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파이크=이정원 기자] 감독이란 직함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2019~2020 V-리그에는 모두 네 명의 감독이 프로감독으로 첫 시즌을 보냈다.
남자부에서 OK저축은행 석진욱 감독,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이 팀 수석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해 첫 시즌을 맞이했다. 여자부에선 IBK기업은행 김우재 감독이 아마무대를 떠나 프로감독으로 데뷔했고, KGC인삼공사 이영택 감독은 시즌 막판 수석코치-감독대행을 거쳐 감독직에 앉았다.
프로 감독으로서 맞은 이들의 첫 번째 시즌 성적은 어땠을까. 그저 아쉬움이 가득했던 감독들도 있고, 내년 시즌 희망을 봤던 이들도 있다.
(기록은 리그 종료 시점 기준)

'레오의 부상이 컸다' OK저축은행 석진욱 감독
# 4위 승점 50점 16승 16패
석진욱 감독은 OK저축은행 창단 때부터 수석코치로 쭉 함께 했다. 그리고 올 시즌 김세진 감독의 뒤를 이어 OK저축은행 2대 감독으로 앉았다.
석진욱 감독은 수석코치 때부터 가르쳤던 선수들과 함께 비시즌에 열린 컵 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정규 시즌을 들어와서도 초반 5연승을 달리며 1라운드를 1위로 마쳤다. 하지만 이후 OK저축은행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1라운드 KB손해보험전에서 부상을 당한 레오의 공백이 컸다.
조재성이 아포짓 자리에서 힘을 내긴 했지만 나머지 국내 선수들의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송명근은 정강이 부상, 이민규도 무릎을 부여잡는 시간이 늘어났고 조국기, 박원빈 등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레오는 부상 당한 후 한 달 여만에 경기를 뛰기도 했지만 석진욱 감독은 초반 레오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석진욱 감독은 전반기 선수들의 부상에 큰 아쉬움을 보였고, 결국 전반기를 4위로 마쳤다.
석진욱 감독은 5라운드 막판부터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했다. 리그가 종료되기 전까지 3연승을 달리며 3위 현대캐피탈과 승점 차를 6점 차까지 좁혔다. 레오와 송명근의 쌍포가 열을 올렸고, 석진욱 감독이 시즌 전부터 준비한 데이터배구가 막판이 되어서야 빛을 발했다.
OK저축은행 관계자는 "구단 관계자 모두 데이터를 접목한 배구에 관심이 많았다. 전력 분석관이 일본에 가서 배워오기도 했다. 이런 부분이 시즌 막판 되어서야 적응된 게 아쉽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그 종료 시점까지 석진욱 감독이 감독으로서 거둔 성적은 16승 16패다. 승률 5할로 지난 시즌(15승17패)보다 소폭 상승했다. 석진욱 감독도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레오의 활약과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웃을 수 있었다. 블로킹 7위에 오른 3년차 손주형과 속공 7위에 오른 2년차 전진선 등 어린 선수들이 시즌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며 내년 시즌을 밝게 했다.
구단 측도 시즌 막판 보여준 석진욱 감독의 리더십과 경기력에 만족감을 표했다. 주전들의 부상만 없다면 내년 시즌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준 석진욱 감독이다.

'리빌딩은 Good, 성적은 Bad'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
#7위 승점 24점 6승 26패
한국전력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장병철 감독도 수석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했다.
장병철 감독은 처음부터 에이스없는 시즌을 맞았다. 시즌 개막 전 에이스 서재덕이 병역을 해결하기위해 팀을 떠났다. 김인혁, 이호건 등 지난 시즌에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있지만 한 시즌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은 타 팀에 비해 부족했다. 장병철 감독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시즌을 운영하겠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했다.
장병철 감독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삼성화재 왕조 시절을 이끈 베테랑 가빈을 뽑았다. 국내 선수들에게 부족한 경험을 가빈에게 맡긴다는 계산이었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역시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가빈은 성치 않은 무릎 상태에도 많은 공격 점유율을 가져갔다. 12월 18일 KB손해보험전에서는 63%의 공격 점유율을 가져가곤 했다. 한국전력은 가빈 외 득점을 풀어줄 해결사가 부족했다. 갑상선암 수술 여파로 인해 최홍석이 시즌 초반 고전했고, 2라운드 중반에는 OK저축은행으로 트레이드됐다. 수비는 흔들릴지라도 공격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며 신인왕 후보까지 떠올랐던 구본승은 시즌 후반 팀을 이탈했다.
그나마 김인혁이 득점(13위), 수비(5위), 서브(5위) 등에서 모두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팀에 힘을 보탠 게 위안이 됐다.
장병철 감독은 5라운드 세 번째 경기부터는 김인혁의 짝으로 이승준을, 세터 이호건을 대신해서는 신인드래프트 1순위 김명관을 주전으로 넣었다. 이 둘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주며 장병철 감독을 기쁘게 했다. 이승준은 두 번의 두 자릿수 득점과 더불어 리그 마지막 세 경기에서는 공격 성공률이 모두 42%가 넘었다. 김명관도 세터로서 공격수들과 완벽한 호흡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큰 키(195cm)에서 나오는 블로킹이 위력적이었다. 장병철 감독도 시즌 막판 인터뷰에서 "두 선수는 장차 팀 기둥이 될 선수들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장병철 감독은 시즌 내내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어린 선수들은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장병철 감독도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임감 있는 배구를 보여줘 고맙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대신 두 시즌 연속 최하위라는 성적을 받아들였다. 한국전력은 남자부 팀 중 유일하게 10승 고지를 밟지 못하면서 6승에 머물렀다. 해결사의 등장, 확실한 미들블로커 라인 구축 등 많은 과제들을 비시즌 해결해야 한다. 장병철 감독은 어떻게 해결할까.

