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V-리그가 출범한 뒤 20번째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V-리그 최초의 신인선수상의 주인공은 하현용(삼성화재), 황연주(현대건설)였다. 2005시즌부터 2023-24시즌까지 V-리그 등록 선수로 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리고 매년 V-리그 무대에서 첫 발을 내딛는 신인 선수들에게도 진심어린 조언을 남겼다.
V-리그 574경기 출전...‘역대 두 번째’
‘역대 블로킹 3위’ 하현용
1982년생 하현용은 화랑초-본오중-송림고-경기대를 거쳐 2005년 V-리그 첫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1순위로 KB손해보험의 전신인 LG화재 지명을 받았다. 그러던 2010-11, 2011-12시즌에는 상무신협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군 복무를 마쳤고, 2018-19시즌까지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2019년 변화를 맞이했다. 프로 데뷔 후 첫 이적을 한 것. 당시 KB손해보험은 우리카드와 3:3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KB손해보험은 하현용, 이수황, 박광희를 내주고 박진우, 구도현, 김정환을 영입했다.
우리카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하현용은 2020-21시즌 팀의 정규리그 2위,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베스트7 미들블로커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 신인 선수상 이후 두 번째 수상이었다. 2021년 시상식 무대 위에 오른 하현용의 소감도 화제였다. 하현용은 “처음 이 상을 받아본다. 얼떨떨하다”면서 “전교회장 첫째 딸과 쌍둥이 때문에 아빠가 힘이 난다. 사랑하는 아내도 고맙다. 또 배구에 전념하게 해준 장모님, 어머니께도 감사의 말씀 드린다.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또 도전해서 반드시 쟁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2022년에는 ‘삼성맨’이 됐다. 삼성화재와 우리카드가 3:5 트레이드를 하면서 하현용이 두 번째 이적을 했다. 당시 우리카드는 하현용, 이상욱, 이호건, 홍기선, 류윤식을 삼성화재에 내주고 황승빈, 정성규, 이승원과 손을 잡았다.
2005년 원년 멤버 하현용은 2023-24시즌 정규리그 4라운드까지 574경기 2038세트 출전 3477점을 기록했다. 역대 통산 블로킹에는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국전력 신영석이 최근 1200블로킹을 달성하며 총 1204개의 블로킹 성공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1056개를 기록한 이선규(은퇴)에 이어 하현용이 3위에 랭크돼있다. 역대 통산 득점에서는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V-리그 남자부 출전 경기 수를 살펴보면 현대캐피탈 베테랑 리베로 여오현이 617경기로 역대 1위를 질주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하현용이 2위를 달리고 있다. 하현용에 이어 한국전력 박철우가 556경기 출전 기록을 남겼다.
하현용의 잊을 수 없는
프로 데뷔 첫 블로킹 득점
2005년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 중 현역 선수는 하현용이 유일하다. 당시 전체 1순위로 대한항공 지명을 받았던 신영수는 2018년 은퇴 후 대한항공 사무국에서 전력 코디네이터로 힘을 보태고 있다. 하현용이 현장에서 만나면 반가운 드래프트 동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하현용은 “같은 학교에서 나왔던 친구도 있는데, 지금은 경기장에서 가끔 신영수와 얘기를 나눈다. ‘몸은 괜찮냐’ 등의 대화를 나눈다. 요즘에는 엔트리에 포함이 안 될 때도 있고, 경기를 못 뛰다 보니 주변에서 ‘언제까지 할거냐’라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 기억도 다시 떠올렸다. 하현용은 “프로 출범 첫 해였다. 동기 중에 프로를 못 간 선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난 지명이 됐다. V-리그 새내기다 보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라서 대표 선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19년 전의 2005시즌이지만, 프로 데뷔전에서의 첫 블로킹 득점도 잊을 수 없다. 하현용은 2005년 2월 23일 V-리그 1라운드 대한항공전 3세트 8-10에서 교체 투입돼 바로 상대팀 속공을 가로막고 팀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2세트 역전에 성공한 당시 LG화재는 세트 스코어 3-1 승리를 거뒀다. 하현용의 프로 데뷔전이 승리로 끝난 것. 동시에 하현용은 프로 데뷔 첫 득점을 기록한 날이었다.
