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민 감독대행도 인정했을 정도로 내용이 좋지 않은 경기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망은 나타났다.
KB손해보험이 5일 의정부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자부 6라운드 경기에서 현대캐피탈에 세트스코어 0-3(14-25, 22-25, 19-25)으로 완패했다. 직전 경기에서 삼성화재를 꺾고 연패를 끊으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지만, 연승까지 흐름을 이어가는 데 실패했다.
KB손해보험의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답답하기만 한 경기였다. 김학민 감독대행은 경기 전 안드레스 비예나(등록명 비예나)가 뻔한 공격을 하는 상황이 많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속공을 잘 섞어야 함을 강조했지만,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기 초반부터 정민수와 황경민의 리시브가 흔들리면서 제대로 된 세트 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미들블로커들의 전반적인 공격력 자체도 좋지 않았다.
플랜 A가 꼬인 상황에서 KB손해보험은 결국 비예나의 오픈 공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날 비예나의 공격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무려 11개의 범실을 쏟아냈고 공격 효율은 6.25%에 그쳤다. 리시브 불안과 중앙에서의 공격력 부재로 이미 힘든 와중에 비예나를 견제하기 위한 현대캐피탈의 블로킹 스위치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김 대행 역시 경기에 대해 혹평을 남겼다. 그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1세트에는 강한 서브도 아니었는데 초반부터 리시브가 흔들리면서 점수 차가 확 벌어졌다. 너무 무책임한 경기였던 것 같다. 팬 분들을 위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야 했다”며 선수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그러나 이런 경기에서도 희망은 생겨났다. 바로 신인 윤서진의 활약이었다. 2023-2024 V-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KB손해보험에 합류한 윤서진은 지난해 19세 이하 국가대표팀의 세계선수권 동메달 쾌거를 진두지휘한 주장이었다. 당연히 팀에 합류했을 때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그간 출전 기회를 충분히 얻지는 못했다.
이날 경기의 흐름이 현대캐피탈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자, 김 대행은 3세트 2-10에서 홍상혁 대신 윤서진을 코트에 투입했다. 오랜만에 기회를 잡은 윤서진은 맹활약을 펼쳤다. 7-15에서 세팅된 볼과 하이 볼을 연달아 처리하며 연속 득점을 올렸고, 9-16에서는 칼같은 대각 공격으로 이시우의 서브를 한 번에 끊었다.
윤서진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0-16에서는 5번 자리의 구석을 정확히 노려 서브 득점을 터뜨렸고, 15-20에서는 날카로운 반격을 성공시켰다. 상술한 모든 과정을 거쳐 득점을 올릴 때마다 코트 곳곳을 누비며 커다란 세리머니로 분위기를 띄운 것은 덤이었다.
경기 내용에 혹평을 남긴 김 대행 역시 윤서진의 활약에는 합격점을 줬다. 김 대행은 “연습 때보다 오히려 실전에서 더 자기 실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윤서진의 활약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즌이 거의 끝나가고는 있지만, 남은 경기에서라도 신인 선수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한다”며 노력 여하에 따라 윤서진이 얼마든지 더 경기에 나설 수 있음을 전했다.
KB손해보험의 이번 시즌은 최하위로 끝나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나경복과 황택의가 군에서 돌아오는 다음 시즌은 KB손해보험이 진정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점이다. 희망찬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시즌의 막바지에도 조금씩 그 미래를 위한 초석을 마련해야 한다.
윤서진 역시 KB손해보험이 그리는 미래의 일부가 돼 줘야하는 자원이고, 이날 윤서진이 보여준 활약은 그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안겨줬다.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경기 속에서, 윤서진은 KB손해보험의 구성원들과 팬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돼 줬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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