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그러나 다른 팀들이 진보할 때 선택한 안정은 결국 도태가 됐다.
도드람 2023-2024 V-리그가 막을 내렸다. 남자부와 여자부의 엔딩이 비슷했다. 여자부는 1일 현대건설이 흥국생명을 꺾으며, 남자부는 2일 대한항공이 OK금융그룹을 꺾으며 각각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환희의 웃음을 지으며, 누군가는 아쉬움의 눈물을 감추며 시즌이 끝났다.
시즌이 모두 끝난 지금은 각 팀이 이번 시즌 어떤 결과를 맞이했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전체적인 복기를 해보는 결산 시간을 가져보기 좋은 시기다. <더스파이크>가 열 번째로 결산해볼 팀은 남자부 봄배구행 막차에 몸을 싣지 못한 팀, 한국전력이다.
*한국전력: 정규리그 5위(18승 18패, 승점 53)
‘승수 +1, 승점 변동 없음, 순위 –1’ 안정을 선택한 결과는 뼈아팠다
한국전력의 2022-23시즌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외국인 선수로 아웃사이드 히터 타이스 덜 호스트(등록명 타이스)를 선택했고, 임성진-서재덕과 삼각 편대를 꾸렸다. 우리카드와의 2:2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하승우를 주전 세터로 낙점했고, 신영석을 미들블로커 한 자리에 고정한 뒤 남은 한 자리에 조근호와 박찬웅을 경쟁시켰다. 리베로는 장지원과 이지석이 번갈아 맡았다. 원 포인트 서버로는 신인 구교혁이 나섰다.
위와 같은 선수 구성으로 구단 역사상 첫 플레이오프 승리까지 거두며 최종 3위로 시즌을 마친 한국전력은 새 시즌을 맞아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권영민 감독과도, 타이스와도 재계약을 체결했다. 아시아쿼터로 영입한 리베로 료헤이 이가(등록명 료헤이)와 전역 후 팀에 합류한 김동영‧이시몬을 제외하면 사실상 상기된 지난 시즌의 선수 구성과 활용이 그대로 반복됐다. 지난 시즌의 전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료헤이‧김동영‧이시몬이 플러스 전력이 돼준다면 어느 정도 계산이 서는 좋은 전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타 팀의 발전과 변화가 문제였다. 봄배구에 오르지 못했던 OK금융그룹은 오기노 마사지 감독 부임 후 범실을 줄이고 짜임새를 끌어올리는 ‘짠물 배구’를 확고한 팀 컬러로 갖췄고, 한국전력에 패하며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던 우리카드는 완전히 새로워진 선수 구성으로 대폭 향상된 경기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최하위였던 삼성화재까지도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등록명 요스바니)를 앞세워 무시할 수 없는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2022-23시즌 한국전력보다 전력이 열세였던 팀들이 모두 진보하자 안정을 택한 한국전력의 선택이 마치 일종의 도태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즌 후반부에는 두 시즌 째 유지된 큰 틀의 전술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대팀들의 맞춤 전술까지 더해지자 한국전력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가장 중요했던 6라운드가 시작하자마자 4연패를 당했고, 결국 봄배구 진출에 실패했다. 승수는 지난 시즌(17승)보다 1승 많았지만, 승점은 그대로(53점)였고, 순위는 한 단계 떨어진 5위였다. 씁쓸한 결과였다.
위력이 떨어진 타이스와 안정감이 떨어진 하승우, 불협화음을 내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한국전력의 아쉬웠던 지점을 짚어보자면, 역시나 타이스와 하승우의 경기력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 시즌이었다. 타이스의 경우 오픈공격에서의 파괴력이 2022-23시즌에 비해 크게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2022-23시즌 성공률 48.16%로 오픈공격 전체 1위를 차지했던 타이스는 2023-24시즌에 38.78%의 오픈공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9위에 그쳤다. 거의 10% 가깝게 떨어진 수치다.
그런가하면 하승우는 시즌 내내 롤러코스터 같은 경기력을 보였다. 잘 풀리는 날에는 자신의 개인기로 상대 블로커들을 녹여버리며 경기를 장악했지만, 안 되는 날에는 패스가 종잡을 수 없이 튀어나갔다. 세트 1위로 시즌을 마쳤음에도 하승우의 시즌 전반 활약이 그에 걸맞게 좋았다고 체감되지 않는 이유 역시 기복이다.
이처럼 나란히 이어진 두 선수의 부진은 시즌 내내 불협화음을 만들었다. 오픈공격이 풀리지 않으면서 예민해진 타이스와 기복에 시달린 하승우가 상대방의 패스와 결정력에 만족하지 못하며 언성을 높이거나 표정을 구기는 상황들이 잦았다. 당연히 팀적으로 좋지 않은 요소였고, 이번 시즌 한국전력이 아쉽게 시즌을 마치게 된 주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커다랗고 소중한 수확이었던 임성진
그럼에도 한국전력은 2023-24시즌에 한 가지 확실한 수확을 챙겼다. 바로 임성진이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주전 자리에서 풀 시즌을 치른 임성진은 정규리그 전 경기에 나서 432점을 터뜨렸고, 공격 성공률 48.22%(11위)‧리시브 효율 39.42%(13위)‧세트 당 서브 득점 0.233개(6위)를 기록하며 준수한 시즌을 치렀다.
수비 기록은 더욱 돋보인다. 세트 당 1.977개의 디그를 잡아내며 리그 5위에 올랐고, 디그와 리시브를 종합한 기록인 수비종합에서는 세트 당 5.039개로 팀 동료 료헤이에 이어 리그 2위에 등극했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활약한 임성진은 2라운드 MVP로 선정되며 개인통산 첫 라운드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성진은 아직도 발전할 여지가 많은 선수다. 성실함과 의지를 갖춘 선수인 만큼 얼마든지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설 수가 있다. 임성진의 발전은 결국 한국전력이 이번 시즌의 아쉬움을 씻는 다음 시즌을 만들기 위한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 동시에 팀적으로는 사실상 대거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그 변화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생산적으로 골몰하는 비시즌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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