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0승째를 합작한 이윤정과 이예림이 각자의 슈퍼 플레이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는 아홉수라는 미신이 존재한다. 이 미신은 9로 끝나는 나이에는 결혼이나 이사를 피한 것에서 유래됐고, 지금은 그 의미가 더욱 확장돼 9로 끝나는 숫자에 무언가가 걸리면 그 다음으로의 전진이 이뤄지지 않는 불운을 ‘아홉수에 걸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스포츠에서도 9승-19승을 거둔 팀이나 선수가 10승-20승을 거두지 못할 때 아홉수에 대한 이야기가 늘 언급된다.
9승을 찍은 뒤 연패를 당한 한국도로공사도 자칫하면 지독한 아홉수에 시달릴 뻔 했지만, 이윤정과 이예림이 팀을 아홉수에서 탈출시켰다. 두 선수는 14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한국도로공사와 GS칼텍스의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경기에서 동반 활약을 펼치며 팀의 시즌 10승(25-16, 20-25, 25-18, 25-22)째를 합작했다. 이예림은 58.82%의 공격 성공률과 62.07%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이윤정은 공격수들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군더더기 없는 경기 운영을 선보였다.
두 선수는 경기 종료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함께 인터뷰실을 찾았다. 먼저 이윤정이 “남은 경기를 부담 없이 치러보자, 그러면서도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이겨보자는 이야기를 선수들과 나눴다. 그렇게 준비해온 것들을 경기에서 잘 보여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는 승리 소감을 전했고, 이어서 이예림도 “연패 기간 동안 내가 코트 위에서 별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이번에는 들어가서 팀의 10승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좋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서 두 선수와 경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이윤정은 경기 도중 김종민 감독과 수많은 대화들을 나눈 것에 대해 “감독님이 주문하시는 것들이 많다. 공격수가 해결을 못해줬을 때도 공격수보다는 나에게 피드백을 하시는 편이다. 공격수들한테는 10% 정도 이야기한다면 나에게는 90%를 이야기하시는 것 같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나는 그게 감독님의 애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능청스러운 웃음을 짓기도 했다.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 정도를 제외하면 공격수들의 활약이 다소 아쉬웠던 지난 경기와 달리, 이번 경기에서는 코트 좌-중-우의 공격수들이 고르게 좋은 활약을 펼쳤다. 공격수들을 선택하고 활용해야 하는 이윤정의 입장에서는 큰 힘이 되는 요소였다. 여기에 한국도로공사의 최대 강점인 탄탄한 리시브까지 제대로 발휘됐다.
이윤정은 “우선 (문)정원 언니와 (임)명옥 언니, (이)예림이가 리시브를 잘 받아줬다. 그러면 세트 플레이를 가져가기가 편하다. 하지만 공격수들이 해결을 못해주면 다시 경기가 어려워지는데, 오늘은 공격수들이 점수를 확실히 만들어주면서 경기를 잘 풀어갈 수 있었다”며 자신을 편하게 해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뒤이어 이예림도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직전 경기였던 정관장전에서도 선발로 나섰지만 2점을 올리는 데 그쳤던 이예림은 이날 11점을 올렸고 리시브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공격 성공률 58.82%는 공격 득점 10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 중 본인의 역대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이예림은 “정관장전 이후 연습 때까지도 내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랬더니 오늘(14일) 오전에 감독님이 ‘공이 오면 도망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부딪혀라’라고 말씀해주셨다. 경기 때 말씀대로 하려고 노력했더니 내 페이스를 되찾을 수 있었다”며 경기력 회복의 공을 김종민 감독에게 돌렸다.
두 선수는 각자가 이날 경기에서 선보인 슈퍼 플레이에 대해서도 복기했다. 먼저 이윤정에게 4세트 17-17에서 김민지의 서브가 문정원의 리시브를 흔든 위기 상황에서 싱글 핸드 패스 페인트로 득점을 올린 장면에 대한 복기를 부탁했다. 그러자 이윤정은 “그런 부분도 연습을 많이 한다. 어제(13일)도 연습했다. 그 순간에 연습한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며 미리 준비한 무기였음을 당당히 밝혔다.
이예림의 복기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그는 3세트 12-10에서 지젤 실바(등록명 실바)의 공격을 깔끔한 타이밍의 블로킹으로 차단하며 3세트의 흐름을 장악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예림은 “그 상황에서 실바 언니랑 눈이 마주쳤는데, 둘다 ‘엥?’하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공을 안고 떨어진 줄 알았는데, 득점이 됐더라”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다. 블로킹 득점은 귀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뿌듯한 표정과 함께 덧붙인 이예림이었다.
이제 이윤정과 이예림은 난적 현대건설을 만날 준비를 한다. 리그 1위 팀이자, 이번 시즌 한국도로공사가 한 번도 꺾지 못한 유일한 상대다. 두 선수는 모두 전의를 불태웠다. 이윤정은 “현대건설을 아직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꼭 이기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며 의지를 드러냈고, 이예림은 “이번 경기처럼 좋은 플레이를 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윤정과 이예림의 맹활약이 한국도로공사를 아홉수의 저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다. 과연 두 선수가 지금의 좋은 페이스를 이어가며 현대건설 상대 시즌 첫 승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결과는 17일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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