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결과에서도, 무셜스키의 독설에서도 정지석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후배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어 했다.
대한항공이 최종 7위로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남자 클럽 배구선수권을 마쳤다. 총 7경기를 치른 대한항공의 성적은 4승 3패다. 우승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한 대회였지만,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경기를 마친 현지 시간 21일 <더스파이크>와 만난 정지석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가장 먼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운을 뗀 정지석은 “첫 클럽 단위 국제대회였다 보니, 모두가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경기력, 마음가짐 등 모든 부분에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우리가 100% 전력으로 임했다면, 결승까지는 무조건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아쉽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험을 쌓는 것이 목표였으니 괜찮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더 철저히 준비해서 나서야 한다고 본다”고 대회 전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정지석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느끼고 배웠는지 물었다. 정지석은 먼저 경기 내적인 부분을 언급했다. “무리다 싶은 상황에서 득점에 목메기보다는, 차분하게 다음 기회를 노리는 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밝힌 정지석은 “그 대신 3단 처리를 상대가 받기 어렵게 하는 요령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머리로는 이게 중요하다는 걸 원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여기에 와보니 이런 부분을 우리보다 더 잘한 팀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어서 정지석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느낀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지석은 “후배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잘하는 배구, 좋은 배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서 그들이 발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유)광우 형에게 ‘제가 선수들을 리드해보겠다. 형은 경기 운영에만 집중하셔도 되니 저에게 맡겨 주시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막상 그 역할을 하려니 정말 쉽지 않았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정지석은 “팀을 오롯이 홀로 이끄는 역할을 한 번 쯤 해보는 게 선수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런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내봤던 것 같다.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힘줘 말했다. 덧붙여 정지석은 “저뿐만 아니라 후배들도 이번 대회에서 벽에 부딪히는 것 같은 경험을 다 해봤을 거다. 저는 그게 성장을 알리는 직전 단계의 신호라고 본다. 후배들에게도 소중한 시간이었을 거다”라며 듬직한 선배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지석의 후배 사랑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제가 처음 대한항공에 들어왔을 때 곽승석, 신영수, 김학민이라는 최고의 선수들과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큰 동력이었다. 그 때 형들은 제가 잘 안 풀릴 때 절대로 경쟁에서 유리해졌다고 속으로 내심 안도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를 더 도와주려고 했고 이끌어주려고 했다”고 자신의 신인 시절을 돌아봤다.
한편 화제가 됐던 드미트리 무셜스키(러시아, 산토리 선버즈)의 독설에 대해 정지석은 “무셜스키가 적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닐 거다. 그냥 냉정하게 말한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래서 다음 대회에서는 더 미친 듯이 임해볼 생각이다”라며 그 발언을 동기부여로 받아들일 것임을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로는 “기술, 승부욕, 피지컬 등 모든 것이 빼어났다”며 사베르 카제미(이란, 쿠웨이트 스포르팅 클럽)를 고르기도 했다.
무셜스키, 카제미 같은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해외 진출에 대한 열망이 커지지는 않았을지도 궁금했다. 정지석은 “생각은 있다. 다만 지금은 우리 팀의 목표인 4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것이 먼저다. 그 이후에는 지금 연봉의 반 이하로 받아도 좋으니 해외 진출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고졸 얼리 드래프티 시대의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던 선수다. 만약 해외 진출의 포문도 제가 열 수 있다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겠지만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정지석에게 팬들을 위한 인사를 부탁했다. “대한항공 선수이기 이전에 한국 대표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대회에 임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러나 결과가 썩 좋지 않아서 너무 죄송하다”고 진심어린 사과를 먼저 전한 정지석은 “그래도 선수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한국에서 응원해주신 분들, 또 현지에서 응원해주신 교민 분들까지 모두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다음에는 꼭 저희를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도록 최고의 성적을 내겠다”고 감사 인사와 함께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정지석의 인터뷰에서는 배구에 대한 열정과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이 온전히 느껴졌다. 과연 정지석과 그의 후배들이 이번 바레인에서의 경험을 얼마나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다음 시즌 대한항공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졌다.
사진_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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