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마침내 金 목에 건 미국, 동아시아 3국의 엇갈린 희비

서영욱 / 기사승인 : 2021-08-10 00: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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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는 지난 8일 미국 여자배구대표팀의 첫 올림픽 금메달과 함께 막을 내렸다. 여자배구 역시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조별리그에서부터 나오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세 팀이 받아든 사뭇 다른 결과 역시 눈길을 끌었다.  

 


마침내 화룡점정을 찍은 미국
미국 여자배구는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두각을 드러낸 명백한 강팀이었다. 세계선수권 우승(2014년)을 포함해 굵직한 무대에서 모두 정점에 오른 와중에 없는 단 하나가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부터 2016 리우올림픽까지 3회 연속 4강에 올랐으나 금메달 없이 은메달 두 번, 동메달 한 번으로 마무리했다.

‘죽음의 조’로 불린 여자배구 B조에서 미국은 조 1위로 살아남았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0-3으로 패했지만 중국을 3-0으로 꺾고 터키, 이탈리아와 5세트 접전 끝에 승리했다. 조별리그 도중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 조던 톰슨과 주전 세터 조르딘 폴터가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대신 출전한 안드레아 드류스와 마이카 핸콕이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펼쳤다. 특히 드류스는 결승전까지 쭉 선발로 나서며 주포 역할을 다 했다. 톰슨과 드류스는 누가 우위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선수들이다. 두 선수 모두 출전할 때마다 활약했고 대회에 따라 주전이 바뀌기도 했다. 미국의 두꺼운 선수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토너먼트에 들어서는 미국의 정교한 서브 공략과 탄탄한 수비가 빛났다. 미국은 8강 도미니카공화국전부터 4강 세르비아전, 결승전 브라질전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세르비아전은 티야나 보스코비치를 철저히 견제하는 전략(이 와중에도 보스코비치는 19점을 올렸다)이 통했고 브라질과 결승전은 페르난다 가라이를 리시브 단계부터 공략하는 전략이 빛났다. 브라질과 앞선 두 차례 올림픽 결승전(2008 베이징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에서 모두 패한 미국은 도쿄올림픽에서 제대로 갚아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금메달로 오랜 시간 미국 대표팀을 이끈 조던 라슨과 폴루케 아킨라데우는 올림픽에서 금, 은, 동메달을 모두 획득한 선수가 됐다(2012 런던올림픽 은메달, 2016 리우올림픽 동메달,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 베테랑이 중심을 잡아주면서 할레이 워싱턴, 폴터 등 비교적 젊은 피가 잘 어우러지면서 미국은 마침내 여자배구에서도 해피 엔딩을 맞았다.

디펜딩 챔피언 중국의 조기 탈락
남녀배구를 통틀어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충격적인 결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중국 여자배구의 조별리그 탈락이 적지 않게 언급될 것이다. A조와 비교해 다소 조 편성이 까다로운 B조였지만 오히려 중국은 그 B조에서도 수위를 다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2021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도 주팅을 비롯한 주전이 모두 출전한 4~5주차에는 여섯 경기에서 단 한 세트만 내주는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인 중국이었기에 중국 최정예 멤버의 위력을 의심하는 시선은 없었다.



그런 중국의 발목을 잡은 건 부상이었다. 에이스 역할을 해야 했던 주팅의 손목 부상이 악화되면서 기대한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다. 주팅이 부진함과 동시에 딩샤, 얀니 등 다른 주전들도 흔들렸다.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터키에 셧아웃 패배를 당하며 심상치 않은 기류를 풍긴 중국은 미국에 연이어 0-3 패배를 당했고 ROC와 경기에서도 4세트 유리한 고지를 지키지 못한 채 역전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3연패 후 이탈리아 상대로 3-0 승리를 거뒀지만 이미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뒤였다. 그렇게 올림픽 2연패를 노린 중국은 올림픽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1984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최악의 성적과 함께 도쿄올림픽을 마쳤다.

