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V리그 JT 마블러스가 한국에서의 전지 훈련을 마치고 지난 22일 돌아갔다.
16일 오후 귀국해 22일 오전 9시 출국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자매결연을 한 흥국생명과 3경기, 현대건설과 1경기를 치렀다. JT는 2009년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경험을 해보라”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전 회장의 배려로 결정된 김연경의 첫 번째 해외 진출 팀이었다.
김연경은 2009~2010시즌 JT의 25연승을 이끌며 일본 배구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코앞에서 놓쳤던 우승은 기어코 다음 시즌에 선물했다. JT의 사상 첫 우승이었다. JT가 그를 두고두고 고마워하는 이유다. 당시의 활약 덕분에 김연경은 국제 배구 시장에 이름을 각인했다. 터키 페네르바체 입단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의 성공 신화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다 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됐던 좋은 인연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이번 합동 훈련이 성사된 배경이다.
JT는 2021~2022시즌 히사미츠 스프링스에 이어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한국 방문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일본 대표팀으로 출전 중인 세터(모미 아키), 아웃사이더 히터(하야시 고토나), 태국 대표팀의 미들 블로커(탓다오 눅짱) 등 3명이 빠졌다. 총 12명으로 조촐했다. 17일 흥국생명과의 연습경기 첫날 미들 블로커가 다쳤지만, 5일 동안 11명의 선수가 4경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이들은 쉽게 지치지 않았다. 이틀 연속 경기 때는 점프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발이 천근만근인 우리 선수들과 비교됐다. 힘든 일정에도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그들만의 체력 훈련 방법이 궁금했다.
흥국생명 선수들과 비슷하거나 더 작은 신장의 JT 선수들은 몸에 탄력이 넘쳤다. 군살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먹는 것부터 달랐다. 밥을 잘 먹었다. 식사량은 우리 선수보다 훨씬 많았다. 힘든 훈련을 소화하려면 그 만큼의 열량 보충이 필요했을 것이다. 대신 군것질을 하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은 반대다. 구단이 주는 영양가 높고 균형 잡힌 식사를 거르고 야식이나 간식을 더 좋아한다. 체중 조절에 애를 먹는 이유다. 어느 구단은 “선수들 간식비만 1년에 8000만원”이라고 털어놓았다. 프로리그 17년 역사의 V리그와 달리 일본은 실업 배구와 프로리그의 중간 단계다. 하지만 더 프로처럼 보이는 곳은 일본이다. 구단과 선수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두 나라 배구와 체력의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차이는 경기장에서 다양하게 드러났다. JT는 일본 배구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줬다. 경기를 대하는 자세부터 달랐다. 웜업존에서 경기를 집중력 있게 지켜보는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가 준비된 루틴을 했다. 멍을 때리며 노는 선수는 없었다. 일본은 시즌 때 경기장에 14명만 데리고 다닌다. 무려 18명이나 이끌고 다니지만, 이들 모두가 코트에 투입되지 않고 다소 산만해 보이는 V리그의 웜업존과 크게 비교됐다.
이들은 연습경기도 전력을 다했다. 패배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자세였다. 흥국생명과의 2번째 연습경기 때 처음으로 세트를 내줬는데 경기 뒤 JT의 분위기는 얼음으로 변했다. 훈련 때도 마찬가지로 항상 최선을 다했다. 일반 직장인인 일본 선수들은 훈련이 없을 때는 회사 업무는 물론이고 다양한 교육도 받는다. 연봉은 3000~4000만 원 정도다. V리그는 2022~2023시즌 여자부 평균연봉이 1억3400만 원이다. 받는 액수는 큰 차이가 나지만 실력은 정반대처럼 보이고 일본이 더 프로페셔널처럼 느껴진다.
