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VB(국제배구연맹)가 최근 중요한 결정 사항을 연달아 발표했다.
향후 국제 배구계에서 활동의 근간이 될 국제 대회 시간표를 조정했고 대표 선수의 국적 변경 등에서 새로운 규정을 마련했다. 모두 우리 대표팀의 운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미리 알아둬서 손해 볼 일은 없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6월 23일 행정위원회가 발표한 2024 파리올림픽 이후 국제 배구의 변경된 시간표다. 2025년부터 2028년까지 FIVB가 주관할 대회와 2028 LA올림픽 출전권 배분 방식을 확정했다. 새로운 결정에 따라 4년 주기의 세계선수권대회가 2년 주기로 줄어들고, 출전 팀은 남녀 각각 24개 팀에서 32개 팀으로 대폭 늘어났다.
새로운 시간표에 따라 2022년 이탈리아(남자)와 세르비아(여자)에서 각각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이하 세계선수권)는 2025년부터 2년 주기로 변경된다. FIVB는 각 대륙 연맹이 주관하는 선수권대회(이하 대륙선수권)도 2년 주기로 세계선수권 다음 해에 열도록 조정했다. 새 시간표에 따르면 세계선수권이 2025년부터 홀수 해에, 대륙선수권은 2026년부터 짝수 해에 열린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주관하는 올림픽은 변함없이 4년 주기다. IOC는 2028년과 2032년 올림픽 개최지로 LA와 호주의 브리즈번을 선정했다. 이 때문에 4년마다 한 번씩은 올림픽과 대륙선수권이 겹친다. VNL(발리볼내이션스리그)은 해마다 열린다. 이번에 변경된 새로운 시간표를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대표팀의 효과적인 운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FIVB는 세계선수권 출전권 배분 방식도 바꿨다. 기존에는 세계랭킹 24위까지였지만, 32개국으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길을 만들었다. 일단 개최국과 전 대회 우승팀에게는 자동 출전권을 준다. 각 대륙선수권 상위 3개 팀에게도 출전권이 있다. AVC(아시아배구연맹), CEV(유럽배구연합), CSV(남아메리카배구연합), CAVB(아프리카배구연합), NORCECA(북중앙 아메리카&카리브해 배구연합)가 주관하는 대륙선수권 상위 3개 팀, 총 15개 팀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 나머지 16장은 FIVB 세계랭킹 순서다.
이번 FIVB의 결정으로 우리 남녀 대표팀의 세계선수권 출전 가능성은 이전보다 커졌다. 특히 2014년 폴란드 대회를 마지막으로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남자 대표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여자는 2022년 폴란드&네덜란드 대회에서 1승 4패로 예선 탈락했다. 달라진 세계선수권은 32개 팀이 8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르고 각 조의 상위 2개 팀이 16강전에 진출한다. 16강전 이후부터는 지면 탈락하는 녹아웃 방식이다.
여자대표팀의 2024 파리올림픽 최종예선전이 걱정되는 가운데 우리 팬들은 2028 LA올림픽 출전권 분배방식에도 관심이 크다. FIVB의 변경 방식으로 우리는 더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올림픽 본선 출전은 12개 팀으로 변함없이 좁은 문이다. 일단 개최국(미국)은 자동 출전권이 보장된다. 나머지 11장 가운데 5장은 2026년에 열리는 대륙선수권 우승팀에게 돌아간다. 이밖에 3장은 2027년 세계선수권 상위 3개 팀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3장은 FIVB 세계랭킹 순이다.
결론적으로 2028 LA올림픽에 출전하려면 2026년 AVC 선수권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하거나 상위 3위 안에 든 뒤 2027년 세계선수권에서 최소 동메달을 따내야 한다. 그 방법마저 실패하면 세계랭킹을 10위권 안에 올려놓고 다른 국가의 상황을 지켜보는 길뿐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지만, 그래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이 가장 현실적이다. 앞으로 대한배구협회가 대표팀을 구성할 때 어느 시점에서 대표선수들의 기량이 무르익고, 팀워크를 언제 정점에 이르게 할 것인지 판단의 배경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 배구계도 새로운 국제대회 시간표에 발맞춰 마스터플랜을 새로 짜야 한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국제배구의 일정에 맞춰 대표팀 구성은 언제 어떻게 할 것이며 V-리그의 일정은 어떤 조정이 필요한지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이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눠야 한다. 무엇보다 점점 줄어드는 배구 유망주를 키워낼 혁신적인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변수도 생겼다. 최근 FIVB의 일방통행에 AVC의 반발이 거세다.
