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대전/이광준 기자] “광인아, 부럽다.”
현대캐피털 미들블로커 신영석이 속삭이듯 말했다. 현대캐피탈이 26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라이벌 삼성화재와 시즌 마지막 V-클래식 매치를 3-1 승리로 장식한 직후 얘기다. 현대캐피탈은 이날 달콤한 승점 3점 획득으로 선두 대한항공을 3점 차이로 바짝 뒤쫓았다.
신영석이 부러운듯 뱉은 말은 경기후 인터뷰 룸에서 나왔다. 이날 현대캐피탈은 무려 두 명의 트리플크라운 주인공을 배출했다. 외국인선수 파다르와 윙스파이커 전광인이었다. 한 팀에서 두 명의 선수가 한 경기 동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건 V-리그 사상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전광인의 달성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번이 본인 통산 첫 트리플크라운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블로킹, 서브가 꼭 하나씩 부족해 달성 실패했던 그였다.
게다가 과정도 극적이었다. 4세트 경기 종료를 앞둔 상황. 전광인은 기록 달성에 블로킹 하나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리고 24-16 매치포인트만 남겨 둔 가운데 전광인이 상대 김나운 공격을 블로킹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기록달성에 성공했다. 전광인이 기록한 블로킹 득점은 팀 승리와 함께 본인의 첫 트리플크라운을 확정하는 점수였다.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에는 기록 주인공 전광인과 부상에서 돌아온 신영석이 함께 입장했다. 인터뷰 선수 요청은 경기 후 현장에 있는 기자들이 대상자를 선정한다. 이날 신영석은 온전치 않은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교체 투입돼 존재감을 크게 뽐내 인터뷰 대상자가 됐다.
시선은 전광인에게 먼저 쏠렸다. 전광인은 “오히려 민망해요. 내심 못 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괜히 민망한데 처음 하는 거라 기분은 좋네요”라며 웃었다.
이어 “4세트 막판에 (문)성민 형이 ‘블로킹 하나 남았다’라고 알려줬는데 ‘안 될 거니까 기대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나왔거든요. 기대 전혀 안 했는데 블로킹 기회가 왔어요. 그래서 제게 남은 온 힘을 다 짜내서 블로킹을 떴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밝은 웃음은 떠날 줄 몰랐다.
그 말을 들은 신영석은 나지막하게 “와, 부럽다”라고 이야기했다. 바로 옆에 앉은 전광인을 툭 치기도 했다.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신영석은 블로킹, 서브에이스 모두 뛰어난 V-리그 최고 미들블로커다. 남들이 서브와 블로킹이 부족해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지 못한 것과 달리 신영석은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후위 공격’을 하지 않는 미들블로커 특성 때문에, 트리플크라운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들블로커는 후위로 갈 경우, 보통 리베로와 자리를 바꾼다. 서브를 넣는 경우 후위 공격에 참여할 수 있지만 대부분 시도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신영석에게 왜 부러운지 물었다. 그는 “아무래도 미들블로커는 기록을 세울 수 없으니까요”라고 답했다.
이어 “미들블로커나 다른 보이지 않는 선수들을 위한 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트리플크라운이 화두로 떠오를 때마다 늘 따라오는 이야기였다. 공격 쪽에 치중된 트리플크라운은 미들블로커, 리베로, 세터와는 거리가 먼 기록. 신영석의 말은 이에 대한 것이었다.
신영석은 “저는 크리스(팀에서는 파다르를 이렇게 부른다)를 ‘대포’라고 자주 표현해요. 그에 반해 저는 ‘소총’이죠. 팀에서 대포들만이 갖고 있는 부담이 분명 있어요. 그래서 그 선수들이 상을 받는 부분은 있죠”라며 “질투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다른 선수들을 위한 상’도 있었으면 해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은 훈훈하게 마무리 지은 신영석이다. 그는 “오히려 기록을 세운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에요. 한 경기서 두 명이 탄 건 처음이잖아요. 그 기록이 우리 팀에서 나와 기쁘고요. 함께 뛰고 있는 선수라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대리만족을 느껴요.”
인터뷰실에 훈훈함이 감돌았다. 이날, 기자의 짧은 판단으로 인해 인터뷰실에서 환히 웃는 두 선수의 사진을 미처 찍지 못했다. 기사를 작성하며 ‘조금만 미리 생각했다면 그 날의 분위기를 담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신영석과 전광인. 인터뷰에 자주 나서는 두 선수답게 여러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덕분에 인터뷰는 밝은 분위기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봄 배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팀다운 건강함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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