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대표팀이 2023 VNL(발리볼내이션스리그)에서 안겨줬던 실망을 뒤로 하고 이제는 남자대표팀이 나선다. 7월 8일부터 대만에서 벌어지는 AVC(아시아 배구연맹) 챌린저를 시작으로 2023년 국제대회 도전에 나선다. 올해 최대 4개 대회를 소화할 수 있다. 2000년 시드니대회를 끝으로 남자대표팀은 올림픽과 인연이 없다. VNL도 2018년 이후 출전권이 사라졌다. 점점 낮아진 국제대회 경쟁력 때문인지 남자배구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2019년 5월 남자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임도헌 감독은 어디에서 해결책을 찾을까. 현역 시절 그를 상징하는 별명 ‘임꺽정’처럼 우직하게 배구 한길만을 파고 있는 감독에게 2023년 남자대표팀의 국제대회 마스터플랜과 남자배구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5월 1일 대표팀 소집 이후 어떻게 준비를 해왔는가.
”매주 훈련 강도를 다양하게 조절해가고 있다. 처음에는 수요일 오후마다 쉬게 해줬지만, 6월 중순에는 훈련 강도를 최대로 올려 선수들이 극한 상황에서 얼마나 잘 버티는지 확인했다. 대부분 선수가 20대 중 초반이어서 그런지 회복 속도가 빠르다. 몇 명은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잘 버텼다. 젊은 선수들은 그런 능력이 있다. 역시 가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천 선수촌에서의 하루 훈련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새벽 6시에 기상, 에어로빅과 산책을 한다. 훈련은 오전, 오후 두 차례다. 밤에는 자율 훈련이다.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분야별 기술 훈련 시간이다. 효율성을 높이려고 웨이트 트레이닝은 2개 조로 나눴다. 기술 훈련도 아웃사이드 히터와 리베로, 미들 블로커와 세터로 나눠서 각자에게 필요한 훈련을 한다. 오후에는 모두 모여서 시스템 훈련을 한다. 밤에는 원하는 선수만 참가해서 서브나 리시브 등 개인 훈련을 한다. 젊은 선수들끼리 재미있게 한다. 실전 경험을 위해 6월 20일, 23일 한국전력, 30일 OK금융그룹과 연습경기를 계획하고 있다.” (진천 국가대표팀 선수촌은 육상 스타 출신의 장재근 선수촌장으로 바뀐 이후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새벽 에어로빅에 참석한다. 밤 12시 이후로는 인터넷도 끊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설인 만큼 하루 24시간 내내 대표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해달라는 뜻일 것이다. 여자대표팀은 진천 선수촌에서 지낼 때 새벽 훈련과 관련해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지만 잘 무마했다. 앞으로 새벽 훈련에 불참하는 종목은 선수촌 입촌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지금 대표팀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17명의 선수가 훈련하고 있다. 스태프는 9명이다. 선수촌에서 입촌을 허용해주는 인원은 선수 14명과 스태프 3명뿐이다. 나머지 인원은 배구협회가 비용을 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지원을 해줬는데 감사할 뿐이다. V-리그 구단에도 감사한 마음이다. 모든 팀에서 흔쾌히 선수를 잘 보내줬다. 오랜 합숙을 허용해준 배려에 감사한다. 대표팀에 온 선수가 성장해서 소속 팀에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표선수의 성장은 감독의 책임이다. 지금 젊은 선수들은 남들이 쉴 때 훈련을 하는 것이기에 분명 성과는 나올 것이라 믿는다.”
●젊어진 2023년 임도헌 호의 키워드는.
-대표팀이 눈에 띄게 젊어졌다. 이들이 각자 맡은 역할은.
“이전까지 대표팀의 터줏대감이던 한선수 신영석 최민호 곽승석 전광인이 빠졌다. 아포짓은 임동혁과 허수봉이 경쟁한다. 허수봉은 공격이 깔끔하고 임동혁은 파워가 있다. 아웃사이드 히터는 정지석 나경복 임성진 황경민 김지한이다. 나경복은 군 소집훈련을 마치고 늦게 합류해 서서히 몸을 끌어올리고 있다. 세터는 황택의와 김명관이다. 이제 황택의가 대표팀의 중심이 될 때가 됐다. 미들 블로커는 박준혁 이상현 김준우 김민재 조재영이 있다. 김규민은 허리가 좋지 못해 빠졌다. 조재영은 리딩 능력이, 김준우와 김민재는 공격이 좋다. 각자의 장점을 살리려고 한다. 리베로는 박경민과 오재성이다. 대표팀에 온 뒤로 선수들과 면담을 했는데, 오재성이 처음에는 말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굉장히 재미있는 선수라는 것을 알았다. 박경민에게는 여오현처럼 뒤에서 동료들에게 파이팅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한선수가 없는 대표팀에서 세터가 어떤 역량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황택의가 팀에서 에이스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동안 이런 기회를 원했을 텐데 올해가 택의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에게는 온 기회를 잡았으면 한다. 김명관에게는 되도록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요한 순간에만 포인트를 찍어주고 있다. 선수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주면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다만 명관이에게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네가 정 안 되는 것은 버릴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고만 했다.”
