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분석·방향성·각오까지 모두 담긴, 이다현의 솔직담백 VNL 리뷰

고성/김희수 / 기사승인 : 2023-07-13 14: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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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대회였지만, 이다현은 VNL을 통해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배웠다. 늘 공부하고 고민하는 선수인 이다현다운 모습이었다.

이다현은 지금 경남 고성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10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되는 현대건설의 하계 전지훈련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일정을 소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다가오는 컵대회와 차기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이다현은 정상적으로 훈련에 합류했다.

11일 오후, <더스파이크>가 이다현을 찾아갔다. 가장 먼저 1주일여의 짧은 휴식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묻자 이다현은 “쉴 틈 없이 계속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니 좀 지쳤다. 그래서 혼자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어서, 그 친구도 만날 겸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또한 “몸 관리를 할 시간이 충분치는 않았지만,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다행이다”라며 컨디션에도 이상이 없음을 덧붙였다.

VNL 전후로 대회에 대한 수많은 취재와 보도가 있었지만, 정작 경기 내용에 대한 선수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숙소 책장에 기록지가 빼곡할 정도로 배구에 대해 늘 연구하는 선수인 이다현이라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VNL 이야기를 해보자는 제안에 이다현은 흔쾌히 응했다. 그는 가장 먼저 “V-리그에서 하던 최대치를 보여준다고 해도 VNL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만족이라는 단어는 아예 생각도 안 해봤다.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느낌만 받았다”는 냉정한 대회 총평을 전했다.

이후 이다현에게 대회 기간 동안 미들블로커들이 겪었던 어려움의 원인을 물었다. 첫 질문은 대회 초반 유효 블록 개수가 부족했던 이유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다현은 “솔직히 말하자면, V-리그에서는 블록을 뜰 때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할 수가 있다. 중요한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공이 올라갈 방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팀 미들블로커들의 플레이도 파워풀한 공격보다는 리딩 위주의 받쳐주는 플레이가 많다”며 V-리그에서의 플레이 방식을 먼저 설명했다.
 

이후 이다현은 “그런데 국제대회는 공격의 파워도 다르고, 후위공격 옵션도 탄탄하다. 그런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보니 블록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어려워서 유효 블록을 만드는 데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그래도 경기를 하다 보니 흐름 같은 것을 좀 읽을 수 있었고, 뒤로 갈수록 좀 나아진 듯하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V-리그에 비해 한국 미들블로커들이 VNL에서 유독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유효 블록뿐만이 아니었다. V-리그에서의 주요 공격 옵션이었던 이동공격의 효율도 다소 떨어졌다. 이다현이 분석한 효율 저하의 원인은 유효 블록 부재의 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V-리그에서는 이동공격을 할 때 1:1 상황이 많이 나오는데, VNL에서는 상대 미들블로커의 리딩이 워낙 빠르니까 이동공격수를 바로 따라와서 투 블록이 뜬다. 또 우리가 외발 이동공격을 잘 쓰는 걸 알고 상대가 분석도 많이 해온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열띤 분석과 설명이 마무리된 뒤. 조금 다른 주제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다현은 이전부터 롤모델로 언급해왔고, 국제대회에서 맞붙은 경험도 있는 에다 에르뎀(튀르키예)을 1주차 튀르키예전에서 다시 만났다. 소감이 어땠고, 조금씩 근접해가는 느낌도 드냐는 질문에 이다현은 “근접했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웃음). 다만 3년 전쯤 처음 봤을 때는 ‘와~’ 하면서 쳐다볼 정도로 놀라웠는데,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느낌은 있다. 최대한 많이 보고 배우려고 하고 있다. 에다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배울 점을 찾고자 한다”며 미소 지었다.

에다를 포함한 전 세계의 슈퍼스타들과 맞서면서, 해외 진출에 대한 욕심과 열망이 더 커지지는 않았을지도 궁금했다. 이다현은 “프로 2년차 때쯤, 우리 팀 외국인 선수였던 헬렌 루소 선수랑 교류하면서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생각이 더 깊어지는 건 사실이다. 지금 단계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생각은 확실히 있다. 성공을 위해 나가고 싶다기보다는, 도전을 위해 나가고 싶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이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주전 라인업에는 해외 리거들이 많다. 우리나라에만 해외파 선수가 없더라. 국제 레벨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런 부분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꺼낸 이다현은 “물론 연봉 차이는 많이 날 것이다. 그래도 해외 진출이 한국 배구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그리고 내가 그 시작을 맡을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렇게 영향력이 큰 선수도 아니고, 내가 해외에 나간다고 해서 뭔가가 바뀐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도전해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발전을 위해서는 변화가 절실하다는 이다현의 생각은 미카사 이야기를 할 때도 확고했다. “미카사와 스타는 많이 다르다. 미카사는 언더핸드로 공을 받을 때 튀는 반경이 조금 더 크다. 공격을 때릴 때도 스타보다 힘이 조금 덜 실리는 느낌이다”라고 두 공의 체감 차이를 설명한 이다현은 “이제 국내에서도 미카사를 쓰니까, 아무래도 적응에 들여야 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함이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이야기하지만, 한국 배구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하고, 미카사의 도입도 그 첫 걸음이 아닐까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다현에게 지금의 과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다현은 “이렇게 연패가 길어지는 국제대회를 다녀오면 선수들도 많이 지친다. 이겨야 회복이 되는데, 계속 지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다. 대회 막바지에는 선수들이 슬픔과 좌절을 넘어서서 그냥 영혼이 없는 듯 무기력해지기까지 했다. 뻔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 우리의 스타일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다현이 원하는 ‘우리의 스타일’은 어떤 스타일일까. 이다현은 ‘스피드’를 강조했다. “세계적인 추세는 계속해서 스피드가 빨라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신체조건이 좋은 팀들이 스피드까지 우리를 앞서면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우선 스피드를 올리는 것이 첫째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리시버는 리시브 정확도를, 공격수들은 하이 볼에 대한 결정력을 늘려야 한다. 스피드를 올리기 위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라며 거침없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을 밝혔다.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배구 강의(?)를 이어간 이다현은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3주차 때 선수들도 한국에서 뛰는 것에 대해 정말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패배가 늘어갈수록 죄책감이 커졌다. 많은 분들의 응원에 보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며 죄송한 마음을 먼저 밝힌 이다현은 “하지만 이건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팬 여러분들이 끝까지 함께 포기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결과로 증명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다졌다.

인터뷰 내내 이다현이 밝힌 목표는 자신의 성장이나 팀의 발전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한국 배구의 발전을 원했다. 한국 배구 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면 어떠한 도전에도 ‘1호’가 되는 걸 망설이지 않겠다는 당찬 목소리를 듣는 내내 이다현의 1년 뒤, 5년 뒤, 10년 뒤가 궁금하고 기대됐다.

사진_고성/박진이 기자, 더스파이크DB(박상혁 기자)

영상_고성/박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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