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추억을 먹으며 성장한다, "힘들었던 순간은 아름다운 기억들로 지워요"

김희수 / 기사승인 : 2024-03-11 12: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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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선수도 사람인만큼, 때로는 지독히도 배구가 안 되는 날이 있다. 또 몸과 마음이 아픈 날도 있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면 선수에게 코트 안팎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배구 실력을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멘탈 관리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정관장의 외인 지아의 멘탈 관리 방법은 꽤나 낭만적이라서 눈길을 끈다. 그는 이마를 쓸어내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아픔을 털어내고, 힘들었던 순간들은 아름다운 기억을 쌓으면서 지워간다. 지아는 한국에서의 첫 시즌에도 소중한 추억들을 쌓아가며 성장하고 있다.

“우리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그 모습을 늘 상상해요”
지아가 V-리그에 도전한 계기를 “성공과 성장 중 하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건강하고 단단한 멘탈이 곧바로 느껴졌다.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를 동료에게서 찾는 겸손한 태도와 팀의 슬럼프 원인으로 주저 없이 자신을 꼽는 책임감도 인상적이었다.

Q. 가장 먼저 V-리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우선 V-리그에 도전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V-리그에 도전한 가장 큰 계기는 제가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어요. 외국인 선수들이 가져야 할 책임감이 큰 리그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제가 생각하기에 그런 리그에 간다면 성공을 하든, 성장을 하든 둘 중 하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Q.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정관장의 선택을 받았죠. 사실 V-리그 팀들은 주로 아포짓 외국인 선수를 선호하는 편이라서 아웃사이드 히터들에게 드래프트는 좁은 문인데, 뽑힐 거라고 예상했나요?
처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아웃사이드 히터니까, 선택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트라이아웃 때 최선을 다하면서, 조금의 가능성을 봤어요. 그리고 정말로 정관장에 뽑혔을 때는 명예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책임감도 느꼈어요. 참, 메가왓티 퍼티위(등록명 메가)에게도 고맙게 생각해요. 왜냐면 메가라는 강한 아포짓이 없었다면 감독님께서 다른 선수 선발 전략을 쓰셨을 수도 있고, 그러면 저는 팀에 뽑히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요.

Q. 시즌 전 정관장의 훈련량이 어마어마했다는 증언은 수많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아의 체감은 어땠나요?
VERY, VERY, VERY 힘들었죠. 정말 도전적인 훈련이었어요. 하지만 우리의 강훈련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시즌 때 찾아올 고난과 시련도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도움이 될 거라고 느껴졌어요. 사실 훈련 때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웃음). 하지만 그때의 훈련 덕분에 메가와 제가 강해질 수 있었어요. 팀적으로도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Q. 1라운드에는 정관장도 지아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시즌 중반부는 정관장과 지아 모두에게 찾아온 고비였습니다. 시즌 초반의 좋았던 흐름이 중반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래서 더 좌절했고요. 훈련 과정도, 경기 내용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팀은 계속 흔들렸죠. 저 역시 책임이 있었어요. 제가 외국인 선수로서 더 많은 짐을 져야 했지만, 제가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Q.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경기력 회복과 상승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의 IBK기업은행전에서 우리 팀의 경기력이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제 공격력에는 전혀 만족할 수 없었죠. 그래서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날 즈음부터 감독-코치님들이랑 모여서 제 공격력에 대한 피드백을 나눴어요. (김)정환 코치님이 훈련 전에 일찍 와서 벽을 때리는 볼 미팅 훈련을 하자고 하셨고, 그날 이후로 항상 일찍 와서 추가 훈련을 하고 있어요. 이게 자신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정환 코치님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고, 코치님 덕분에 경기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습니다. 이제 저는 불필요한 긴장을 하는 대신 경기력을 향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을 가져갈 수 있게 됐어요.

Q. 프로 무대에서는 아직 우승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우승에 대한 열망이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우리의 목표죠. 우승을 해본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우리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그 모습을 상상해요. 오우, 우승이라니! 상상만 해도 좋습니다(웃음).




“분명 시련이 있었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아요”
1998년생의 많지 않은 나이에도 지아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 모든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았겠지만, 지아의 머릿속에서 그 시간들은 모두 아름답고 행복하게 재구성됐다. 소중한 추억들과 신에 대한 믿음이 힘들었던 시간 속의 상처를 모두 치유한 덕분이다.

Q. 배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시기와 계기가 궁금합니다.
배구를 처음 시작한 건 13살 때였어요. 전에는 소프트볼과 농구를 했었죠. 하지만 농구는 너무 많이 뛰어야 돼서 싫었고, 소프트볼은 지루해서 싫었어요(웃음).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800명 정도 되는 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남녀 통틀어서 키가 제일 컸거든요.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특히 득점을 하면 다 같이 세리머니 하는 게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1년 정도 배구를 하다 보니 배구와 사랑에 빠지게 됐어요.

