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점 강해지는 김연경, 올림픽 해피엔딩 꿈꾼다

정고은 / 기사승인 : 2016-08-04 17:42: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그녀가 답변을 위해 입을 떼자 잔뜩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될 것 같아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목이 쉴 틈이 없어서 쉬어버렸다는 그녀 말에서 주장이란 책임감이 물씬 묻어났다. 4년 전 아쉬움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선수들을 독려하며 일으켜 세우는 그녀, 바로 김연경이다.


IE001471533_STD.jpg


의외-기대-아쉬움으로 물든 런던


때는 지난 2012 런던 올림픽. 당초 여자배구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안긴 여자배구지만 그 이후 메달 소식이 없었던 한국이었다. 이번 역시 관심은 비켜갔다.


미국 중국 브라질 터키 세르비아와 함께 B조에 속한 한국. 첫 경기 상대는 미국이었다. 그리고 7월 29일 대망의 첫 날이 밝았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 내리 두 세트를 내준 한국은 3세트를 잡으며 기사회생했지만 결국 4세트를 따내지 못하며 세트스코어 1-3으로 패배를 떠안았다.


이후 두 번째 경기였던 세르비아 전에서 한국은 고대했던 첫 승을 올렸다. 앞선 경기와 달리 3세트를 내줬지만 마지막 4세트를 잡으며 전적 1승 1패를 만들었다.



그러나 다음 상대는 최강 브라질. 아무도 한국 승리를 예상치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경기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접전 끝에 한국이 1세트를 따냈다. 이어진 2세트도, 그리고 3세트도 한국은 상대보다 먼저 25점에 올라서며 3-0의 완승을 거뒀다. 그것도 브라질을 상대로.



비록 그 이후 풀 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터키와 중국에 패했지만 한국은 예선전에서 2승 3패 승점 8점을 획득하며 미국 중국에 이어 B조 3위를 기록, 8강전 진출을 확정했다.



8강전 한국 상대는 A조 2위를 기록한 이탈리아. 객관적인 전력상 이탈리아가 앞서 있던 것은 분명했다. 당시 한국 세계랭킹은 15위. 반면 이탈리아는 그보다 11계단 위인 4위. 물론 경기를 치르다 보면 변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이 이탈리아를 꺾는 것보다는 이탈리아가 한국을 물리치는 것이 확률상 더 높은 것만은 분명했다.


1세트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탈리아가 25-18로 1세트를 가져갔다. 그러나 2세트부터 분위기는 달라졌다. 기세를 탄 한국은 연달아 두 세트를 따내며 분위기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맞은 4세트. 한국은 자신들에게로 온 흐름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예상을 깨고 4강전에 진출했다.



무려 36년만에 4강 진출.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끝에 여자배구는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하지만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아직 올라갈 곳이 남아있었다.


korea-volleyball.jpg


그리고 8월 9일 대한민국 여자배구가 새 역사를 쓸 날이 찾아왔다. 상대는 예선전 첫 경기에서 우리에게 패배를 안겼던 미국. 과연 미국을 꺾고 결승전에 올라갈 수 있을지 수많은 팬들의 시선이 경기장에 쏠렸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의 바람과 상관없이 미국 승리로 끝났다.



결승 진출 좌절. 김연경은 “경기에 진 다음 눈물이 살짝 나려 했는데 메달을 따고 나서 울겠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랬다. 비록 결승 문턱에서 아쉽게 주저앉았지만 선수들에게는 동메달 기회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메달이 달려있던 3-4위전. 상대는 숙명적 라이벌 일본이었다. 일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예선전에서 승리했다. 이번에도 승리와 함께 동메달을 목에 거리라 여겼다.



첫 세트를 빼앗겼다. 2세트 심기일전했다. 승부는 치열했다. 2번 듀스가 이어진 끝에 세트 주인공이 가려졌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한국은 아니었다. 24-26으로 2세트마저 내주었다. 패색이 짙어가는 가운데 맞은 3세트. 승리 여신은 끝내 한국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선수단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36년 만에 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 그렇기에 아쉬움은 짙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줬던 건 김연경이었다. 올림픽 첫 출전이었던 김연경은 207득점으로 득점 1위에 오른 데 이어 공격성공률 35.57%를 기록하며 베스트 스파이크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서브에서도 7위를 차지했다. MVP는 김연경 몫이었다. 메달권 밖 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


김연경도 그 당시를 회상하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아직도 그 때 수상했던 얘기를 한다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런던 올림픽은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언제 우리가 준결승에 한 번 더 나갈 수 있을까, 올림픽에서 그 기회가 한 번 더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라며 씁쓸해했다.


KimYeonkoung10ofKoreacelebrateapoint.jpg


그리고 4년이 지났다


런던 올림픽의 아쉬움도 이제 4년 전 일이 됐다. 지난 1월 만났던 김연경의 시선은 이미 브라질을 향해 있었다. 그는 “진짜 가고 싶어요.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올림픽에 가고 싶어요”라며 올림픽에 대한 간절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리고 그런 간절함은 현실이 됐다. 지난 5월 열렸던 올림픽 최종 예선전에서 한국은 4승 3패로 올림픽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기쁨도 잠시. 대표팀은 6월 5일 진천선수촌에 입소해 훈련에 돌입했다. 이제 목표는 뚜렷해졌다. 4년 전 아쉬움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것. 이번에는 메달을 손에 거머쥐겠다는 각오다.