하현용은 “첫 경기를 교체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상대 속공을 블로킹으로 막았다. 그것이 프로 첫 득점이자, 첫 블로킹이었다”면서 “돌이켜 보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상대 선수가 A속공을 시도했고, 크로스로 때린 것을 왼손으로 잡았던 것 같다”며 힘줘 말했다.
2005시즌 LG화재는 삼성화재, 현대캐피탈에 이어 3위로 시즌을 마무리 지었다. 하현용은 첫 시즌부터 20경기 66세트 출전해 123점을 터뜨리며 생애 하나 뿐인 신인 선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하현용은 “팀이 그래도 상위권에 있었고, 형들이 모두 실력도 좋고 잘하는 선수들이라서 많이 배웠다. 그 때는 신인답게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도 신인이기 때문에 팀 분위기를 끌어 올려서 파이팅 넘치게 하길 많이 원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많이 뛰어다녔고, 운 좋게 신인상도 받게 됐다”며 지난 2005시즌을 되돌아봤다.
2005시즌 신인왕과
2022-23시즌 신인왕의 만남
공교롭게도 2022-23시즌 신인 선수상은 현재 삼성화재 미들블로커 김준우에게 돌아갔다. 후배 김준우를 보면서 하현용도 옛 기억이 다시 떠오르곤 했다.
하현용은 “나 때가 생각이 나더라. 나도 프로로 올라오자마자 운 좋게 경기를 뛰었고, 그렇게 뛰는 바람에 신인상도 받았다. 그 해 또 대표 선수로도 뽑혔다”면서 “김준우 선수도 프로 입단하자마자 경기도 뛰고, 신인상을 받고 대표 선수까지 하는 것 보고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아울러 늘 신인왕에 도전하는 신인 선수들에게도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하현용은 “요즘 평가를 들어보면 최근에 프로로 오는 선수들의 기본기나 실력 등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한국 배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처음 배구를 시작하는 단계부터 달라지고, 시스템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이제 올라온 프로 선수들도 아직 늦지 않았다. 프로에서 배구를 해야 할 기간은 길다. 부상 당하지 않고 몸 관리를 잘하면 길어진다. 처음에 올라와서 그만 두는 선수들도 있지만, 끈기를 갖고 자기 발전을 위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노력한다면 좋은 선수가 될 것이다. 아무리 그러한 평가를 받더라도 노력하는 선수가 됐으면 한다”며 스스로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끝으로 2005시즌과 2023-24시즌 V-리그의 변화도 짚었다. 하현용은 “그 때와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다. 프로 출범 첫 해이다보니 리그 운영 면에서도 시행착오가 있던 것 같다. 선수들의 배구 스타일도 다르다. 그래도 그 때는 지금보다 기본기는 더 좋았던 것 같다. 대신 최근에는 배구 플레이가 빨라졌다”면서 “그 때는 배구 정확성을 요하고, 높이로 배구를 했다면 요즘은 템포가 빨라진 배구를 한다.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마냥 빨라졌다가도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토스로 플레이가 변화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직도 신인왕 트로피보다 프로 데뷔 후 첫 손맛이 더 기억에 남는 하현용이다. 살아있는 레전드 하현용이 걷는 길이 곧 역사로 남고 있다.
여전히 역대 1호의 길을 걷고 있는
황연주의 화려한 발자취
한국 여자배구 베테랑 중 베테랑 황연주가 있다. 1986년생의 아포짓 황연주는 2005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2010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얻고 현대건설 이적을 결심했고, 그렇게 2023-24시즌까지 현대건설 소속으로 뛰고 있다.
황연주의 발자취는 화려하다. 2005시즌 신인선수상-백어택상-서브상, 2005-06시즌 월간MVP(1월), 2006-07시즌 서브상-올스타 MVP, 2009-10시즌 페어플레이상, 2010-11시즌 서브상-정규리그 MVP-올스타 MVP-챔피언결정전 MVP, 2016-17시즌 3라운드 MVP, 2014년 KOVO컵 MVP와 2015년 KOVO컵 MIP 등 트로피 개수부터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황연주의 기록도 눈길을 끈다. 황연주는 2023-24시즌 정규리그 4라운드까지 개인 통산 481경기 1656세트 출전해 무려 5794점을 챙겼다. 현재 역대 득점 2위다. 1위는 한솥밥을 먹고 있는 양효진(7440점)이다. 공격득점 부문에서도 양효진(5566점), 박정아(4885점)에 이어 3위(4848점)에 랭크돼있다.
