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하면 인창중, 인창중하면 배구였던 시절이 있었다. 장윤창, 이상렬, 최영준, 후인정, 유광우, 신영석 등 숱한 스타들을 배출하며 한국 배구의 역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부침도 겪었다. 선수 수급이 어려워 대회에 참여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화려했던 과거와 어려웠던 순간들 모두를 경험한 인창중. 그리고 이제 과거 명성을 찾기 위해 비상을 꿈꾸고 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 2가 70번지에 자리한 인창중학교. 6월 9일 경사진 고개 길을 따라 인창중을 찾았다.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취재진은 우재광 코치의 안내를 따라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인창중 옆에 붙은 인창고 건물 7층에 자리하고 있는 체육관. 그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선수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위기는 밝게 훈련은 진지하게
체육관에는 벌써부터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우 코치는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취재진 앞에 선 선수들은 큰 목소리로 인사를 전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 대면을 마친 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재빨리 사진촬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어색함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선수들은 쭈뼛쭈뼛했다. 사진 기자 입에서 “스마일”이라는 말이 연신 쏟아져 나왔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선수들 얼굴에 하나 둘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렇게 단체촬영을 마치고 사진기자는 선수들에게 미션 하나를 내줬다. 학년별 촬영을 할 때는 각자 상의해서 포즈를 정하게 한 것. 이야기가 떨어지자마자 이내 아이들은 분주해졌다. 서로 서로 아이디어를 내며 회의에 들어갔다. 좀 전까지 얼어있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분위기는 한결 활기차졌다. 서로의 포즈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이날 베스트 포즈는 역시 연륜이 넘치는(?) 3학년이 차지했다. 7명 선수들은 단체로 가슴을 내미는 세리머니 포즈를 취했다. 덕분에 현장은 시끌벅적 화기애애해졌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 끝난 사진촬영. 곧이어 훈련이 이어졌다.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웃음기 가득했던 아이들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코치가 던져주는 볼을 세터가 올려주면 선수들은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 체육관에는 “어이 어이”라는 함성 소리만 가득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코치가 네트 한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훈련이 시작됐다. 코치는 인정사정 없이 볼을 선수들에게 날렸다. 그 볼을 받는 건 온전히 선수들 몫. 그 공을 리시브해서 올려줄 수 있다면 다음 훈련이 이어지지만 볼을 받지 못하면 받을 때까지 집중 타깃이 됐다.
코치도 봐주지 않았다. 볼을 길게 보냈다가 짧게 보냈다가 하며 최대한 어렵게 받도록 했다. 아이들 집중력도 높아졌다. 볼을 받기 위해 수십 번 코트에 몸을 날렸다.
그러나 볼을 리시브해 공격까지 이어진다고 해도 코치 지적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우 코치는 틈틈이 아이들에게 지적을 쏟아 냈다.
코치가 강조하는 건 기본기. 기본적인 것을 잘 갖춰야 오랫동안 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특히나 어린 선수들이기에 더욱 강조해 마지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기본적인 것이다. 언더세트나 패스, 연결 등 이런 부분들이 잘 돼야 고등학교, 대학교에 올라가서도 잘할 수 있다. 오랫동안 배구를 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훈련할 때 공격보다는 기본기를 중점적으로 익히도록 노력한다.”
이제는 우승이다!
지난 4월 열린 2016 태백산배 전국남녀 중고배구대회에서 인창중은 3위를 기록했다. 이어 5월에 참가한 제45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는 2회전에서 탈락했다. 우 코치의 아쉬움은 짙었다. “좋은 선수들인데 운도 안 따라줬던 것 같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 다음 번 대회에서는 우승을 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기자가 인창중을 방문한 건 대회를 며칠 남겨두지 않았던 시점. 그래서인지 훈련에 임하는 아이들 모습에서도 결연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우 코치가 꼽는 인창중 강점은 선수들 개인별 기량. “지금 아이들은 개인별로 기량이 뛰어나다. 초등학교 때 우승을 경험해 본 아이들이다. 우리학교 강점이라고 한다면 기량이 특출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이들의 자부심도 곁들여져 있다. 인창중은 한국배구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학교. 그만큼 선배들이 쌓아온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우 코치 말에 따르면 “선배들이 워낙 유명하지 않나? 선배들이 잘 이끌어줘서 아이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운동에 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창중이기에 가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배움’을 눈으로 보고 있다고. 우 코치는 “우리는 중·고등학교가 한 공간에서 같이 운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연습으로도 기량이 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것이 있다. 형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고 배우는 것도 많다. 형들도 애들을 가르쳐주니 그런 면에서 장점이 있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쌓여 이제는 우승을 노리는 인창중이다.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2016 영광배전국 남녀 중고배구대회에서 그 목표를 실현시킬 계획. 우 코치는 당당히 우승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목표는 늘 우승이다. 우리 아이들은 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터무니없이 되지도 않는 아이들에게 우승을 목표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히 잘하는 아이들이다”라며 강한 믿음을 보였다.
