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의 마에스트라 이윤정이 깔끔하게 경기를 지휘했다. 남은 두 개의 라운드에 임하는 각오도 드러냈다.
배구에서 우승 세터라는 타이틀은 아무나 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팀의 주전 세터로 자리를 잡는 것부터가 쉽지 않고, 그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윤정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낸 선수다. 실업 무대를 거친 뒤 한국도로공사의 주전 세터로 발돋움했고, 도드람 2022-2023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0%의 기적을 함께 일구며 당당히 우승 세터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윤정은 2023-2024시즌에도 여전히 한국도로공사의 코트 위에서 경기를 조율하고 패스를 뿌리며 김천의 ‘마에스트라’로 활약 중이다. 16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도로공사와 페퍼저축은행의 4라운드 맞대결에서 마에스트라 이윤정의 지휘는 탄탄하고 깔끔했다.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의 타점을 살려주는 높은 패스부터 이예림-문정원을 향하는 빠른 패스, 배유나의 이동공격을 활용하는 유려한 패스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이윤정의 지휘 속에 한국도로공사는 페퍼저축은행을 세트스코어 3-0(25-22, 25-16, 25-21)으로 완파하고 시즌 8승째를 거뒀다. 기분 좋게 올스타 브레이크에 진입하는 것은 덤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실을 찾은 이윤정은 “승리해서 기분이 좋다. 감독님께서 장난으로 ‘앞으로 2주 동안 어떻게 훈련할지 이번 경기로 정하겠다’고도 말씀하셨는데, 다행히 잘 치렀다. 휴식 기간 동안 푹 쉬면서 남은 시즌 준비를 잘 하겠다”는 승리 소감을 전했다.
이날 이윤정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아보였다. 공격수들의 특성에 맞는 패스를 상황에 맞게 뿌렸고, 세트 성공률은 50%로 시즌 평균(40.68%)보다 높았다. 경기 내내 표정도 밝았고, 심지어 서브 득점과 블로킹도 하나씩을 기록하며 득점까지 쏠쏠하게 보탰다.
그러나 이윤정은 경기가 잘 풀린 비결로 동료들의 활약을 꼽았다. 그는 스스로가 느끼기에 가장 잘 된 부분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언니들이 리시브와 디그를 잘 해줘서 볼을 분배하기가 편했다. 또 공격수들의 득점력도 좋았다보니 경기를 풀어가기가 좋았다. 경기 전에 준비했던 것들이 착착 맞아떨어진 것 같아서 좋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이 대답을 들은 문정원은 만족감과 장난기가 섞인 웃음을 지으며 이윤정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팀도, 이윤정도 탄탄한 경기력을 발휘했지만 김종민 감독은 이윤정에게 조금 더 과감한 플레이를 요구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윤정이가 조금 더 자신 있게 경기를 운영해줬으면 좋겠다. 리시브 효율이 50% 정도 나와 주면 세트 플레이를 조금 더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
이윤정 역시 김 감독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었다. “감독님께서 너무 안정적으로만 운영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 부분”이라며 개선해야할 부분을 스스로 되짚은 이윤정은 “남은 라운드에는 조금 더 변화를 추구해보고 싶다. 꼭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5-6라운드에 임하는 포부를 드러냈다.
경기 내용과 향후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진지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였던 이윤정은 인터뷰 후반부에는 여유롭고 유쾌한 이야기들도 들려줬다. 그는 먼저 경기 도중 김 감독과 대화를 나누다가 웃음꽃이 피었던 장면에 대해서는 “감독님께서 ‘(배)유나 좀 써!’라고 하셨는데, 제가 ‘지금요?’라고 대답해서 그랬다. 패스 못해서 지적받은 거 아니다(웃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윤정은 이후 휴식기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갑자기 “3일 쉬게 해 주세요, 제발”이라며 취재진에게 농담 반 진담 반의 읍소를 해 인터뷰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은 “집에 가서 잘 자고, 잘 먹고. 그러고 돌아오겠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계획하고 있음을 밝혔다.
한국도로공사의 마에스트라 이윤정은 남은 두 라운드 동안 더 과감한 지휘를 하기 위해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며칠의 시간이 주어지든 즐겁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길, 또 휴식이 끝난 뒤에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본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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