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걸음 중인 페퍼저축은행,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독기를 뿜어내라 [V-리그 중간점검⑭]

김희수 / 기사승인 : 2024-01-26 18: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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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경쟁에 뛰어든 시즌이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도드람 2023-2024 V-리그가 20일부터 10일 간의 올스타 브레이크에 돌입했다. 배구가 없는 하루를 선수들도, 팬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하루 보낸 끝에 올스타 브레이크도 어느덧 후반부를 향해 가고 있다.

여자부의 7개 팀 중 올스타 브레이크를 가장 암울한 상태에서 맞은 팀은 단연 페퍼저축은행이다. 4라운드가 끝날 때까지도 승점이 아직 한 자릿수(7점)일 정도로 끝 모를 부진에 빠져 있다. 첫 시즌에도, 두 번째 시즌에도 당했던 팀 최다 연패 기록인 17연패를 또 한 번 당했고, 5라운드의 첫 경기를 패하면 그 기록마저 경신하게 된다. 페퍼저축은행은 어쩌다 또 한 번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됐을까.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기대 요소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고, 불안 요소들은 모두 존재감을 드러냈다
창단 후 세 번째 시즌을 맞아 페퍼저축은행은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V-리그의 우승 청부사 박정아와 여자부 연봉 상한선 금액인 연봉 7억 7천 5백만 원에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리시브와 수비 보강을 위해 채선아까지 연봉 1억 원에 3년 계약을 맺으며 영입했고, 집토끼 자유계약선수(FA)였던 오지영과 이한비까지 눌러 앉혔다. 기대치가 커질 수밖에 없는 행보였다.

그러나 비시즌을 돌아보면 불안한 요소들도 많았다. 박정아의 보상선수로 이고은을 한국도로공사에 내줬다가, 이고은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최가은과 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내주는 불필요한 출혈을 감행해야 했다. 이번 시즌을 함께 치러야 했던 아헨 킴 감독은 개인사로 인해 한 경기의 공식전도 치르지 못한 채 팀을 떠났다. 다행히 빠른 시기에 신임 감독 조 트린지를 영입하며 공백을 최소화했지만, 그는 아헨 킴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팀을 빠른 시기에 바꿔야 하는 리스크를 안아야 했다.

그리고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 기대했던 요소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고 불안 요소들은 모두 존재감을 드러냈다. 박정아는 공수 양면에서 기대치를 밑돌았다. 리시브에 가담할 때도, 리시브를 면제받을 때도 퍼포먼스가 불안정했다. 박정아의 리시브 리스크를 덜어주고 팀에 경험을 더해줘야 했던 채선아는 지난 시즌에 비해 폼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한비 역시 대표팀에 다녀온 여파인지 경기력 기복이 심해졌고, 그나마 팀 수비 라인을 지탱하던 오지영은 4라운드 중반 이후 전력에서 이탈했다. 


트린지 감독의 행보 역시 흔들리는 팀의 중심을 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상대의 공격 효율 저하를 이유로 짚으며 염어르헝의 1세트 고정 선발 기용을 강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염어르헝은 또 한 번의 무릎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과 함께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브 스타일의 대대적인 수정과 수비 위치 선정 방식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이 역시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선수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를 어느 정도 원래의 방식으로 돌려놨지만 마찬가지로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4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트린지 감독과 선수들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20점대 이후의 집중력 싸움에서 번번이 패하는 것, 상대 팀에 먼저 두 세트를 내주면 세 번째 세트는 무기력하게 내주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패턴을 파훼하지 못한 것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4라운드가 끝날 즈음에는 트린지 감독의 입에서 “신뢰가 부족하다”는, 너무나 근본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음이 전해질 정도로 페퍼저축은행의 전반적인 흐름은 매우 좋지 않다.



지는 게 죽기보다 싫다는, 투지와 독기를 보여야 한다
어차피 페퍼저축은행은 봄배구에 갈 수 없다. 현실적으로 최하위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페퍼저축은행을 응원하는 팬들이 남은 두 라운드 동안 바라는 것도 위와 같은 것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남은 두 라운드 동안 페퍼저축은행이 반드시 보여줘야 할 모습이 있다. 바로 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모습이다. 경기에서 지고 나면 그 순간이 너무 싫고 분하다는 선수들의 감정이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느껴져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팬들에게 승리를 선물하겠다는 투지와 독기가 넘실거려야 한다.

안타깝지만, 냉정하게 돌아봤을 때 지금까지의 페퍼저축은행에는 그런 모습이 부족했다. 경기에서 졌다고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도 많지 않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야간 훈련에 매진하는 선수들도 많지 않았다. 승리를 향한 투지와 독기가 넘실거리는 느낌을 준 선수는 GS칼텍스와의 원정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을 집합시켜 열변을 토한 야스민 베다르트(등록명 야스민) 정도였다.

지난 두 시즌 동안은 연패가 이어질 때도 신생 팀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었고, 투자가 부족했다는 변명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다르다. 어느덧 3년 차를 맞는 시즌인데다, FA 계약 및 재계약을 체결한 4인방의 계약 규모 총액만 따져도 무려 46억 8천 500만 원이다. 박정아와 채선아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지출한 보상금까지 계산하면 50억을 넘는 금액을 투자한 것이다. 이제는 변명거리가 없다. 더 이상 패배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트린지 감독과 선수들을 포함한 페퍼저축은행의 모든 구성원들이 승리를 원한다는 것, 그리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그래서 그걸 구단 외부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으면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남은 경기를 전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페퍼저축은행의 진심과 열정만은 모두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5-6라운드가 되길 기대해본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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