'앞으로가 기대된다' KGC인삼공사 이영택 감독
#4위 승점 36점 13승 13패
이영택 감독은 나머지 세 감독과는 달리 시즌 중반 감독 중책을 떠안았다. 감독으로서 온전히 한 시즌을 치르지 못했다. 수석코치-감독대행으로 경기를 치른 것을 제외하면 정식 감독이 되고 나서는 딱 한 경기만 치렀을 뿐이다. 하지만 감독대행 때부터 보여준 그의 지도력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영택 감독은 지난해 12월 6일 일신상의 이유로 물러난 서남원 前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수석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승격했다. 감독대행을 맡은 후 치른 첫 세 경기에서는 1승 2패로 저조했다.
그러나 후반기 대반등에 성공했다. 그는 KGC인삼공사의 약점으로 지적받던 윙스파이커에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실수를 하더라도 과감한 플레이를 요구했다. 또한 기존 최은지, 지민경 등을 대신해 고민지, 고의정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미들블로커로 정착한 한송이는 박은진과 함께 중앙을 든든하게 책임졌다.
특히 매 경기 디우프의 맹활약을 더한 KGC인삼공사는 시즌 후반 5연승을 내달렸다. 디우프는 5라운드 MVP 수상과 함께 3위 흥국생명과 승점 차를 3점 차까지 줄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영택 감독은 2월 21일 정식 감독 승격을 꿈을 이뤘다. 이후 2월 25일에 가진 감독 데뷔전에서는 승리를 맛봤다. KGC인삼공사는 지난 시즌 최하위에 머물렀다. 올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과는 거리가 먼 3위와 승점 12점 차 4위를 기록했다. 여전히 아쉬움이 큰 성적이지만 시즌 막판 보여준 이영택 감독의 지도력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이영택 감독은 선수들이 실수를 해도 질타보다는 격려로 선수들을 실력을 이끌어 낸다. 선수들도 "감독님께서는 선수들이 실수를 해도 독려를 해주신다"라고 전했다. 이로 인해 KGC인삼공사의 코트 위, 벤치 분위기가 전보다 화기애애해졌다는 평이다.
이영택 감독은 시즌 종료후 "감독으로서 맞는 이번 비시즌은 정말 바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영택 감독은 다가오는 비시즌에 젊은 선수들에게 강훈련을 예고했다. 내년 시즌 이영택 감독의 본격적인 첫 감독 시즌이 기대된다.

'프로와 아마는 확실히 달랐다' IBK기업은행 김우재 감독
#5위 승점 25점 8승 19패
김우재 감독은 2011년부터 작년까지 팀을 이끈 이정철 감독을 대신해 감독직에 앉았다. 김우재 감독은 중앙여고와 강릉여고 등 주로 아마추어에서 감독직을 맡았다. 아마추어에서는 잔뼈가 굵은 감독이었다. 2018년에 강릉여고를 단 8명의 선수만으로 CBS배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김우재 감독의 프로 첫 시즌은 순탄치 않았다.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했으나 이후 패배가 계속됐다. 김우재 감독은 수비,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탄탄한 배구를 주창했다. 이 과정에서 리베로 한지현을 임의탈퇴 해제를 시키고, 윙스파이커 백목화를 리베로로 두는 강수를 뒀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IBK기업은행은 리그 리시브 효율 부문 꼴찌에 머물렀다. 시즌 중반 리베로 옷을 벗은 백목화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장기인 서브로 힘을 보탰다.
특히 올 시즌 김희진의 포지션을 아포짓 스파이커로 고정한다고 예고했으나 김수지의 짝을 찾지 못하자 그를 다시 미들블로커로 기용했다. 많은 팬들의 비판에 부딪히기도 했다. 또한 김희진, 표승주, 김수지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어나이까지 체중 조절 실패로 인해 지난 시즌보다 나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주전 네 명이 성치 않은 몸 상태로 경기를 뛰곤 했다. 어린 선수들도 기용해봤지만 패배는 이어졌다.
IBK기업은행은 2월 21일까지 꼴찌를 탈출하지 못했다. 그러다 2월 22일 한국도로공사전 3-0 승리에 힘입어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위. 창단 후 가장 나쁜 성적이다.
물론 희망도 보았다. 김주향의 공격력을 발견했고, GS칼텍스와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김현정과 박민지의 깜짝 활약은 내년 시즌 한 가닥 빛줄기가 될 만했다. IBK기업은행 구단 역시 "첫 시즌에 이런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라고 받아들였다.
내년 시즌은 김우재 감독에게 진정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물론 김수지-김희진의 FA 계약에 따라 팀 구성은 달라질 수 있으나, 두 선수가 남는다면 김희진은 아포짓으로 김수지의 짝으로는 김현정이 갈 확률이 높다. 과연 김우재 감독은 내년 시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을까.
사진_더스파이크 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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