일본도 프로선수 계약이 가능하지만, 몇몇 특출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드물다. 구단이 원해도 프로 계약을 거부하는 선수들이 많다. 일본이 프로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들은 선수 생활이 끝나면 평범한 직장 생활로 돌아간다. 배구를 더 하고 싶다면 다른 리그, 다른 팀으로 이적한다. 아예 배구를 떠나서 다른 일에 종사하는 선수들도 있다. 모든 선수가 원한다고 직장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평소의 회사 생활에서도 높은 평점을 받아야 배구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직장인이 될 기회가 생긴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배구 선수로 더 높은 무대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있는 선수는 낮은 몸값에도 불구하고 해외 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외국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V리그는 현실에 안주하며 해외 진출 꿈조차 꾸지 않는 선수들이 태반이다. 리그의 풍요로움이 발전을 막는 아이러니다.
21일 경기에서 보여준 흥국생명과 JT마블러스의 플레이 스타일도 극과 극이었다. 흥국생명은 다소 거칠지만, 힘과 높이로 공격에 주안점을 줬다. 일본은 상대보다 먼저 코트에 공을 떨어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실했다. 이를 위해 안정된 리시브와 코트의 모든 선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수비 조직력으로 대응했다. 플레이는 빠르고 정교했다. 공격도 다부졌다. 키는 작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패스의 정점에서 스파이크를 때렸다. 공을 다루는 기술도 한 수위였다.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는 다양한 공격과 수비 능력, 연결의 부드러움은 정상권 팀다웠다. JT의 플레이는 일본 배구가 국제 무대에서 왜 통하는지는 한눈에 설명했다.
특히 차이가 나는 부분은 점프와 체공력이었다. 우리 선수들과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힘과 스피드가 달랐다. 공중에 훨씬 오래 머무르면서 패스의 정점에서 때리는 기술은 감탄을 자아냈다. 두 팀의 경기를 지켜본 V리그 심판들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우리 선수들은 바닥에서 뭔가가 잡아당기듯 몸이 무거운데 일본 선수들은 훨씬 가볍게 더 높이 뛴다”고 했다. 비슷한 동양인의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탄력성의 차이가 나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김연경과 함께 JT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다니구치 마사미 제너럴 매니저는 “선수를 선발할 때부터 체공 능력이 좋은 선수를 뽑고 훈련으로 능력이 향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흥국생명 권순찬 감독은 JT 코칭스태프와의 식사 자리에서 체공력 강화를 위한 JT만의 훈련 노하우가 궁금했는지 넌지시 물어봤다. 그들은 구체적인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다니구치 제너럴매니저는 21일 인터뷰에서 JT가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팀 플레이를 완성했는지 설명했다. “JT의 경우 감독이 먼저 정해지면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의 배구를 위한 플레이에 맞는 선수를 해마다 선발해가며 완성도를 높인다”고 했다. JT는 요시하라 도모코 감독과 7년째 함께 하고 있다. 텐야마 요시아키 코치는 9년째 근무 중이다. 한번 결정을 내리면 쉽게 바꾸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 계약을 맺으면 반드시 책임지는 일본 V리그 구단들의 자세는, 단기간에 성과를 요구하는 우리와는 많이 비교됐다.
이들은 외국인 선수도 철저히 팀 플레이 위주로 선발했다. 그 선수의 빼어난 기량보다는 기존 선수들과의 융화, 플레이의 조화를 먼저 생각했다. 외국인 선수 한 명의 기량에 모든 것을 걸듯 도박하는 우리의 배구와는 출발이 다른 또 다른 이유는 선수층에 있다. 일본은 토종 선수층이 탄탄했다. 덕분에 원하는 배구가 가능했다. 1부리그 14개 팀과 2부리그 11개 팀에서 원하는 선수를 해마다 충분히 찾을 정도로 일본 배구는 선수들이 풍부했다. 주전과 비주전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 500개를 훌쩍 넘는 여자 고교 팀에서 원하는 선수를 마음껏 고를 수 있는 풍부한 인적 환경이야말로 일본 여자배구의 부러운 경쟁력인데 일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얘기와 함께 무기력한 우리 여자 대표팀에서 최근 벌어진 일들은 다음 기회에 하겠다.
사진제공 흥국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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