분위기는 밝다. 김연경은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마냥 밝아요. 잘해도 웃고 못해도 웃고(웃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에너지를 많이 주기 때문에 좋아요”라고 말했다.


4년 전보다 여유도 생겼다. 일단 기량 면에서 성장했다. 김연경은 “기량 등 여러 부분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라며 24시간을 빗대어 “이번 대회 전까지 낮 12시였다면 대회를 마치면서 오후 1시로 넘어온 것 같아요”라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덧붙여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잘 준비했어요. 부족한 부분도 체력적인 부분도 다 잘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4년 전에는 그랑프리에 출전하면서 조절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참가하지 않아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죠.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이 한결 수월해요”라며 여유로운 이유를 전했다.


IMG_8675.jpg


개인적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4년 전을 생각하면 참 힘들었다 싶다가도 또 언제 흘렀나 싶기도 해요. 가끔 그 시간들을 지나서 지금은 기분 좋게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구나 생각하기도 해요. 이럴 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라며 웃어 보였다. 지난 런던 올림픽 무렵 김연경은 소속팀 문제로 심적 고통을 겪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 대진은 정해졌다. 한국은 일본 전을 시작으로 러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카메룬과 대결을 펼친다. 특히 첫 상대인 일본에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다. 4년 전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던 일본. 그 날 아픔을 잊을 수 없다.


김연경은 “처음에는 걱정했어요. ‘뭐야, 스케줄이 왜 이렇게 나왔어’ 했어요”라며 첫 상대가 일본이라고 했을 때의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생각해보니 이기고 나면 좋은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어차피 넘어야 할 상대니까요. 첫 경기를 이기고 다음 경기 잘 치르는 것이 메달로 가는 확실한 길이잖아요”라며 “일본에 대해 분석하고 대비해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 만큼 자신있어요. 첫 경기를 잘 이기고 그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8강, 4강 그 이상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힘껏 싸워서 승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할게요”라고 힘줘 말했다.


4년 전보다 커진 절실함


예전 한 인터뷰에서 김연경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에게 국가대표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러자 김연경은 “클럽 팀에서 뛰고 있지만 클럽우승보다는 국가대표 금메달, 올림픽 진출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해요. 그만큼 국가대표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이 강해요”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녀가 얼마나 국가대표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찾아온 기회 앞에 간절함 역시 깊어졌다.


“선수생활을 오래 해서 도쿄 올림픽까지 가면 좋겠지만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이 멤버로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 밖에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절실함이 있어요. 그리고 주위에서 이번이 메달을 딸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라고 하는 만큼 간절함도 있고요. 이런 간절함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KimYeonkoung10ofKoreaspikesagainst.jpg


간절함 못지않게 책임감 역시 커졌다. 4년 전과 달리 그녀의 번호 밑에는 선 하나가 더 그어져 있다. 김연경은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고 돌아온 귀국 현장에서 “번호 밑에 라인 하나를 그리고 뛰기 때문에 무거운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어요. 팀을 이끌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 그 때와는 달라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선배보다는 후배들이 더 많아졌다. 후배들을 이끌고 가는 것 역시 김연경 몫. 실제로도 김연경은 선배로서, 주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쉰 목소리가 이를 증명했다. “이러다 이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될 것 같아요. 큰일이야”하며 걱정하면서도 이내 아직 해줄 말이 많이 남아 있었다.


올림픽을 먼저 경험해본 선배로서 김연경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스케줄이 뒤죽박죽인 만큼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해요. 그리고 관중들도 꽉꽉 차고 각 나라 응원 열기도 뜨겁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해요. 그리고 올림픽에 가게 되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예요. 자기도 모르게 공이 튀면 평소에는 잡지 못했던 공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그래서 부상도 주의해야 해요.”


덧붙여 올림픽 무대를 같이 밟게 될 팀 동료로서도 한마디 전했다. “경기를 하면서 잘 될 때도 안 될 때도 있잖아요. 여기 오기까지 힘든 점도 많았는데 그 때를 잊지 않고 열심히 준비했던 것에 보답 받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말 하고 싶어요.”


지난 런던 올림픽을 계기로 여자배구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상황. 선수들 역시 “메달을 따겠다”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김연경에게 속마음을 물어봤다. 주위에서는 다들 메달, 메달하지만 정작 선수들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그러자 김연경은 “런던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저희가 잘해서 국민들 기대를 높여 놓은 건 있어요”라며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4년 전에 4강을 갔는데 지금 목표를 8강으로 잡을 수는 없잖아요. 지난번에 4강을 갔기 때문에 그 위 단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다들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라고 전했다. 이 말을 전하는 김연경의 목소리는 신중하면서도 의지로 가득했다.


Epilogue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아니면 그저 꿈으로만 남을 수도 있는 메달 획득. 김연경에게 시상대에 오르면 어떨지 물었다. 그러자 김연경은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갔다. “벅찰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어떨지는 올라가보지 않아서요. 눈물이 많지 않은 편인데 눈물이 나려나 싶기도 하고(웃음). 어떤 감정이 들까요?”


글/ 정고은 기자
사진/ FIVB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더보기

HOT PHOTO

최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