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단을 떠났지만, 프로구단 한국전력은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어떤 생각이었는지?
제가 25년 동안 몸 담고 있었던 정든 구단이라, 외부에서 근무하던 중이라도 당연히 관심은 계속 있었습니다. 한국전력이 성적이 하위권이라 드래프트에서 우수한 선수를 지명할 수 있었습니다. 박성률 박준범 서재덕 양준식 전광인 오재성 등 몇 년 동안 계속 좋은 선수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수들을 위한 지원이 아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2년 터진 경기조작 사건으로 유독 한국전력이 타격이 컸는데…
은퇴선수가 모의한 경기조작 사건에 유독 한국전력 선수가 많이 연루되었죠. 팀 주축이 무너질 정도였습니다. 팀이 해체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전력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죠.
선수들이 경기조작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얘기합니다. 인터넷이 발달해 브로커들이 선수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한 솥 밥을 먹던 사이인 선배가 가볍게 밥 한끼 먹고 술 한잔 하면서 용돈 주면서 접근합니다.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덫에 걸리게 됩니다. 이런 점에 대해 수시로 주의를 주고 살피고 있습니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게 구단과 지도자 몫입니다. 배구계 전체가 힘을 모아 경계해야 합니다.
단장으로서 경기운영에는 관여하지 않더라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할 텐데…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다른 프로구단만큼 끌어 올려주고 싶습니다. 현재 한국전력은 체육관, 숙소, 식당이 모두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기반시설이 안정되지 않으면 여러모로 힘들어집니다. 선수 연봉보다 선수들을 위한 기반 시설 및 복지체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연봉은 다른 팀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승리 수당도 회사의 전폭적 지원으로 많이 올랐습니다.
감독이 자주 바뀌면서 선수들이 병역을 위해 상무로 가야 할 때를 놓치는 듯 합니다. 선수 순환이 잘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굳이 28~29살 다 채워 막판에 갈 필요 없습니다. 포지션 운영상 여유가 있다면 바로 상무팀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들이 성적에 연연해 선수를 무조건 끌어안고 있으려 합니다. 개선해야 합니다. 또 선수도 무조건 퇴출시키지 말고 기회를 더 주라고 했습니다. 비시즌 동안 대학 팀 등과 연습게임 할 때 검증해본 뒤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라운드 이후에 뽑혔더라도 대학 때는 다 주전 선수였습니다.
본사가 나주로 이전했다. 구단 연고지도 같이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쪽 지방에서도 원합니다. 그러나 프로에서 성적은 무시 못합니다. 만약 나주로 연고지 옮기면 숙소, 체육관도 같이 옮겨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지금도 숙소에서 왕복하려면 4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그렇게 되면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데 너무 힘듭니다. 홈경기 조차 원정 경기처럼 치러야 합니다. 연고지 이전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전 중앙중·고 배구팀이 해체됐다. 기반이 부실해지고 있다.
피라미드 구조로 저변이 받쳐줘야 하는데. 초중고팀들이 자생할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습니다. 드래프트에 따른 지원금이 100억 원에 달하고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낙수효과가 어디에서 끊기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남자배구는 20년째 올림픽 진출이 좌절됐다. 대책이 시급한데…
프로에서 어느 정도 저변 확대 위해 투자는 해야겠지만, 첫 번째는 선수들 개개인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유망한 선수들간 포지션 편중이 심합니다. 공격수들 리시브 능력이 너무 약합니다. 리베로와 백어택을 고등학교 때까지는 제한 했으면 좋겠습니다. 드래프트 지원금을 활용해 연맹 차원에서 변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이사회에서 의견을 제시하면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입니다. 국내 경기라도 그렇게 치렀으면 합니다. 라이트 포지션은 점점 인기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프로 가면 쓸모 없어진다는 이유에서죠. 공격 잘하는 선수가 라이트를 맡아야 하는데… 뭔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선배로서 선수들 미래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선수들이 입단하면 우선 운전 면허를 따라고 합니다. 영어 강의도 마련해줍니다. 선수들이 현역에서 물러나면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영어 단어, 한자 교육도 시키고 컴퓨터 활용 능력도 키우게 했습니다. 실제 그렇게 해서 직장 생활을 잘하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공 단장이 꿈꾸는 한국전력 구단은?
팬한테 사랑 받는 팀이 되려면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선수들이 플레이나 사생활에 나름대로 충실해야 합니다. 우승이 물론 좋지만 더 중요한 게 팬들에게 기억되는 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팀은 1945년 창단이니 70년이 넘었습니다. 배구 팬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팀이 됐으면 합니다. 다소 열악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반대로 팬들도 우리가 열심히 하면 박수도 쳐주시고 못하면 꾸지람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달게 받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
KOVO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기존 팀들이 잘해서 유지해왔습니다. 신생 팀 창단도 중요하지만 기존 팀들이 내실을 다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존 팀들에게 많은 지원을 바랍니다. 2차 드래프트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구단들이 보유했지만, 뛸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를 대상으로 드래프트 하는 겁니다. 특정 포지션에 선수들이 몰려있는 팀들이 있습니다. 지금 FA제도로는 선수들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습니다.
▶ 공 단장은 창가에서 길 건너 위치한 야구회관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 야구회관은 야구회원사 가입금을 바탕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배구도 한국전력이 회장사로 있으면서 자립자금으로 100억 원 넘게 적립했다. 그 자금 용처에 대해 한없이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글/ 김동준 편집장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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