FIVB는 지난해부터 자신들이 주관하는 대회의 운영권을 Vollybal World(이하 VW)에게 모두 넘겼다. VW가 기존의 관례를 깨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여기저기서 반발하고 있다. 각 대륙 연맹과의 협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7월 2일 수원에서 막을 내린 VNL도 중계방송사와 경기장 선정, 스폰서십 결정 등 중요한 사안을 모두 VW가 독단으로 결정했다.
대한배구협회는 수원 VNL을 위해 유치금 10만 달러(약 1억3000만원) 포함 무려 12억 원을 지원했다. 협회는 조금이라도 여자대표팀이 편안한 환경에서 경기하고 좋은 성적을 올려주기를 바랐지만, 투자 대비 실익은 거의 없었다. 중계권료를 포함해 수입은 모두 VW가 가져갔다. 우리는 그야말로 재주만 부른 곰 꼴이었다. 중요한 결정 사항에 끼어들 여지조차 없었다. 지난해부터 VNL 중계방송은 스포츠전문 채널이 아닌 OTT(쿠팡플레이)로 넘어갔다. VW는 더 많은 중계권료를 주는 곳을 선택하겠지만, 팬들이 VNL을 접할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VW는 현장 취재와 뉴스용 영상도 권리를 사야만 가능하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태국 배구협회는 이런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자국에서 열리는 VNL 3주 차 때 VW에 전혀 협조해주지 않았다. VW는 더 많은 돈을 주고 경기장을 섭외했고 큰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2주 차 홍콩 대회 도중 경기장이 정전되거나 브라질 경기 때는 경기장에 빗물이 떨어지고 1주 차 일본 나고야 대회 때는 시도 때도 없는 경기 중단으로 문제가 되는 등 올해 VNL이 운영 미숙을 놓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것도, 최근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FIVB가 세계선수권대회를 2년 주기로 줄이고 참가국 숫자를 늘린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주관하는 대회의 규모를 키우고 자주 해서 돈을 더 벌겠다는 속셈이다. FIVB의 랭킹포인트 시스템도 따지고 보면 자신들이 주관하는 대회에 더 자주 나와서 점수를 챙겨가라는 뜻이다. 이 같은 FIVB의 일방적인 통행은 결국 각국 프로 리그와의 충돌로 이어진다.
최근 이와 관련해 상징적인 모습이 나왔다. FIVB가 주관하는 세계클럽챔피언십에 유럽의 명문 두 팀이 불참을 선언했다. 올해 CEV챔피언스리그에서 1,2위를 차지한 폴란드 리그의 두 팀은 12월 인도에서 벌어지는 세계클럽챔피언십 출전을 거절했다. 이들은 자국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 12월에 머나먼 인도까지 가서 경기를 치르기 싫다고 했다. 그동안 선수들도 FIVB의 살인적인 국제대회 일정에 반발해왔다. FIVB가 탐욕을 멈추지 않는 한 불만은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FIVB는 새로운 일정 변경이 선수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혹사 논란을 의식한 듯 월드컵과 올림픽 및 대륙간 예선전 등은 폐지한다고 생색을 냈다.
FIVB를 향한 가장 큰 반발은 그동안 돈줄 역할을 했던 AVC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AVC 산하의 일본과 중국 태국은 그동안 다양한 대회를 유치하면서 많은 돈을 FIVB에 안겼다. 일본과 중국은 9~10월에 열리는 올림픽 남녀 최종예선전을 유치하면서 대회당 300만 달러(약 39억원)를 냈다. 올해 VNL은 여자의 경우 한국 일본 중국 태국이, 남자는 일본 필리핀이 대회를 개최했다. 아시아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FIVB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또 있다. FIVB의 유일한 글로벌 파트너는 중국 생수 회사 간텐이다. 일본의 미즈노와 미카사는 공식 공급자다. 지금 FIVB가 미카사 공을 쓰는 것은 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자배구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영향력이 큰 태국이 FIVB와 등을 돌리려는 가운데 대한배구협회는 지금 상황에서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해서 실리를 찾아야 할까.
사진 FIVB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