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배구계를 주름 잡으며 전성기를 이끌던 선수들이 있었다. 왕년에 한 가닥씩 하던 일명 ‘배구도사’들이 현재는 해설위원, 프로 팀 코치 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선수시절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터. 김건태 심판위원장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박 희 상 1996~2003년 대한항공. 현 KBS N SPORTS 해설위원
“박희상 해설위원이 대한항공과 상무에서 선수로 뛸 때 봤다. 항상 소리 소문 없이 조용했다. 기본기가 좋고 탄력이 좋은 선수였다. 아쉬운 것은 대한항공이 슈퍼리그 등에서 우승을 못 해서 본인 기량보다는 평가절하된 부분이 있다. 신장에 비해 가지고 있는 실력이 뛰어나 레프트 주 공격수로 좋은 선수였다. 군계일학, 항상 눈에 띄는 선수였다. 타고난 점프력이 좋았다. 가장 가슴 아팠던 때는 상무에서 활약하던 시절 주심이 서있는 심판대에 부딪혀 어깨 부상을 입었다. 그때 슈퍼리그 출전 11년째만에 처음으로 1차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안쓰러웠다. 은퇴 후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했지만 결국 다시 배구계로 돌아왔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권 순 찬 1997~2002년 삼성화재. 현 KB손해보험 수석코치
“권순찬 코치는 성지공고-성균관대-삼성화재-상무 시절 쭉 지켜봤다. 당시 박희상, 신진식 등은 본인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즉 포지션이 확실했다. 권순찬은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였다. 원래 포지션은 레프트였는데 그 외에 센터, 라이트 어떤 역할을 맡겨도 완벽히 해내는 아주 훌륭한 선수였다. 세터만 빼면 다 가능했다. 공격력은 물론이고 안정된 수비 능력까지 갖췄다. 센터 포지션으로 뛸 때도 시간차 공격을 잘 때리곤 할 정도였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권순찬이 신진식, 김세진, 박희상 등 보다 더 높게 평가 받기도 했다. 다만 일찍 은퇴한 것이 무척 아까웠다. 권순찬이 요즘 시대 선수였다면 프로 생활을 45세 이상까지 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시즌은 2001년 슈퍼리그다. 당시 삼성화재는 신진식, 김세진이 출전하는데 상무는 권순찬 한 명으로 삼성화재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때 권순찬 활약이 대단했다.”
석 진 욱 1999~2010 삼성화재. 현 OK저축은행 수석코치
“말이 필요 없다. 기본기가 좋고 서브리시브나 수비가 완벽한 선수다. 아쉽다면 신장이 좀 작은 것이다. 그래도 왼쪽 공격수로 반드시 필요한 선수다. ‘제2의 리베로다’ ‘석진욱이 리시브를 받으면 마음이 놓인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비가 뛰어났다. 최근에는 공격과 수비를 모두 겸한 선수들이 많지 않다. 1996년 국제배구연맹에서 여자 그랑프리 대회에 리베로 제도를 시험 테스트 했다. 1997년에는 남자 월드리그에서 리베로 제도를 시험했고, 1998년도부터 리베로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따라서 포스트 석진욱을 찾으려면 98년도를 기준으로 이전, 이후로 나눠 따져야 한다. 98년도 이전 선수들은 공격, 수비 등 멀티가 가능했다. 그 이후에 리베로 제도가 생기면서 레프트에 키 큰 선수들이 수비를 안 했다. 공격만 주로 했다. 요즘 선수들은 리시브가 부족한 게 티가 많이 난다. OK저축은행 송희채 같은 선수가 조금 두드러진다. 우승하며 경험을 많이 쌓은 덕이다. 하지만 석진욱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 석진욱은 슈퍼리그 때부터 지금까지 삼성화재 돌풍의 주역이었다. 모든 경기에서 잘했다. 삼성화재 초기 신진식, 김세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석진욱은 비교적 주목을 많이 받진 못 했다.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석진욱이 팀을 살리곤 했다. 석진욱은 그런 선수였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편집부, KOVO, 본인 제공
(본 기사는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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