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이 가자고 하면, 선원은 따르는 겁니다.” 오기노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는 차지환의 말에서는 약간의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OK금융그룹이 3년 만의 봄배구에 나선다. 혁신을 추구하며 일본인 감독 오기노 마사지 감독을 선임하고, 팀의 기조부터 세부 전술까지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간 보람을 느끼게 됐다. 선수들과 팀의 구성원들은 물론, OK금융그룹의 팬들까지 간절히 바라왔던 순간이다.
18일 청담 리베라호텔에서 진행된 도드람 2023-2024 V-리그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는 3년 만의 봄나들이에 나서는 OK금융그룹을 대표해 오기노 마사지 감독과 차지환이 참석했다. 본 행사는 16시 30분부터 진행됐지만, 각 팀의 감독과 대표 선수는 15시 20분부터 사전 인터뷰에 응했다.
원형 테이블에서 기자들을 맞은 차지환은 “3년 전에 장충에서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렀던 순간이 너무 즐거워서 꼭 다시 봄배구에 가고 싶었다. 좋은 기회가 찾아와서 기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겠다”며 3년 만의 봄배구에 나서는 소감을 먼저 전했다.
차지환에게 정규리그 전반에 대한 복기를 부탁하자, 그는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다. 부상도 많았고, 출전 횟수도 많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먼저 표했다. 또한 “시즌을 치르면서는 감독님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부분들도 있었고,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고 오기노 감독 부임 이후 달라진 팀 컬러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차지환은 이제 오기노 감독을 100% 신뢰한다. 그는 “힘든 시간들을 겪으면서 더 강한 유대가 생겼다. 그 덕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힘들 때는 감독-코치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보다 먼저 이런 과정을 겪어봤을 형들에게도 많은 조언을 들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변화를 수긍할 수 있게 됐고, 앞으로의 변화들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차지환이 이야기했던 변화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오기노 감독의 주문사항과 자신의 강점이 대치되는 순간들을 맞이할 때 발생했다. 그는 “우리의 배구는 끈질긴 배구다. 서브의 파워 자체는 약해지면서 상대의 세트 플레이가 수월해진 대신, 그걸 수비와 유효 블록으로 끈질기게 막아서 기회를 살리는 배구를 해야 한다”고 변화한 팀 컬러를 먼저 요약했다.
차지환과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은 부분이 바로 여기서 파생됐다. 차지환은 “솔직히 말해서 선수들은 다 주인공이 되고 싶다. 강서브를 넣고 싶고, 그걸로 지는 게임을 뒤집고 싶다”며 그간 느꼈던 욕심을 솔직히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그건 욕심인 것 같다. 어쨌든 감독님이 가자고 했으면, 우리는 따라야 하는 거다. 선장이 가자고 하면 선원은 따르는 거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제는 이런 믿음이 생겼다”며 이제는 오기노 감독의 배구를 믿고 수행할 수 있음을 전했다.
선장 오기상을 믿고 따를 준비가 된 선원 차지환은 이제 21일에 치러질 현대캐피탈과의 단판 준플레이오프를 준비한다. “선수들의 의욕은 최고조 상태다. 다들 마지막이라는 각오”라고 선수단의 분위기를 전한 차지환은 “리시브 라인이 좋은 팀이라, A패스 이후에 이어지는 세터의 패스 스피드가 빠르다. 여기에 중앙의 높이도 좋다. 견고한 팀이다. 현대캐피탈의 범실만으론 우리가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더 잘해야 이긴다”며 현대캐피탈의 전력을 경계했다.
차지환은 서브에 집중해서 준플레이오프를 준비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는 “방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1:1 상황에서 상대 공격수가 선호하는 코스를 철저히 막고, 빠지는 공은 수비수가 걷어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직전 경기에서도 이 부분은 잘 됐다. 그 경기는 그냥 우리의 공격이 안 풀려서 졌다”고 주요 방어 전략과 직전 경기 내용을 돌아본 뒤, “결국 A패스를 내주면 이어지는 퀵오픈을 막기가 어렵다. 따라서 어떻게든 서브로 상대를 하이 볼 상황에 몰아넣고, 이후에 수비와 반격을 이어가는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고 준비 과정을 소개했다.
지난주에도 오기노 감독과 면담을 했다는 차지환은 “오기상이 나한테 시야가 좀 좁아진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런 것 같다. 이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내겠다”며 개인적으로도 좋은 활약을 펼치기 위해 준비할 것임을 전했다. 그는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오기상의 피드백을 수용하면서도 내 장점을 너무 죽이지 않는 배구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이제 차지환은 더 이상 오기상의 배구를 의심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는 선장 오기노가 원하는 방향과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노를 젓는 선원이 되려 한다.
사진_리베라호텔/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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