-기술적으로 이번 합숙 훈련에서 발전시키려는 부분은.
“지금 대표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비 이후 공격 성공이다. 사이드아웃은 다른 나라와 견줘서 뒤지지 않는데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V-리그에서 잘하는 팀이 40% 후반대다. 일본은 60%를 넘는다. 이 차이가 한국과 일본 배구의 격차일 것이다. 대표팀은 이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서브 효율도 50% 이상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줘야 이해가 쉽다. 선수들이 보고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서브리시브 훈련에는 기계를 사용한다. 스파이크 서브를 시속 120~125km의 속도에 맞췄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이 스피드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받아내고 있다. 플로터 서브는 시속 60~70km를 기준으로 훈련한다.”
-대표팀의 올해 국제대회 출발은 AVC 챌린저 대회다.
“7월 6일 타이페이로 떠난다. 지난해보다는 훈련 과정이나 선수들의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괜찮을 듯하다. 6월 중순에 선수들을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렸는데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잘 따라왔다. 일부러 휴식 없이 월~토요일에 오전 오후 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수, 토요일에는 오후 볼 훈련 뒤 유산소 훈련까지 했다. 선수들은 로잉과 러닝머신 사이클을 탔는데 ‘목에서 피 냄새가 나올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고 털어놓았다. 젊은 선수들이라 그런지 잘 견뎌냈다.”
-AVC 챌린저 대회는 정확한 경기방식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독특한 방식이다. 일단 참가팀이 A~F까지 6개 조로 나뉘어 조별 예선전을 치른다. 각 조의 상위 1, 2위 팀이 12강 리그에 올라간다. 여기서 새롭게 조를 나누는데, 1,2조는 1위 팀이 4강전에 직행하고 나머지 조는 8강전을 거치는 방식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승해서 FIVB 챌린저컵에 출전해야 한다. 만일 대만에서 우승하면 귀국해서 이틀 정도 쉰 뒤 카타르로 떠난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마지막까지 인도의 출전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AVC가 구체적인 일정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예선 리그에서 같은 조인데 박기원 감독이 이끄는 태국과 첫 경기를 한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메달과 2024년 VNL 출전을 목표로 하는 남자대표팀.
-올해 남자대표팀의 국제경기 일정은 어떻게 되나.
“AVC 챌린저 대회와 FIVB 챌린저컵이 7월에 열린다. 2024년도 VNL 출전권이 걸렸다. 8월 18~26일에는 이란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있다. 9월 19~26일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다. 2024파리올림픽 최종예선전 때문에 아시안게임 일정보다 앞당겨서 한다. 주최국 중국이 아시안게임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란도 베스트 멤버가 참가할 것이라고 들었다. 우리 대표팀도 아시안게임에 포커스를 맞추고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때까지는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이들이 잘하면 아시안게임까지 이어갈 것이다.”
-짧은 기간에 국제대회 일정이 상당히 빡빡한데.
“우선 젊은 선수들로 AVC 챌린저 대회와 FIVB 챌린저컵에서 가능성을 확인해보려고 한다. 서로 경쟁도 시켜가면서 처음 대표팀에 온 선수들에게는 동기부여도 해가면서 능력을 보고 싶다. 이들이 자리를 제대로 잡으면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까지 계속 기용할 생각이다. 다만 대표선수들의 체력안배를 위해 어느 정도는 로테이션을 돌려야 할 듯하다.”
-요즘 남자배구의 인기가 여자보다 많이 떨어졌다. 결국 국제대회의 성적 때문이 아닌지.
“그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을 선수들 모두가 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배구 하기 좋은 환경인데 조금만 더 국제대회 경쟁력을 높이면 모두가 좋아질 것’이라고, 젊은 선수들에게 말한다. 여자배구는 올림픽 4강에 가면서 돈보다 귀한 명예를 얻었다. 우리도 노력하면 길이 있다. 지금 남자배구는 젊은 선수들에게서 희망이 보인다. 대표선수도 그렇지만 대학이나 고등학교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 이들이 잘 자라서 지금의 대표선수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 충분히 국제대회에서 희망이 있다.”
●임도헌 감독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남자배구가 가야 할 길.
