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왕조 시대를 지탱했던 곽승석이 자신의 장기 목표를 전했다.
대한항공의 도드람 2023-2024 V-리그는 결국 새 역사를 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챔피언결정전에서 OK금융그룹을 시리즈 전적 3-0으로 완파하고 4연속 통합우승이라는 최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이미 지난 3연속 통합우승 때부터 뿌리를 내리던 대한항공 왕조가 더욱 울창하게 그 가지를 뻗는 시즌이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왕조의 날개에는 늘 곽승석이 있었다. 그는 대한항공의 주장도, 주 공격수도 아니다. 그러나 빠지면 그 누구보다도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선수다. 6번 자리에서 팔을 이리저리 뻗으며 깔끔한 디그를 성공시키는 곽승석의 수비는 대한항공을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반격 능력을 갖춘 팀으로 이끄는 데 크게 공헌한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날카로운 파이프와 노련한 쳐내기 공격 역시 그의 전매특허다.
이처럼 다양한 무기로 그간 대한항공의 4연속 통합우승을 이끌어 온 베테랑 곽승석을 <더스파이크>가 11일 용인에 위치한 대한항공 훈련장에서 만났다. 곽승석은 “우승 이후 팀 회식도 몇 차례 참가했고, 시상식에도 다녀왔다. 그 시간들 말고는 육아에 전념했다(웃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며 우승 이후의 근황을 먼저 소개했다.
이후 곽승석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먼저 대화를 나눈 주제는 단연 4연속 통합우승이었다. “2022-23시즌이 끝나자마자 모두의 관심사가 4연속 통합우승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과거를 돌아본 곽승석은 “사실 그로 인해 여러 압박감도 느꼈다. 어떻게든 우리를 막으려는 다른 팀이 주는 압박감은 물론이고, 무조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팀 내부에서의 압박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목표를 결국 달성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값진 결과다”라며 힘들었던 시간들과 보람찼던 결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곽승석을 괴롭혔던 건 심리적 압박감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동료의 부상 역시 큰 걸림돌이었다. 그는 먼저 시즌 초중반 최대의 악재였던 정지석의 부상에 대해 “(정)지석이한테 대체 언제 오냐고 계속 물어봤다. 안 아픈데 쉬고 싶어서 아픈 척 하는 거냐고도 말했다(웃음). 솔직히 빨리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팀은 뎁스가 탄탄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마크 에스페호(등록명 에스페호)부터 (정)한용이,(이)준이까지 다 제몫을 해준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곽승석은 정지석이 없는 동안 자신과 가장 많은 시간 호흡을 맞춘 정한용에 대해 “한용이는 정말 잘해줬다. 개막전 때부터 엄청 떨렸을 텐데도 잘해주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 너무 고맙다.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어떻게든 한용이를 살리면서 가야 우리의 승률을 올릴 수 있었다. 당연히 지석이랑 하는 게 더 편하긴 하지만 누구와 함께 뛰더라도 이길 수 있도록 한용이와 많은 준비를 했고, 그 과정을 잘 즐긴 것 같다”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지석과 함께 뛰든, 정한용과 함께 뛰든 리시브와 수비에서는 늘 곽승석이 중심을 잡았다. 이는 비단 이번 시즌뿐만 아니라 대한항공 왕조 시대 내내 이어진 그의 역할이었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이 수비와 리시브에 있어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는지 묻자 곽승석은 “리시브에서는 선수와 선수 사이 공간에 서브 득점을 내주지 않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수비 같은 경우는 감독님이 자율권을 주시는 편이다.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신다. 다만 팀적인 수비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막상 맘대로 할 수는 없는 부분이 있다. 자율권이 있지만 자유롭게 할 수는 없는, 실제로 그러면 욕먹을 것 같은(웃음). 그런 느낌이다”라며 유쾌한 설명을 들려줬다.
이후 곽승석은 자신의 부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전반적인 기록이 지난 시즌에 비해 소폭 하락한 것에 대해 “역시 부상 탓이 컸다. 회복 기간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부상 여파 때문에 퍼포먼스가 내 뜻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교체도 다른 시즌에 비해 많이 당했다”며 부상을 원인으로 짚었다. 곽승석은 그러면서도 “하지만 그뿐이다. 나만의 생각일지는 몰라도, 부상을 제외한 내 순수 기량 자체가 문제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전한 자신의 기량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직접 내비친 자신감으로 보나, 코트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로 보나 곽승석은 여전히 대한항공의 핵심 선수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 당시 31세였던 곽승석은 어느덧 37세가 됐다. 누구의 시간도 영원할 수는 없고, 이제는 곽승석 역시 조금씩 선수 생활의 끝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박수 칠 때 떠나야 할지, 혹은 끝까지 버텨야 하는 걸지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한다. 이제는 아내와도 이런 부분에 대해 조금씩 대화를 나눈다”며 선수 생활의 막바지에 대해 고민을 이어가고 있음을 솔직히 전했다.
그러나 곽승석은 어느 정도 이 고민에 대해 내심 결론을 내린 듯 보였다. 그는 “나는 팀에서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끝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웃음). 물론 내가 퍼포먼스 유지를 잘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러고 싶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항상 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내 배구 인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런 선수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아쉬운 부분에서는 더 성장하고, 잘하는 부분은 계속 유지하겠다”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끝까지 드높일 것임을 밝혔다.
이처럼 왕조의 날개 곽승석은 존재의 의미로 자신의 커리어 후반부를 채워나가길 꿈꾼다. 그렇기에 다가올 자신의 15번째 시즌을 열정적으로 준비한다. 그는 그 과정을 함께 해줄 팬들에게 “새로운 역사가 써진 이 순간을 팬 여러분들이 즐겨주셨으면 한다. 저와 선수들은 다음 시즌 준비를 잘하겠다.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경기장에서 뵙겠다”며 15번째 초대장을 전했다.
사진_용인/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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