀는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시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과연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던 심각한 부상. 당연히 더 이상 배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팀을 떠나려는 그녀를, 당시 도로공사 서남원 감독이 붙잡았다. 은퇴를 하더라도, 일단 팀에 남아 좋은 환경에서 재활을 하라고 했다. 기약 없는 재활 시작. 트레이너와 수없이 싸웠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울었다. 그러나 그녀는 버텨냈고, 7~8개월 긴 재활을 거쳐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아마 팀을 나와서 혼자 재활을 했다면, 완벽히 치료가 안 되었을 거예요. 그때 저를 잡아준 서남원 감독님, 그리고 제 투정을 다 받아줬던 트레이너 선생님께 그저 감사하죠.”
큰 부상 이후, 장소연은 후배들 부상에 더 신경 쓰게 됐다.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일찌감치 이번 시즌을 마쳐야 했던 문정원. 장소연은 자신 경험을 바탕으로 문정원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고 있다. 문정원 역시 대선배의 재활을 곁에서 직접 지켜봤기에 힘든 재활에도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2016년 2월 29일, 흥국생명과 김천 홈경기. 5세트를 앞두고 코트로 들어서는 그녀 얼굴엔 눈물이 흘렀다. 4세트를 흥국생명에 내주며 플레이오프가 좌절된 도로공사. 물론 속상했겠지만, 배구만 30년을 한 그녀에게도 아쉬움이 있었을까.
“감사하게도 저는 우승을 많이 한 선수였어요. 그러다보니 플레이오프에 탈락했다는 감정을 제대로 느낀 것이 이번이 처음이더라고요. 거기에 앞으로 배구를 더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면서 감정이 복받쳤던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장소연은, 젊은 선수들의 기회를 가로막는다는 비판 아닌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녀 역시 후배들 뒤에서 힘을 보태주는 정도 역할만 감당하고 싶었다. 자신 때문에 후배들이 더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롭기도 했다. 본인은 코치라는 역할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상 선수가 생기면서 결국 풀타임으로 시즌을 마감한 장소연. 그녀는 아쉬운 마음을 조심스레 꺼냈다.
“사실 내가 팀에 있기 때문에 후배들이 못 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많아요. 다음 시즌엔 후배들 뒤에서 든든하게 후원해주는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장소연은 현재 시즌을 마치고 휴가 중이다. 휴가를 받으면 푹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막상 밀린 집안 일을 하고, 딸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어찌 보면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 느낌이다.
쉴 때라도 딸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학교와 학원 등하교 시 꼭 직접 데리러 가서 얼굴을 본다는 그녀. 통학버스가 있지만, 장소연은 쉬는 동안이라도 엄마 역할을 다하고 싶다. 얼마 전엔 세 가족이 조촐하게 가족 여행도 다녀왔다.
어느새 10살이 된 딸. 장소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로서 딸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감사하게 할머니가 육아를 신경 써주고 있지만, 아이 공부를 도와줘야 할 때나 정서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딸에게 배구를 그만둬야 할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당연히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엄마가 배구선수라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 좋다고 하더라고요.”
경기가 끝날 때마다 활약상을 묻고, 경기가 잘 안 풀린 날엔 오히려 딸이 위로를 해준다는 장소연. 딸에게 에이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제가 언제까지 배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딸에게 어디서든 자랑스러운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2편에 계속)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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