-최근 몇 년간 우리 남자배구는 이란과 일본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고전했다. 도쿄올림픽 출전권도 거의 손에 넣었다가 이란에게 빼앗겼다. 우리 남자배구가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
“한국배구만이 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야 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피지컬이 좋고 이란보다는 떨어진다. 그 사이에서 두 나라의 장점을 찾아서 살려야 한다. 일본은 수비와 리시브를 이란은 공격의 파워와 블로킹이 좋다. 이 장점을 결합해 한국적인 배구를 해야 한다. 결국은 수비와 서브리시브를 강화하고 블로킹을 보완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세계적인 흐름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는 우리 선수들의 몸에 맞춰서 더 잘하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 일본은 수비와 리시브 훈련에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또 대표팀이 구성되면 5~6년은 함께 한다. 그 오랜 시간 속에서 조직력이 다져진다. 우리도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게 되고 각자가 몸의 기억을 쌓아가면서 하나의 팀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은 대표팀을 30명 정도 뽑아서 계속 경쟁을 시키고 1, 2진으로 나눠 많은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한다.”
-대표팀 감독 4년째다. 그동안 일본과 유럽 등 다른 나라의 배구를 많이 보고 연구했을 텐데.
“일본과 유럽 팀의 경기와 훈련을 현장에서 자주 지켜봤다. 일본 제이텍트 스팅스의 훈련이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 감독이 지도하는데 그 팀에는 일본 국가대표 3명이 있다. 훈련 과정은 우리와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일본은 예전의 배구 훈련에서 조금 더 세련되게 하고 훈련을 세분화시켜서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차이였다. 코트를 2면 사용해서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제한된 시간에서 선수들이 더 훈련에 집중하게 하는 식이다.”
-지금 우리의 배구가 세계배구의 흐름에서 한창 뒤진 것처럼 생각하는 팬들이 많은데.
“이탈리아 배구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결국 잘하는 배구는 같다. 우리가 한창 좋았던 1990년대 배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세계최강인 이탈리아 배구는 아시아 스타일의 배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높이와 파워 중심의 배구를 했는데 방향을 바꿨고 성공했다. 우리도 과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전부터 ‘레트로 배구’라는 말을 했다. 우리 배구가 세계무대에서 통했던 때를 되돌아보면 된다. 그 당시 선수들은 힘든 훈련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요즘 선수들은 그것을 못 받아들이는 차이는 있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오직 배구에만 전력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야 할 곳에 가 있었다. 지금은 젊은 선수들이 그 곳에 갈 수 있게 지도자들이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젊은 선수들을 위해 훈련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선수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힘든 훈련보다 더 중요하다. 결국은 동기부여다. 배구가 다른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른 것이다.”
●왜 국제 대회 경험과 해외 리그 진출인가.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 선수들의 해외 리그 진출이 중요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가면 좋겠지만 우리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보다 조건이 나쁜 곳으로 어느 선수가 가려고 할 것인가. 강제로 보낼 수도 없다. 사실 해외 리그에 나가면 선수는 얻는 것이 많다. 선수 스스로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고,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기술을 익힐 것이다. 그것이 발전이고 성장이다. 국내 리그에만 있으면 발전은 없다. 내가 지금 리그에서 가장 잘하는데 더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노력을 왜 하겠는가. 대한민국의 배구 환경이 좋은 이상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해외 리그에 나갈 일은 없다고 본다. 일본은 해외 리그에 진출하면 스폰서가 따로 붙는다. 선수들에게 많은 지원과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니까 도전한다.”
-그렇다고 지금 V-리그의 풍요로운 환경을 일부러 척박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대표팀이 필요하다. 선수들에게 모자란 해외리그 진출의 경험을 다양한 국제대회 참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줘야 한다. 다양한 등급의 대표팀이 국제대회를 하면서 선수들 스스로 자신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느껴야 한다. 해외리그에 가면 선수들이 우리와는 다른 배구를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다. 생각이 바뀌면서 ‘이런 배구도 있네’라고 알 것이고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 통하는 장신의 공격수를 예로 들어보자. 이 선수가 높은 타점에서 공격을 쉽게 성공시키면 더 이상의 기술 습득은 없다. 반면 자신보다 높은 블로킹에 걸리면 살기 위해 다른 기술을 찾게 된다. 이때 지도자들이 선수에게 방법을 제시해야 효과가 크다. 훈련보다는 경기를 통해 선수가 자각해야 한다.”
-국제 대회를 많이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선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 달라.
“일단은 시야가 넓어진다. 또 내가 지금 무엇을 할 것인지 올바른 상황 판단을 빨리 할 수 있게 된다. 국제 대회에서는 상대 블로커의 높이에 따라 공격의 길이도 달라진다. 상대 블로커에 걸리면 다른 방법을 스스로 찾게 된다. 처음 대표팀에 가서 국제 경기를 했을 때는 오직 내 앞만 보였다. 경기의 중압감에 사로잡혀 마치 경주마 같았다. 그러다가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 팀과 상대 팀의 움직임이 보였다. 공격 때 상대 블로커의 손이 보인다고 하던데 내 경험으로는 거짓말이다. 짧은 순간에 공을 보고 때리는데 임팩트 순간에 블로킹을 볼 시간이 없다. 다만 경험으로 상대의 수비 위치를 미리 파악해서 어디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때릴 뿐이다.”
사진 더스파이크, 대한배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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