Q. 한국에 오기 전에는 미국-푸에르토리코-이탈리아-프랑스까지 다양한 곳에서 배구를 했었죠. 다양한 나라에서 배구를 하면서는 어떤 부분이 어려웠고 또 어떤 부분이 좋았나요.
푸에르토리코에서는 3개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8개월 이상을 머물렀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너무 빠르게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아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곳곳에서 쌓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순간순간을 가득 채워준 덕분이죠. 힘든 시간들도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아름다운 기억들 덕분에 시련들은 잘 생각이 안 나요. 한국에서 보내는 이번 시즌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남은 시간 동안도 힘든 시간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배구선수 지아가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요?
배구선수니까, 배구를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훗날 가정을 꾸리게 되더라도, 배구계로 꼭 돌아와서 저를 필요로 하는 팀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고희진 감독은 CEO다?
김윤솔 통역은 나침반이다?

정관장에서의 첫 시즌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도 ‘긍정의 화신’ 지아는 긍정적인 이야기들만을 잔뜩 들려줬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때도 좋은 것들만을 남겨두려고 하는 편이었다.

Q. 이제는 지아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아의 생각을 조금 들어보려고 해요! 가장 먼저 이야기를 나눠볼 대상은 고희진 감독님입니다.
저는 감독님이 회사의 CEO 같은 분이라고 느껴요. 선수들의 감정과 멘탈부터 팀의 전략과 스케줄까지, 정말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시니까요. 우리 팀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 분이죠. 감독님은 항상 더 나은 팀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또 모든 것을 생각하고 계세요.

Q. 두 번째 대상은 주장 이소영 선수입니다!
(이)소영 언니는 저에게 큰 응원이 되는 존재예요. 훈련을 할 때도, 경기를 할 때도 정말 보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죠. 늘 언니를 존경하고 있고,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 마음 속에서 정말 특별한 사람입니다!

Q. 세 번째 대상은 메가 선수예요!
오, 메가(웃음). 메가는 저에게 작은 여동생 같은 존재죠. 제가 슬프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이면, 메가가 코트 안팎에서 저를 항상 웃게 만들어줘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는, 햇살 같은 사람입니다!

Q. 마지막으로는 옆에 있는 김윤솔 통역님입니다.
솔이(김윤솔 통역의 애칭)는 저에게 나침반 같은 존재예요. 제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정말 많은 역할을 해주고 있죠. 특히 감정적인 순간을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정말 커요. 메가와 저에게 솔은 소중한 비서이자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예요. 저와 메가를 잘 도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아의 등번호가 77번인 이유는
럭키 세븐 때문이 아니었다

선수들에게 등번호를 고른 이유를 물어보면 대다수는 ‘그냥’ 혹은 ‘남는 번호가 그거라서’라고 답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답변이 ‘좋아하는 숫자라서’, ‘행운의 숫자라서’라는 답변이다. 그런데 지아의 답변은 조금 달랐다.

Q. 응원가로 <탑건> OST인 ‘Danzer Zone’을 쓰고 있습니다. 이 응원가는 마음에 드나요?
득점을 올리는 순간은 제가 코트 안에서 맞는 제일 행복한 순간이죠. 그 순간에 ‘Danger Zone’이 나오면서 제가 코트 위를 마음껏 날아다니는 모습을 팬 여러분들이 보실 수 있는 게 좋아요. 그 노래를 들으면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 떠오르는 것 같고, 배구를 더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Q. 등번호로는 77번을 달고 있어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성경에서 7은 완벽한 숫자죠.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는 데 7일이 걸렸고, 또 일곱 개의 바다를 만드셨잖아요. 제가 어깨에 총 두 번의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끝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완벽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걸 상기시키기 위해 7이 두 번 반복되는 77번을 달고 있어요.

Q. 평소 쉴 때는 어떤 것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밖에서 잔잔하게 걷는 걸 좋아해요. 일기도 쓰고요. 독서도 하고, 성경을 낭독하기도 한답니다.

Q. 한국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시간이 꽤 흘렀죠. 한국 문화에는 잘 적응하고 있나요?
저는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데,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식은 지금도 정말 사랑하고요. 아직까지는 배구 실력을 키우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에 한국 문화를 접해볼 기회는 많지 않았는데, 시즌이 끝나면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해요. 참, K-팝 가수들은 정말 멋지더라고요!

Q. 타 팀의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는 누구와 교류를 하나요?
페퍼저축은행의 야스민 선수는 이스탄불에서 열린 트라이아웃에서 처음 만났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많은 질문을 받아줬죠. 항상 유익한 정보를 줬고 저를 응원해줬어요. 또 저는 오래 전부터 현대건설 모마 선수의 팬이었는데 모마도 저에게 큰 응원을 해줬어요. 야스민과 모마 둘 다 V-리그의 전문가인 동시에 강한 여성들이라고 생각해요. 윌로우(흥국생명), 톨레나다(前 GS칼텍스), 필립스(페퍼저축은행), 타나차, 부키리치(이상 한국도로공사)랑도 연락을 해봤어요. 외국인 선수들끼리의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죠. 비슷한 역경을 겪으면서 도전하고 있기에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한국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나 가보고 싶은 곳이 있을까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은 딱 하나입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뒤 파티를 어떻게 할까 하는 거요! 시즌이 끝나면 전통적인 곳도 가보고 싶은데, 일단은 우리 팀과 같이 이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글. 김희수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디자인. 최인혜 디자이너

(더 자세한 이야기는 <더스파이크> 3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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