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을 만나는 바야르사이한의 각오는 남달랐다. 대한항공이 얼마나 강한 팀인지 잘 알고 있기에 더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바레인 마나마에 있는 한 호텔, 이곳에는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남자 클럽 배구선수권에 출전하는 팀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및 관계자들, 그리고 대회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함께 머물고 있다. 호텔과 인근의 편의점, 카페 등에서는 한국어를 종종 들을 수 있는데, 대부분은 V-리그를 대표해 대회에 출전한 대한항공의 구성원들이 내는 목소리다.
그러나 이곳에는 대한항공의 구성원이 아님에도 기자들을 만나면 한국어로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몽골의 바양홍고르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한 바야르사이한(인하대 졸업 예정/OK금융그룹)이다. 16일(이하 현지 시간) 마지막 조별 예선 경기에서 다이아몬드 푸드(태국)를 꺾고 극적인 상위 라운드 진출에 성공한 바양홍고르와 바야르사이한은 17일 오전 훈련을 진행한 뒤 오후에는 휴식을 취했다. 그날 밤, 바야르사이한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바야르사이한에게 가장 먼저 팀 소개를 부탁했다. 그는 “우리 팀은 여름에 있을 챌린저컵과 아시안게임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을 함께 가지고 이 대회에 나왔다. 국가대표팀의 예행연습 같은 느낌으로도 볼 수 있다. 기존의 바양홍고르 멤버에 5~6명 정도가 추가로 합류했고, 저도 그 중 한 명이다”라고 대회 참가 목적과 구성원을 소개했다.
바야르사이한의 설명을 듣고 나니 에디(성균관대/삼성화재)는 왜 이번 대회에 오지 못했는지도 궁금했다. 그는 “원래는 몽골배구협회에서 에디한테도 연락을 했다. 아시아쿼터 드래프트가 끝나고 같이 바레인에 가는 걸로 학교와도 얘기는 했었는데, 갑자기 아시아쿼터가 시작되기 1~2주 쯤 전에 협회에서 ‘국내에 날개 공격수들이 많아서, 그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보고 싶다’며 에디를 데려가지 않고 저만 데려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에디는 오지 못했다. 같이 못 와서 아쉽다. 에디도 많이 아쉬워했다”며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아쉽게도 에디는 오지 못했지만, 바야르사이한에게는 이번 대회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야르사이한은 “사실 몽골배구협회에서 2019년부터 저를 불렀는데, 한국 일정 때문에 계속 못 가다가 이번에 처음 온 거다. 그 동안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그 동안 배운 것들을 몽골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다. 또 한국으로 귀화를 하게 된다면, 어쩌면 이번이 몽골을 위해 뛰는 마지막 대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바양홍고르와 바야르사이한의 조별 예선은 어땠을까. 바야르사이한과 함께 조별 예선 세 경기를 돌아봤다. 바야르사이한은 “첫 경기를 예멘 팀(카이필)과 치렀는데, 우리 팀이 연습 기간이 길지 않았고 서로 소통도 잘 되지 않아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진 것 같다. 그날 2-3으로 졌는데, 에디가 보고 싶었다(웃음). 만약 에디가 있었으면 3-0으로 이길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예멘 클럽 팀한테 사실상 몽골의 국가대표인 우리가 졌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고 첫 경기에 대한 소감을 먼저 전했다.
계속해서 바야르사이한은 “산토리 선버즈(일본)전은 워낙 상대가 강팀이니까 승리를 확신하지는 못했다. 대신 마지막 태국 팀(다이아몬드 푸드)과의 경기를 무조건 이기기 위해, 그 경기를 준비하는 연습이라는 느낌으로 경기에 임했다. 태국 팀과의 경기에는 정말 목숨을 걸고 덤볐다. 이 경기를 이기면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면서 몽골 배구 역사에 우리를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우승한 것처럼 다들 기뻐했다”고 이후의 두 경기 역시 돌아봤다.
산토리와는 직접 붙어봤고,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바야르사이한은 과연 18일 펼쳐질 두 팀의 맞대결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잠시 고민하던 바야르사이한은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5세트를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치열할 것이다. 두 팀 다 플레이도 빠르고, 실력 좋은 선수들이 버티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후 그는 “하지만 그래도 대한항공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한항공은 V-리그의 최강 팀이고, 호흡을 맞춘 기간도 오래됐다. 제 생각에 드미트리 무셜스키(러시아, MB/OP)만 잘 막을 수 있다면, 대한항공 선수들에게 다른 선수들은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다. 펭 쉬쿤(중국, MB)도 대한항공 미들블로커들이라면 충분히 상대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대한항공을 응원하겠다(웃음)”며 조심스럽게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대한항공과 붙는 것은 산토리만이 아니다. 바양홍고르 역시 19일 대한항공과 맞붙는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저한테 계속 대한항공에 대해 물어본다(웃음). ‘너 대한항공 플레이 잘 알지, 맞춰서 연습할 수 있게 도와줘, 스파이크 서버 누구누구야, 서브 코스는 어디야’ 하면서 계속 물어본다”며 고충(?)을 토로한 바야르사이한은 “정말 잘해서, 바야르사이한이라는 존재를 대한항공에 각인시키고 싶다. 워낙 강한 팀이니 이긴다는 확신은 없지만, 우리 팀원들을 믿고 태국전처럼 목숨을 걸고 임한다면 작은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싶다”고 겸손한 각오를 내놨다.
특히 대한항공에는 바야르사이한이 걸어온 길을 먼저 지나간 선배 진지위가 있다. 홍콩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까지 출전했던 진지위는 2019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고, 신인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대한항공에 합류해 현재까지 뛰고 있다. 진지위와는 SNS 등을 통해 서로에게 응원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밝힌 바야르사이한은 인터뷰를 마치며 진지위에게 당찬 메시지를 남겼다.
“지위 형, 저는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형도 최선을 다해주세요! 우리 재밌는 경기 해봐요!”
사진_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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