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예방주사를 맞았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2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아리아케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A조 조별예선 세르비아와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0-3(18-25, 17-25, 15-25)으로 완패했다.
세르비아전을 끝으로 조별예선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 브라질, 세르비아에 이어 3승 2패 A조 3위로 예선 일정을 마무리했다. 김연경이 팀 내 최다인 9점을 기록했고, 세르비아는 티아나 보스코비치가 13점을 올렸다.
한국은 최소 3위는 확정된 상황. A조 1위와 B조 4위, B조 1위와 A조 4위가 준결승행을 두고 격돌하지만 조 2, 3위의 경우는 다르다. 2, 3위는 다른 조 3, 2위와 맞붙는 것이 아닌 추첨을 통해 상대를 결정한다. 추첨 결과에 따라 조 3위끼리도 8강에서 격돌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르비아전은 어쩌면 결과보다 내용이 중요한 경기였다. 세르비아전을 중계한 KBS 한유미 해설위원도 "경기를 하면서 8강을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오늘 경기를 통해 많이 연습을 하고 가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전 경기들까지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김연경의 치중되는 공격이었다. 상대가 김연경을 집중 견제하는 상황 속에서도 김연경은 에이스의 힘을 보여줬다. 다른 공격 옵션들까지 터진다면 김연경은 물론이고 한국의 경기도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격수들의 컨디션도 중요하지만 세터 염혜선의 컨디션 및 패스도 중요하다.
염혜선도 8강을 앞두고 이러한 상황을 의식한 건지. 양효진과 김수지 등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이전 4경기에서 10점에 그치던 김수지는 1세트에만 4점을 올렸다. 김연경만 바라보지 않고 다른 공격수들도 활용하려는 염혜선의 노력은 긍정적이었다. 뒤이어 들어온 안혜진도 많은 옵션을 활용하려 했다.
또한 이날 백업 선수들이 많은 경험을 쌓았다. 2세트 중반, 점수 차가 벌어지자 라바리니 감독은 박은진, 안혜진, 정지윤 등 백업 선수들을 투입했다. 상대의 신장이 높고, 점수 차가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 투입되어 긴장감이 많았을 테지만 각자 자기 몫을 하며 힘을 줬다. 3세트에는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을 비롯해 이소영도 출전했다. 이전까지는 한 세트를 온전히 치러볼 상황이 마땅치 않았지만, 승부가 기울었고 결과가 중요하지 않았기에 그동안 출전 시간이 적은 선수들은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김연경, 양효진 등 주전 선수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8강을 앞두고 보완해야 될 점도 많이 보였다. 하나는 김희진의 기복이다. 김희진은 케냐전 20점, 도미니카공화국전 16점을 기록했지만 브라질전 5점, 일본전 8점에 그쳤다. 필요한 순간에는 확실하게 한방을 책임져줬지만, 힘없는 공격이 나오는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이날 역시 세르비아의 높이에 고전하며 5점에 그쳤다. 한방을 책임져 줘야 하는 아포짓 포지션에서 뛰는 김희진이다. 8강에서 김희진이 막힌다면 경기를 풀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한 리시브의 안정감 구축도 필요하다. 이날 한국은 세르비아에 무려 13개의 서브에이스를 허용했다(한국 4개). 비안카 부사와 마야 오그네노비치에게만 각 네 개의 서브 득점을 내줬다. 상대의 낮고 빠른 플로터 서브 및 강서브에 혼란을 겪었다. 신장 차이로 인해 상대의 고공 공격은 막지 못할 수 있다. 큰 신장을 가진 유럽 선수들의 공격을 블로킹하는 건 어렵다. 이날도 10개의 공격이 상대에게 막혔다(한국 3개). 블로킹이 힘든 상황에서 리시브마저 크게 흔들린다면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 또한 상대 세터들의 패스 페인트도 견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르비아전에서 좋은 예방주사를 맞았다. 세르비아전 포함 5경기를 치르면서 우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우리의 장점은 무엇인지 라바리니 감독은 파악했을 것이다. 4일 8강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우리 선수들은 컨디션을 회복하고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미 한국 선수들은 한일전 승리로 국민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줬다. 하지만 이들은 더 많은 감동을 줄 준비가 되었다. 8강은 오는 4일에 펼쳐진다. 상대는 오늘(2일) 저녁에 정해진다.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있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미국, 이탈리아, 터키. 단 한 팀도 만만한 팀은 없다. 지난 2021 VNL에서도 패했다. 하지만 배구공은 둥글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세르비아전 완패라는 쓴 보약을 제대로 마신 한국이 8강에서 선전해 주길 모든 국민들이 바라고 있다.
사진_FI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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