조별리그 탈락 이후 2013년부터 중국 여자배구대표팀을 이끈 랑핑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팅 손목 부상 우려가 꽤 오래전부터 있었음에도(랑핑 감독도 중국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결국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 등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다. 다소 충격적인 결과와 함께 올림픽을 마친 중국이 어떻게 이번 충격에서 벗어날지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김연경과 한국 여자배구가 보여준 투혼
남자배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프랑스가 이변의 중심에 있었다면 여자배구에서는 한국이 돌풍의 중심에 있었다. 비록 최종 결과물에서는 금메달과 4위로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대회 전 예상을 고려하면 여자배구에서 기대치 대비 가장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 팀은 한국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한국은 VNL에서 3승 12패로 15위에 머물렀다. VNL 이후 도쿄올림픽 준비 과정에 김수지, 김희진이 다시 합류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조별리그 통과를 목표로 삼아야 했다. 이마저도 같은 조 도미니카공화국, 일본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에 쉽지 않은 목표였다.

하지만 9년 전 런던올림픽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펼친 김연경을 필두로 한 한국은 당당히 이변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도미니카공화국과 5세트 접전 끝에 승리, 이어진 일본전에서도 5세트 12-14를 뒤집는 대역전승과 함께 8강행을 확정했다. 5년 전 리우올림픽과 비교해 한층 성장한 박정아와 부상을 안고 뛰면서 공격은 다소 아쉬웠지만 높이와 서브로 힘을 보탠 김희진 등 여러 선수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한국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터키전은 놀라움의 정점을 찍은 경기였다. 모두가 터키 우세를 점쳤고 8강 진출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은 터키를 상대로 다시 한번 놀라운 경기를 펼쳤다. 또 한 번 5세트 접전을 펼친 끝에 터키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한 것. 김연경과 한국의 선전은 일본과 브라질 등 외신도 주목할 정도로 놀라운 결과였다. 비록 4강전과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브라질과 세르비아에 전력차를 실감하며 패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4강에 오른 것만으로 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으로 몇 차례 언급했던 김연경은 경기 중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팀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보여주며 이번 올림픽에서도 자신이 왜 슈퍼스타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여기에 김연경과 함께 오랜 시간 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김수지, 김희진, 양효진 등이 보여준 투혼 역시 한국 배구 팬들에게는 충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홈에서 무너진 일본 여자배구
남자배구가 8강에 오른 반면 일본 여자배구는 실망 속에 대회를 마쳤다. 기대치가 더 높은 쪽은 여자배구였고 조 편성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다는 걸 고려하면 조별리그 탈락은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홈에서, 그것도 오랜 기간 합을 맞추며 준비한 2020 도쿄올림픽이었지만 1승 4패, A조 5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2000 시드니올림픽을 제외하면 올림픽에 출전해 일본 여자배구가 8강에 오르지 못한 건 1996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처음이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배구 여자 역사적 패배”라는 제목을 걸기도 했다.



일본은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며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꾸렸다. 날개 공격수 3인방, 코가 사리나와 쿠로고 아이, 이시카와 마유 모두 20대 초중반에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이었고 주전 세터 모미 아키는 대표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시기 자체가 얼마 안 된 젊은 자원이었다. 이 선수들은 일본 특유의 탄탄한 수비와 기본기, 이를 바탕으로 펼치는 빠른 배구로 VNL에서 3위에 오르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결국 기무라 사오리 이후 계속되고 있는 대형 공격수 부재 문제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젊은 선수로 대폭 물갈이되는 가운데 부족해진 경험도 문제가 됐다. 8강 진출 여부가 달린 도미니카공화국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렇다 할 힘을 내지 못한 채 패배했다.

일본은 특유의 강점은 여전했으나 다른 곳에서 오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최근 일본 대표팀에서 2% 아쉬운 포지션으로 꼽힌 세터진도 VNL까지는 모미 아키가 잘 메우는 듯했지만 올림픽에서는 경험 부족 등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카다 쿠미 감독의 지도력 역시 도마 위에 올랐고 일본 여자배구 스타일의 한계 역시 현지에서 지적됐다.

니시다 유지와 같은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남자배구와 달리 여자배구는 기무라 사오리 등을 이어받을 확실한 기수가 없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든 일본 여자배구는 지금의 과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사진=FI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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