서브에서는 독보적인 1위다. 황연주는 서브로만 459점을 기록했다. 황연주 다음으로는 IBK기업은행 황민경이 361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후위공격 득점 역시 마찬가지. 후위공격으로만 1248점을 챙기며 역대 1호의 길을 걷고 있다. 후위공격 1000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도 황연주가 유일하다.
이 가운데 2005-06시즌에는 28경기 110세트를 치르면서 무려 532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경기당 19점에 해당하는 수치다. 황연주의 개인 한 시즌 최다 득점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여자부 국내 선수 중 가장 많은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니콜(11회), 베띠(5회), 카리나(5회)에 이어 황연주가 4회 기록을 남겼다. 황연주는 2005-06, 2007-08, 2008-09, 2011-12시즌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바 있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한국 여자배구 토종 아포짓의 자존심을 지켰다.
황연주의 롱런 비결
2005시즌 황연주에 답이 있다
19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황연주는 “내 배구 인생의 길을 결정해준 시즌이었다”고 되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인 황연주는 당찼다. 프로 데뷔 첫 시즌에 백어택상, 서브상에 이어 신인 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프로에 갈 실력이라고 생각을 못했고, 드래프트 당시 프로팀 지명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한 황연주는 2005시즌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흥국생명을 지휘봉을 잡았던 고 황현주 감독의 배구 철학 덕분에 왼손잡이 아포짓 황연주가 오랫동안 V-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황연주도 2005시즌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한 경기에 서브 미스를 정말 많이 한 적이 있었다. 7, 8개 정도 범실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언니들이 점프 서브를 하지 말고 서서 서브를 치라고 하더라. 그래서 언니들 말을 듣고 서브를 서서 쳤다. 그러자마자 감독님이 작전타임을 불러서 내게 뭐라 하셨다”면서 “신인이라 부담감이 컸다. 엄청 긴장을 해서 경기에 못 뛰겠다고 얘기를 하기도 했다. 언니들과 뛰는 것도 무서웠다. 그랬더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나를 많이 혼내셨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본인을 어필하는 시대다. 경기를 뛰면 더 좋아한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프로에 처음 와서 무서웠다”고 덧붙였다.
후위공격도 마찬가지다. 신인 시절부터 황연주는 과감한 후위공격으로 눈도장을 받았다. 그의 장점인 공격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황연주는 “고등학교 때도 한두 번씩 하긴 했다. 공격적인 부분을 많이 주문하셔서 많이 했다. 또 그 때는 수비 쪽이 약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면서 “첫 시즌부터 서브, 후위공격으로 어필이 됐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하다보니 몸에 장착이 됐다. 자꾸 부딪히면서 나만의 무기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에 서브도 그때부터 미스 때문에 서서 쳤다면 서브 기록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고 전했다.
그렇게 황연주에게 2005시즌은 감사한 시즌이었다. 그는 “배구 인생에 있어 그 길을 결정해준 시즌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것들,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 시즌이었다”고 돌아봤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정도로
배구를 하더라도 초심을 잃지 마세요”
황연주는 인터뷰 내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다”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남긴 메시지에는 확신의 목소리를 냈다.
황연주는 “신인상을 받기 전 마음과 그 느낌을 10년, 20년이 되든 강산이 두 번 변할 정도로 배구를 하더라고 계속 간직했으면 좋겠다. 내가 잘하고 어느 정도 올라왔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뛰어야 한다. 신인 때는 누구나 초심, 신인의 마음으로 코트 위에 오른다. 나중에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초심을 강조하는 이유가 다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 마음가짐에 따라 배구 플레이를 할 때도 제스처나 볼 하나 다룰 때 느낌이 다르다. 대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더 정성을 들여야 할 것들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수가 나온다. 나 역시 가끔 그럴 때가 있다”며 초심을 강조했다.
계속해서 “나도 미스를 많이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초심을 잃은 채 뛴다면 10개를 성공할 것을 6개, 8개밖에 못한다. 넘어지기 싫어서 서서 받는 사람, 넘어지더라도 보내주는 사람의 차이가 작아보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엄청 커진다. 어떤 생각을 갖고 배구를 했냐에 따라서 연차가 쌓일수록 그 차이는 점점 커진다. 신인으로 뛰었을 때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한 채 뛰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후배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을 설명했다.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V-리그 ‘기록의 여왕’ 황연주의 말이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KOVO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저작권자ⓒ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