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세계 곳곳에 있는 배구선수들도 공포심을 드러내고 있다.
요지부동이었던 국제배구연맹(FIVB)과 유럽배구연맹(CEV)은 마침내 지난 1일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대상으로 ‘모든 국제 대회 퇴출’이라는 제재를 공식 발표했다.
당장 CEV컵 남자배구대회 결승 대진이 바뀌었다. 제니트 카잔(러시아)은 FIVB와 CEV의 발표 이전에 몬자(이탈리아)와의 준결승 1차전에서 3-1 승리를 거뒀지만, 2차전 몰수패가 결정되면서 결승행이 좌절됐다. 앞서 준결승에 안착한 투르(프랑스)의 회장은 “4강을 통과한다면 러시아와의 결승전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투르에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들블로커 드미트리 테료멘코가 소속돼있다. 이 회장은 “그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다”고도 했다. 결국 결승행 티켓을 거머쥔 투르는 제니트 카잔이 아닌 몬자와 우승컵을 놓고 격돌하게 됐다.
CEV 챔피언스리그에 출격한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페루자(이탈리아)와의 8강에서 몰수패를 당했다. 디나모 모스크바(러시아)와 8강에서 만난 켕지에진코질레(폴란드)도 4강으로 직행했다.
뿐만 아니다. 당초 올해 러시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FIVB 세계선수권 남자배구대회 개최지도 변경될 예정이다. 이에 러시아배구연맹은 “이러한 결정은 직접적인 차별이며 규정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정치에서 벗어나 배구계 선수들의 단결이 필요한데 이 결정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도 나섰다. 해외에 있는 38개 종목의 1909명 러시아 선수들을 고국으로 송환하겠다는 입장이다. 올레그 마티친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해외에 있는 선수들의 건강과 생명 보호를 위해 빠르게 송환해야 한다”고 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제재에도 “IOC의 결정은 부적절하다. 러시아 선수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며 반발했다.
배구계에서는 대표적으로 터키 페네르바체 소속이자, 러시아 국가대표 아리나 페도로프체바와 ‘전직 V-리거’ 안나 라자레바, 이탈리아 발레포글리아 소속으로 최근 무릎 수술을 받은 타티아나 코셸레바 등이 있다.
해외에 있는 러시아 선수들은 물론 러시아에서 뛰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이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와 3년 계약을 맺은 프랑스 국가대표 리베로 제니아 그레베니코프는 러시아로 함께 온 가족을 2일 프랑스로 보냈다. 그레베니코프는 “일단 부모님이 걱정을 하신다. 대사관에서 러시아를 떠나라고 해서 내 아내와 아들을 프랑스로 보냈다. 두바이를 경유하는 긴 여정이다. 2주 안에 모든 항공편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면서 “가족들을 보낼 때 나도 떠나고 싶었지만 난 팀과 3년 계약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 있어야만 한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팀 상황도 전했다. 그는 “팀 동료들인 러시아 선수들도 이 상황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민감한 주제인만큼 이에 대해 많은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상트페테르부르크 은행이나 슈퍼마켓 등도 공황 상태다. 코로나 확산 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시위 규모도 엄청나다”면서 “지금은 시즌보다도 우리의 안전을 더 생각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 외 러시아리그에는 남자배구 미카 크리스텐슨(미국), 티네 우르나우트(슬로베니아), 여자배구 엘리사 바실레바(불가리아)와 사만사 브루시오(멕시코), 말비나 스마르젝(폴란드) 등이 뛰고 있다. 계속되는 불안함과 불확실성 속에 외국인 선수가 없는 러시아리그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해외 이적 시장에서도 러시아를 향한 제재는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 국가대표팀은 물론 클럽팀도 제재를 받고 있고, 루블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상황이다. 선수들의 러시아행이 무산되고 있다. 소문에 따르면 네덜란드 국가대표 아포짓 니미르 압델 아지즈도 모데나(이탈리아)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적이 유력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파장은 배구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배구 곳곳에서 ‘NO WAR’를 외치고 있다.
사진_CEV, 그레베니코프 SNS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