다시 써 내려갈 명문교로서의 위상
선수들을 만나기 앞서 잠깐 이상윤 교장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있었다. 1956년 배구부가 창단된 이래 수많은 스타선수들을 배출해 온 인창중. 그 역사와 전통이 말해주듯 이 교장 역시 인창중을 거쳐 갔던 선수들 면면을 되짚어보며 한껏 자부심을 나타냈다. 특히나 후인정 선수와는 담임으로서 인연을 맺었었다고. 이 교장은 후인정과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그 당시 화교인 후인정은 한국말이 서툴러 노래를 할 때면 중국노래를 했단다.
그렇게 잠시 회상에 잠긴 이 교장. 하지만 이내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배구부가 인창중의 자랑이겠다는 질문을 막 던진 후였다. “예전에는 굉장히 자랑이었는데 요즘에는 전과 같은 성적이 나질 않는다. 왜냐하면 옛날과 비교해봤을 때 지방에서도 굉장히 지원을 많이 해주고 육성을 하니 오히려 서울 지역 학교는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라고 토로했다. 이 교장은 배구부 운영에 있어 가장 힘든 점으로 선수 수급을 꼽았다. 실제로 7~8년 전에는 선수가 없어서 대회를 못 나간 적도 있다고 밝혔다.
올해 인창중 배구부 인원은 13명. 그 중 3학년이 절반 이상인 7명. 따라서 이 교장은 금년이 우승의 적기라고 봤다. 그는 솔직히 “지난해에는 3학년이 없었다. 올해 2-3학년들이 아무래도 주축으로 뛰니 다른 학교 3학년들과 차이가 있더라. 1년이라는 시간이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그 때는 ‘우승 한 번 하자’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경험도 중요한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3학년 선수들 숫자도 많고 그 동안 연습해 온 것들이 있어 기대감을 표했다. 은근슬쩍 옆에 앉아있던 우 코치에게 “3학년이 있을 때 우승해야 하는데…”라며 압박(?)을 줬다.
그러나 이내 “선수들만이 아니라 코치진부터 학교, 학부모들까지 다같이 하나로 힘을 모아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한테 말로만 잘하라고 해서 잘 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장은 알고 있었다. 과거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모두의 힘이 합해졌을 때 과거의 위상을 되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재광 코치 인터뷰
인창중을 소개한다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다. 배구부 선배들이 쌓아온 업적과 명성이 많다. 배구하면 인창중, 인창중하면 배구이지 않았나.
지도 철학이 있다면?
아이들이 배구를 싫증나지 않게 흥미를 계속 가지고 할 수 있게 하려는데 쉽지 않다(웃음). 체육관 하면 겁부터 나는 곳이 아니라 자기가 배구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려 한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팀에서 주목할 선수를 꼽는다면?
박예찬 선수가 있다. 올해 2학년인 친구인데 팀 내 키가 가장 크다. 초등학교 때도 에이스로 경기를 뛰었다. 왼손잡이라는 것도 유리하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그리고 주장인 신윤호 선수가 있다. 팀의 살림꾼이다. 뒤에서 수비라든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전위에 서면 공격도 잘한다. 전위, 후위 가리지 않고 잘하는 친구다.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면이 있다면?
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구선수지만 배구만 잘해서는 안 된다. 실력은 고등학교, 대학교가서도 얼마든지 더 늘 수 있다. 듣기 싫은 말이 “운동부니까” 이런 얘기다.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가는 만큼 수업태도라든지 인성을 강조한다.
√인창중 로스터
글/ 정고은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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