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튀르키예는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곤 한다. 한국 전쟁과 2002 월드컵 등을 거쳐오며 다져진 두 나라의 우애는 돈독하다. 그러나 형제가 적으로 만나게 됐다.
튀르키예는 29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챌린저컵에서 카타르를 세트 스코어 3-1(25-23, 25-16, 22-25, 25-15)로 제압하고 준결승에 올랐다.
경기 시작 전 튀르키예의 선발 라인업이 눈길을 끌었다. 튀르키예의 주포인 아포짓 아디스 라굼지야와 그의 형제인 또 한 명의 아포짓 미르자 라굼지야를 동시에 기용한 것. 마치 지난 시즌 V리그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의 ‘더블 해머’ 전략을 떠올리는 라인업이었다.
1세트 초반 아포짓 무바라크 함마드의 서브에이스로 리드를 잡은 카타르는 세트 중반까지 함마드의 공격력을 중심으로 리드를 내주지 않고 흐름을 주도했다. 반면 튀르키예의 주포 아디스 라굼지야는 범실 3개를 기록할 동안 득점은 1점에 그치며 튀르키예가 13-17까지 끌려가는 단초를 제공했다. 깜짝 투입된 미르자 라굼지야 역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며 튀르키예의 ‘더블 해머’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튀르키예는 미르자 라굼지야를 빼고 아웃사이드 히터 브루타이 수바시를 투입하면서 전략을 바꿨다. 이 시점부터 튀르키예의 경기력이 살아났다. 리시브가 안정된 튀르키예는 카타르의 범실과 라굼지야의 블로킹으로 22-21 역전에 성공했고, 미들블로커 엠레 사바스의 속공으로 25점을 선취하며 1세트를 25-23으로 가져왔다.
2세트는 애매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면서 양 팀 모두 변수에 시달렸다. 총 네 번의 비디오 판독이 진행됐고, 매 판정이 진행될 때마다 선수들은 주심에게 달려가 강력하게 항의하며 경기가 과열됐다. 몇몇 선수들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평정심을 유지한 팀은 튀르키예였다. 수바시 투입 이후 리시브가 안정된 튀르키예는 미들블로커 엠레 사바스-사멧 귀네스 듀오의 속공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특히 9-6 상황에서 나온 이날 경기의 최장 랠리를 끝내는 사바스의 속공은 2세트의 백미였다. 이후에도 튀르키예는 귄고르-수바시 아웃사이드 히터들의 안정적인 리시브를 기반으로 여유로운 경기 운영을 선보였고, 세터 아슬란 에크시의 서브 에이스까지 터지며 25-16으로 2세트를 손쉽게 따냈다. 카타르의 이브라힘과 베랄 아부나봇이 중앙에서 분전했지만, 세트를 가져오기에는 부족했다.
3세트는 카타르의 교체카드가 적중하며 카타르에게 넘어갔다. 2세트 막판 함마드와 교체된 우글라프는 24-14에서 24-17까지 추격하는 3점을 내리 뽑아내며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3세트 카타르의 승리를 이끌었다. 2-4로 앞선 상황에서 2-5를 만드는 호쾌한 공격으로 3세트 스타트를 끊은 우글라프는 튀르키예의 강력한 서브에 카타르 리시브 라인이 고전하면서 안정적인 세트 플레이가 어려웠음에도 가리는 볼 없이 모두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범실로 인해 다소 지지부진했던 16점까지의 경기 이후 두 번 역전을 주고받으면서 치열하게 전개된 3세트는 19-20으로의 세 번째 역전을 만들어 낸 우글라프의 득점 이후 카타르의 흐름으로 넘어갔다. 리드를 잡은 카타르는 세트 막판 튀르키예의 타임아웃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우글라프와 아부나봇을 앞세워 세트를 따내며 반격에 나섰다.
4세트는 튀르키예의 아웃사이드 히터 수바시의 맹활약이 돋보였다. 두 팀은 모두 몸이 완벽하게 풀린 듯 이전 세트들보다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고, 테크니컬 타임아웃 전까지 점수 차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경기의 흐름이 튀르키예에 넘어간 장면에는 항상 아웃사이드 히터 수바시가 있었다. 수바시는 14-13에서 두 번의 공격 득점으로 16-13을 만들며 튀르키예에 유의미한 리드를 안겼다. 이후 라굼지야의 공격에 대한 인/아웃 비디오 판독을 성공시키며 18-15를 만든 튀르키예는 25점까지 카타르에게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경기를 끝냈다. 수바시는 팀의 24점과 25점을 만들어내며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였다.
카타르를 제압한 튀르키예는 오는 30일 한국과 결승행 티켓을 두고 운명의 맞대결을 펼친다. 우애 좋은 형제는 반드시 서로를 꺾어야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얄궂은 운명이다.
사진_잠실/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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