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끝장인 토너먼트. 이번 대회의 결과가 대한민국 남자 배구의 향후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소위 ‘단두대 매치’에서 꼭 필요한 것은 3연승이다.
우리 남자 배구가 2024파리올림픽을 향한 멀고도 험한 대장정에 나선다. 28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개막하는 2022 챌린저컵이 그 첫걸음이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2023VNL(발리볼내이션스리그) 출전권을 따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2018VNL에서 1승14패(승점6)를 기록해 최하위인 16위로 2019년 출전권을 빼앗겼던 우리 대표팀이 다시 배구 엘리트 국가에 복귀하기 위해 도전에 나선다. 3년 전에는 배구협회의 예산이 부족하고 출전해도 우승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챌린저컵 출전을 포기했지만 이젠 그럴 상황이 아니다. 계속 갈라파고스의 섬처럼 국제 무대에서 고립된 채로 지낼 수 없다. 세계 랭킹 포인트가 적으면 올림픽 예선전 출전조차 불가능하다는 새로운 현실도 받아들였다. 팬들도 국제 무대의 성과를 원한다. 여자 배구가 2020도쿄올림픽 4강의 성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던 것도 지켜봤다. 그래서 대한배구협회는 열심히 노력해 대회 개최권을 따냈다.
그동안 벌어졌던 2번의 챌린저컵은 모두 개최국이 우승하고 VNL에 복귀했다. 3년 만에 재개되는 대회에서 우리도 그 전철을 밟고 싶지만, 반드시 개최국이 유리하지만은 않다. 현재 세계랭킹 32위(랭킹포인트 127점)인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8개 팀 가운데 가장 세계 랭킹이 낮은 팀과 첫 경기를 벌인다. 개최국에게 주는 유일한 혜택이다. 이밖에 참가 국가는 아시아(카타르), 남미(칠레), 북중미(쿠바), 아프리카(튀니지) 대륙을 대표하는 4개 팀과 유럽 대표 2개 팀(2021, 2022골드컵 우승팀 튀르키예, 체코), 올해 VNL 탈락 팀(호주)이다. 공교롭게도 호주(38위)가 세계 랭킹이 가장 낮아 우리의 8강 토너먼트의 첫 상대다.
28일 오후 7시에 벌어지는 호주전에서 이기면 튀르키예(17위)-카타르(21위) 승자와 30일 오후 3시30분에 4강전을 벌인다. 대망의 결승전은 31일 오후 3시30분에 열린다. JTBC 골프&스포츠가 중계한다. 우리가 차려 놓은 잔칫상을 망치지 않으려면 8강, 4강전을 우선 통과해야 하지만 단판 대결의 특성 상 누구도 승패를 예상하기 어렵다. 그날 선수들의 컨디션과 경기의 운, 경기 도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에서 흐름을 잡는 팀이 유리할 것이다. 많은 팬이 현장에서 우리 대표팀을 응원해줄수록 우리 선수들이 힘을 내고 유리해질 것은 확실하다.
임도헌 감독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이 걸린 챌린저컵을 앞두고 26일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현재 그는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선수들과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이제 중요한 대회가 코앞이다. 현재 우리 선수들의 몸 상태는.
“모두 정상 컨디션이다. 아픈 선수도 없다. 부상 중이던 임동혁 선수도 2주 전에 복귀해 지금은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컨디션도 좋다. 처음 구상했던 베스트 멤버로 경기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첫 경기가 가장 부담스러울 텐데. 호주의 전력은 어떻게 보나.
“VNL에서는 젊은 선수들을 많이 출전시켰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어떻게 나올지 아직은 모른다. 27일 예정된 테크니컬 미팅 때 제출하는 상대 팀의 최종 엔트리를 봐야 한다.”
-전력분석 파트에서 호주의 장단점을 예리하게 분석했을텐데.
“VNL에서 호주는 레프트와 중앙을 이용한 속공을 많이 했다. 호주 주전 세터의 신장이 202cm인데 높은 키에서 속공을 많이 구사했다. 센터가 장신이어서 우리 블로킹으로 막기 쉽지 않다. 세터에서 나가는 주요 공격 루트는 호주의 3번 레프트(포피 로렌조·205cm)에게 향하는데 공격이 위력적이다. VNL에서도 경기 평균 12점을 기록했다. 대신 서브 리시브는 약점이 있어서 우리가 이 부분을 잘 파고들어야 한다. V리그로 보자면 레오가 뛰는 OK금융그룹과 비슷한 스타일의 배구를 한다.”
-이런 팀을 상대로 우리는 경기를 해야 하는가.
“일단 전략적인 서브를 상대의 3번 선수에게 집중해 속공이 쉽게 이뤄지지 않게 하고 3번이 리시브에 애를 먹도록 해서 흔들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범실 없는 서브가 승패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다.”
-계획대로 호주를 이기면 4강전 상대는 누가 오를 것으로 보는가.
“카타르도 강하지만 튀르키예가 이번 대회 참가 팀 가운데 체코와 함께 가장 공수에서 안정적으로 보인다. 튀르키예는 세터가 젊고 라이트에서 뛰는 장신 공격수가 위력적이다. 현재 유럽 리그에서 떠오르는 선수라는데 공격력이 막강하다. 신장도 210cm의 장신이다. 우리 블로커가 막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선수가 팀 공격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 2명의 레프트가 리시브를 안정적으로 하고 있다. 결국 튀르키예도 최대한 짧고 전략적인 서브로 라이트로 향하는 연결이 부정확하게 만들어야 승산이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남자배구의 많은 것이 걸린 대회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텐데.
“선수들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국제 대회를 해 좋기도 하지만 책임감과 부담감을 함께 느끼고 있다. 잘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일정은?
“어제(24일) 입국한 쿠바와 오늘 진천에서 연습경기가 있다. 우리는 26일 진천에서 훈련을 마친 뒤 서울의 숙소로 이동한다. 대회 하루 전인 27일은 4개 팀이 각각 1시간30분씩 코트 적응 훈련을 한다. 경기장 대관이 쉽지 않아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많이 훈련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