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윤의 성장통이 길어지고 있다. 선수 본인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2018-2019 V-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의 선택을 받은 정지윤은 미들블로커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180cm의 키는 미들블로커로서 대단한 신체조건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파워와 점프력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유망주였다. 실제로 정지윤은 2018-2019 V-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현대건설의 미래로 급부상했다.
그런 정지윤에게 하나의 큰 도전이 찾아왔다. 바로 아웃사이드 히터로의 포지션 변경이었다. 명분은 있었다. 우선 소속팀 현대건설의 선수층 문제를 정지윤의 포지션 변경으로 해결 가능했다. 기존 포지션인 미들블로커에는 양효진이라는 리그 최고의 미들블로커가 건재하고, 1년 후배 이다현도 잠재력을 터뜨리기 시작한 반면 아웃사이드 히터에는 확실한 득점력을 갖춘 선수가 없었다. 정지윤의 펀치력과 과감함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또한 국가대표팀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정지윤의 포지션 변경은 필요했다. 미들블로커에는 이다현을 비롯해 이주아·박은진·정호영 등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즐비한 반면 아웃사이드 히터에는 김연경의 뒤를 이을 확실한 해결사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지윤이 아웃사이드 히터로의 포지션 변경에 도전할 명분은 충분했고, 기존에도 날개 공격수 자리를 몇 차례 소화해본 경험이 있는 정지윤은 포지션 변경을 결정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예상대로 리시브에서 고전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강점인 펀치력과 과감함을 잘 살렸다. 이를 바탕으로 2021 한국배구연맹(KOVO) 컵에서 아웃사이드 히터로서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마다 정지윤의 리시브 불안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또 공격 타법과 코스를 다양하게 가져가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익숙한 자리가 아니다보니 스스로 자신 있어 하는 공격법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고, 상대 수비수와 블로커들의 분석에 고전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일종의 ‘성장통’이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을 자세히 보면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상술했던 코스와 타법의 다양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다인이 레프트로 쏴주는 패스를 정지윤은 대부분 반대각 혹은 대각 공격으로 처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도미니카공화국의 블로커들과 수비수들은 경기를 치르며 정지윤의 이러한 성향을 파악했고, 적절한 위치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V-리그였다면 정지윤의 힘으로 이를 뚫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대회 레벨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2세트 13-19에서의 상황이 대표적이었다. 정지윤은 특유의 파워풀한 공격으로 왼쪽에서 상대 코트 대각 코스를 두 번 연속으로 공략했지만, 도미니카공화국의 리베로 브랜다 카스티요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대로 힘이 실린 좋은 공격이었음에도 수비수가 너무 편하게 자리를 잡은 탓에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결국 상대에게 반격을 허용했다. 경기 내내 이런 식으로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비수들과 블로커들에게 견제를 당한 정지윤은 이날 12%의 공격 효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셧아웃 패배라는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록이다.
다행히 정지윤 스스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정지윤은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들을 빨리 습득해서 결과를 낸다는 게 정말 어렵다. 이것도 다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씩씩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또 정지윤은 공격이 막힌다고 주눅 들지 않았다. 계속 강타를 때렸고, 득점을 올린 뒤에는 코트를 누비며 환하게 웃었다. 그가 인고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미소였다.
정지윤의 성장통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어쩌면 결국 포지션 변경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정지윤은 성장통을 끝까지 견뎌내고 정상급 아웃사이드 히터로 성장할 수 있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지윤은 성장통을 견딜 수 있는 강력한 무기, ‘건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_수원/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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